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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를 멈추게 할 기술

지난해 말 부산에서 발생한 소아 응급 환자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은 우리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교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이를 위해 구급대가 다급히 이송을 시도했지만, 중증 소아 응급 처치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 병원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연락을 시도하며 지체하는 사이 환자는 심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사후에 확인된 정황들은 의료 현장을 경험한 이들에게 낯설지 않다. 여러 병원에 연락이 이어졌지만 환자의 의식 상태와 활력 징후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병원은 “확인 후 회신”을 하겠노라 말했고, 구급대는 그 회신을 받지 못한 채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이 과정은 응급의료가 여전히 전화와 구두 설명이라는 낡은 소통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의료진의 판단이 정체된 사이 시간은 흘렀고, 그 공백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일을 접하며 외과 전공의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증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급히 이송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환자의 상태는 1분 1초가 다르게 나빠졌고, 전화를 붙잡은 채 상대 병원의 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당시 나를 가장 절박하게 만들었던 것은 ‘지금 이송해도 되는가’라는 물음보다, 환자의 상태와 필요한 처치가 저 너머의 의료진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응급 이송의 핵심은 단순히 환자의 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치료에 필요한 판단과 정보가 끊기지 않고 정확히 이어지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산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더욱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체계는 오랫동안 ‘물리적 이송’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어느 병원의 빈 병상으로 옮길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었고, 설령 병상이 확보되어도 해당 과의 전문의가 없으면 다시 다른 병원을 찾는 일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치료를 위한 본질적인 결정은 유예되었다.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계속 이동하지만, 정작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치해야 할 정보의 흐름은 전화기 너머에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의 바퀴는 구르는데, 의료진의 판단은 멈춰 서 있는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원격 협진 체계를 통해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왔다. 소아 응급 원격 협진의 세계적 표준을 세운 미국의 UC 데이비스 어린이병원은 거점 병원으로서 주변 30여 개 지역 병원들과 연결돼 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현장 의료진은 고해상도 카메라와 모니터가 달린 이동식 원격 협진 장비를 환자 곁으로 가져간다. 거점 병원의 전문의는 화면을 통해 아이의 호흡 패턴이나 피부색 등을 실시간 관찰하며 삽관이나 약물 투여를 정밀하게 지도한다. 이는 전문의의 판단력을 현장에 즉각 투입하는 시스템으로, 불필요한 이송을 줄이고 필요한 처치가 현장에서 즉시 이어지게 했다.

세계 최고의 소아 전문 의료기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캐나다 시크키즈 병원의 해법은 더욱 정교하다. 이들은 지역 병원의 초기 처치를 원격으로 지원할 뿐 아니라, 이송 중인 구급차 내 생체 신호까지 실시간으로 살피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든 의료진이 수술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돕는 이 시스템은 치료의 단절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이러한 체계는 국토가 넓은 지리적 특성에서 출발했지만, 의료 자원이 수도권에 편중된 우리나라 현실에도 절실하다. 전문가 판단을 받기 위해 환자를 이동시켜야 하는 문제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이미 의료법으로 의료인 간 원격 협진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있으며, 원격 중환자실 협력 네트워크와 응급 원격 협진 관련 사업이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이를 계기로 의료인 간 원격 협진을 활용한 시범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응급 상황에서도 원격 협진의 활용 범위가 점차 넓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응급 진료에서 기술의 가치는 단순히 환자를 더 빨리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전문의의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그 경험과 정보가 실시간으로 현장에 도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구급 현장과 지역 의료진이 거점 병원의 전문의와 연결되어 즉시 최선의 처치를 결정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이송과 시간 지체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의 해법은 병상 수나 인력 충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화기 너머의 막연한 회신을 기다리는 대신, 전문의의 판단력이 즉각 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연결망을 갖추는 일이다. 이미 시작된 원격 협진 사업과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현실화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이 길 위에서 생명을 잃는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확인 후 회신”을 기다리는 낡은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이 글은 2026년 1월 9일 국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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