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 그로부터 느꼈던 감정은 이후의 인생에서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처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망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는 종종 직접 경험한 일들이 기억에 새겨 놓은 흔적이 지나치게 선명한 나머지, 자신이 아닌 타인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남들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착각은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고 느낄 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직장 꼰대, 위선적인 성직자, 내로남불 정치인, 진상 소비자. 그리고 또 하나의 예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있다. 다만 부모의 경우, 그 의도만큼은 순수하다.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것들 가운데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전해 주려 애쓴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딸이 앞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것들 가운데 좋았던 것을 딸도 경험하게 해 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무엇이 아이에게 좋은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실은 내가 좋다고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나 역시 단 한 번의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판단 근거는 40여 년 동안 쌓인 유한한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 최근, 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협소한지를 깨닫게 해 준 책 한 권을 읽었다.
『배움의 발견: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 이야기』(Educated: A Memoir)는 아내가 건넨 책이다. 아내도 직장에서 받은 책이라며 내게 보여 주었는데, 내가 관심을 보이자 먼저 읽어 보라며 내주었다. 나는 제목보다도 그 아래에 적힌 부제에 눈길이 갔다. 자전적 에세이로는 다소 평범한 조합이지만, 과연 이것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졌다. 책의 앞날개를 펼쳐 처음 마주한 저자 사진과 그 아래의 소개는 결국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는 교육을 거부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16년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17세에 대학에 진학했고, 28세에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 보니, 나로서는 도저히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짤막한 저자 소개에 담지 못한 전체 이야기가 무엇일지, 대체 그녀의 삶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나는 무척 궁금해졌다.
웨스트오버는 1986년생으로 나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성장 환경은 전혀 달랐다. 단지 국적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가정환경은 그 시대의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미국 서부 아이다호 출신인 그녀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부모는 교육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반교육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만큼 가혹했다.
폐철 처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험한 작업장에 내모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중장비로 그녀가 서 있던 고철 더미 위에 쇳조각을 쏟아부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일처리를 빠르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음모론에 깊이 빠져 비상식량과 대피소를 준비하느라 가족들을 혹사했고, 정규 교육을 정부의 세뇌라며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를 막았다. 다혈질에 공감 능력마저 결여된 그는 가장이라기보다는 집 안에서 통제되지 않은 권위를 휘두르는 폭군에 가까웠다. 어머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동종요법 같은 미신에 빠져, 아이들이 크게 다쳐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기이한 주문과 의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결국 한 아들은 평생 남는 장애를 얻고 말았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일이 아주 먼 과거가 아니라, 대략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언론이 연일 떠들썩하게 다뤘을 법한 아동학대가 저자의 유년 시절 내내 반복되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종종 그렇듯, 절망 말고는 남은 것이 없어 보이는 환경에서도 돌연변이처럼 자신의 운명을 비켜 가려는 이단아가 나타난다. 웨스트오버의 오빠 중 한 명인 타일러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시궁창 같은 집구석을 떠나 홀로 대학 교육을 받으러 나섰고, 이후 동생에게도 집을 떠나 교육을 받으라고 끈질기게 자극했다. 그 자극은 결국 그녀가 가족이라는 숙명적 굴레를 벗어나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녀에게 그는 인생의 은인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웨스트오버는 책의 첫 장에서 이 책을 오빠 타일러에게 바친다는 헌사로 그 고마움을 분명히 남긴다.
『배움의 발견』은 그녀가 가족을 떠나 유타주의 브리검영대학교를 거쳐 하버드와 케임브리지대학교로 나아가는 학문의 여정을 담는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도 가족과의 연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채 대학 교정과 고향집을 오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녀의 처지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영향력 앞에서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아버지로서의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한 가지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웨스트오버의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형성된 관념을 아이에게 적용하려 했고, 내가 살아온 삶을 최선의 기준처럼 여기며 아이에게 요구해 왔다. 나도 더 나은 삶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아이 앞에서는 지금의 나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꼬장한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나는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딸이 글밥이 있는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딸은 여전히 만화책을 주로 읽어서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도 그 나이 때에는 만화책을 많이 보았다는 걸 떠올리면 안심이 된다. 기회가 될 때마다 딸과 근처 과학관으로 향하기도 하는데, 내가 어릴 적 과학관에서 느꼈던 지적 호기심을 딸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보아하니 지금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재미를 느끼지 않겠나 하면서 계속 시도할 뿐이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딸아이가 TV 앞에 앉아 시끌벅적한 프로그램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어릴 적에 그랬으니 괜찮겠거니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방식 그대로 아이도 같은 경험을 할까. 나에게 유익했던 것이 아이에게도 유익할까. 애초에 그것이 정말로 유익했던 선택이었을까. 가끔은 회의감이 든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한 삶의 일부일 뿐이고, 그 밖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좋았다고 믿는 경험을 아이에게도 권하려 하지만, 그것은 단 한 번 살아본 삶을 근거로 한 판단에 불과하다. 더 나은 길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내가 선택한 길이 사실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복권을 긁어서 당첨된 경험에 기대어 아이에게 복권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투자처라고 가르치는 꼴이다.
내 딸이 자라는 세상은 내가 자랐던 세상과 다르다.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내 딸은 노트북을 열고 ChatGPT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친구가 집에 있는지 유선전화로 물어보던 시대를 살았지만, 내 딸은 스마트워치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내가 어릴 적 TV 채널은 KBS, MBC, SBS, EBS가 전부였고 그나마 낮에는 화면 조정 시간이었지만, 내 딸은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싶은 것을 직접 검색해 본다.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처음 해외여행을 했지만, 내 딸은 열 살이 되기 전에 스무 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
그렇기에 옛사람인 내가 아이에게 “너는 커서 무엇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쩌면 의미 없는 소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내 앞날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벅차다. 그런 처지에서 아이의 미래를 앞서 내다보며 훈수를 두겠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주제넘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최근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부모 교육 전문가 이호선 교수가 아이에게 해 주라고 권한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말이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배움을 잘 담아내고 있다. “넌 뭐가 돼도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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