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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의 세계

지난해 말 미국에서 등장한 ChatGPT3은 곧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단숨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생성형’ 인공지능 앞에서 사람들은 기대감과 당혹감이 교차했다. 올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사람들의 반응을 모두 모아서 ChatGPT에 한 문장으로 요약해달라고 하면 아마도 이런 대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게 된다고?”

이제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로 성큼 들어섰다. 원했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우리는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할지, 그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을지가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그간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내 나름대로 갖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인간을 대하듯 ChatGPT와 인터뷰를 진행한 게 그 시작이었다. ChatGPT와 뒤이어 나온 Bing의 채팅 기능, 거기에 뒤질세라 구글에서 내놓은 바드까지. 현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 세 가지를 사용해 보고 비교 분석하는 글도 썼다. 그리고 마침내 이 블로그에 ChatGPT를 연결하여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을 직접 운영해 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못한 지적 갈증이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경험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현상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그저 최종 소비자로서 인공지능을 접하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폭넓게 다루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AI 이후의 세계』이다. 미국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밋, 그리고 MIT 학장인 대니얼 허튼로커. 그야말로 정계, 재계 그리고 학계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이란 주제를 놓고 4년 동안 치열하게 논의한 결과를 담아서 내놓은 책이다.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경제, 군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인공지능이 촉발할 수 있는 윤리적인 논란과 실제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들에 대해 살펴보고, 궁극적으로 이 기술이 인류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필요한 선결 조건도 제시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인류에게 시급히 갖추어야 할 지침을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진가가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느꼈다. 저자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주제 앞에서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명확하게 답하는 데 주저한다. 그 대신 이 책의 상당히 부분을 물음표로 끝나는 질문에 할애한다.

나는 여기에 저자들의 의례적 겸손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남이 떠먹여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때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진 뒤 그 답을 찾고 더 나아가 그것을 남에게 가르칠 때 그 자신도 비로소 가장 확실히 배울 수 있다. 평생 끊임없이 배우고 또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걸 업으로 삼아온 저자들이기에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단순히 정리하고 전달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친절하지 않은 번역은 옥에 티로 느껴졌다. 직역에 가까운 문장들 때문에 읽다가 멈추는 일이 잦았다. 그로 인해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는 최첨단의 분야인 데다가, 이 책의 저자들이 역사와 철학부터 국제 정치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들다 보니 역자로서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독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번역에 조금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I 이후의 세계』는 세상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펼치는 놀라운 능력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을 때, 한발 물러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경쟁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간의 통제 수준을 벗어나는 수준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지’ 거듭 숙고하라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불러올 변화와 기회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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