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이야기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다. 학창시절 심장 수술을 받았다. 세 번 받았다. 종종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다. 살고 싶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이 뛰고 있나 확인했다. 아직 뛰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자신을 살려준 의사들이 고마웠다.

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꿈이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 믿었다.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었다. 진료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돌파하기로 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고 싶었다. 회사를 세웠다. IT 기술로 환자와 의사를 연결했다.

아팠던 남자와 아픈 이들을 살리고 싶어 한 남자. 이 두 남자는 ‘신승건’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갖고 산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profile

2006년, 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임상으로 가지 않았다. 임상은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만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나는 (인턴, 레지던트로 시작하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길을 가지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의대생 시절 병원 안팎에서 보아온 그 어느 환자보다 나 스스로가 힘든 날들을 살아왔다. 그래서 두려웠다. 부지불식간에 다른 환자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될까 봐.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각자 나름대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혹시라도 내가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길까 봐 걱정되었다. 내가 볼 환자들에게 내가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임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외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나 스스로가 주위에 병력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질병은 한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숱하게 경험했다.

내가 환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들보다 더 아팠는데 저 정도는 견딜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저 정도로 아픈데 과연 믿고 함께 할 수 있을까’라고 미심쩍어하는 것은 내가 평범한 의사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다.

당시의 나는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남에게 편견을 갖고 싶지도 않았고 역으로 차별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받기 싫은 대우를 남에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나 자신의 자존감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임상에서 진료를 보는 것을 접었고, 내가 아팠던 과거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이후 나는 환자를 보지 않는 길을 택했다. 대학원을 들어갔고, 또 사회에 나와서는 원격의료 IT 회사를 만들었다. 한동안은 꽤 만족했다. 혁신적이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세상에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YTN (2010. 10. 4) 스마트폰 따라잡기 ‘의학상담 앱’ http://goo.gl/q9Fxg

아시아투데이 (2010. 11. 1) [주목! 이 앱]메디컬라이즈 ′의학상담′ 앱 http://goo.gl/5wpCS

ZDNet Korea (2010. 12. 14) 불철주야 의료계 헌신, 무료 앱으로 꽃피다 http://goo.gl/tuJQb

한겨레 (2010. 12. 20) ‘손안의 주치의’ 톡톡 ‘건강 정보’ 와르르 http://goo.gl/tDFZU

동아일보 (2011. 5. 16) 손안의 주치의’메디컬라이즈 의학상담 어플리케이션 http://goo.gl/2uZnd

데일리메디 (2011. 11. 1) 모바일 투표로 대한의사협회장 선출? http://goo.gl/qk1AN

메디컬타임즈 (2011. 12. 13) 의술이 아닌 IT로 환자를 살리는 의사 http://goo.gl/zDu1l0

메디컬타임즈 (2012. 3. 5) “의료, SNS로 통하다!” http://goo.gl/LMhnWk

map and caption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와 함께 졸업한 동기들이 임상에서 환자들을 보며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동안,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실제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기여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 의사인 척하며 주위에서 겉도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환자를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30대 초에 뒤늦게 병원 수련을 시작했다. 병원 수련을 결정할 즈음 의사의 본질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답은 명확했다. 의사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이다.

모든 직업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 존재가치가 있다. 그중에서도 의사, 판사, 변호사 등이 대표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적으로 더 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은 이들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공의료를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갔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의료의 맏이 격인 곳이다. 말하자면 이 사회의 가장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곳이란 의미이다. 나는 그 뜻이 좋았고 내가 가야 할 길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국립중앙의료원을 선택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인턴 1년, 외과 레지던트 4년, 총 5년 동안의 수련 생활을 시작했다.

메디칼타임즈 (2013. 2. 12) 의사 CEO가 늦깎이 인턴 지원한 사연 http://goo.gl/MFvZAU

외과 전문의가 된 후에는 지금까지 평범한 동네 의사로 일하고 있다. 누구나 길을 나서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십분 뒤에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의사,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정말로 평범한 그런 의사의 삶을 살고 있다.

동네 의사로 살아가는 지금, 환자였던 시절을 회상하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환자였다. 매일 밤 살고 싶다고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의사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간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길을 떠나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가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내가 어디에서 이 길을 시작했는지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있다. 잘하는 것도 다들 다르다. 훗날 누군가 내게 무엇을 잘하는 의사냐고 묻는다면, 나는 환자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의사라고 답하고 싶다. 환자에서 의사가 된 것이 나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면, 다시 환자의 눈높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두 번째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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