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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음식의 언어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대표적인 것이 블로그다. 음식은 블로그의 가장 인기 주제 가운데 하나다. 미슐랭Michelin Guide 별점이 매겨진 고급 식당 방문기부터 편의점 간편식 시식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먹거리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블로그에서 다루어진다.

그런가 하면, TV 방송에서는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몇몇 출연자들이 나와서 준비된 음식에 대해서 시식평을 하거나, 유명 식당을 평가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출연자들은 화면에 비친 음식과 시식 모습을 보며, 혹시라도 카메라에 잡힐까봐 시종일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반응한다. 요리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로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은 이들도 드물지 않다.

왜 최근 들어서 유독 음식 이야기가 많아진 것일까. 혹시 그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음식은 실제로 먹어야 그 효용이 있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나 TV 프로그램처럼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눈요기가 왜 이토록 인기를 얻는 것일까. 혹시 그 배경은 어려운 경제와 무책임한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허전함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언어를 중심으로 이해되고 소통된다. 달리 말하면 음식을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음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책이다. 『음식의 언어 원제 : The Language of Food | 댄 주래프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03월 25일 출간』는 제목처럼 음식을 표현하는 언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역사적 지리적 사실을 배경으로 음식과 관련된 용어들에 대한 어원론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댄 주래프스키Dan Jurafsky는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한편, 『음식의 언어』는 저자가 진행하는 강의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 강의는 7만 명 이상이 수강한 스탠퍼드 최고 인기 강의 가운데 하나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새롭고 흥미롭다. 통계적 분석으로 시작하는 첫 장에서는 식당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어렵고 복잡한 단어가 들어간 메뉴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서 더 비싼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고급 식당과 값싼 식당이 메뉴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이들이 각각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살펴본다.

또 다른 장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소스인 케첩이 원래는 중국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케첩하면 햄버거나 감자튀김과 함께 미국에서 온 음식으로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깬다. 케첩의 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동서양과 역사를 넘나드는 저자의 식견에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그 외에도, 저자는 고대의 요리법에서 현대의 과자 포장지에 적힌 홍보 문구까지 먹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언어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칠면조, 토스트, 밀가루, 아이스크림 등이 품고 있는 수천 년 인류 문명의 진보와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발굴해낸다.

한편, 메뉴판에 담긴 식당의 영업 전략,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를 가르는 음식 용어의 특징, 포테이토칩이나 아이스크림 마케팅이 겨냥하는 우리의 취향, 맛집 평가에서 나타나는 호평과 악평의 차이점을 분석한다. 저자는 인류의 진화와 심리, 행동을 해독하는 기발한 시각을 제공하고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의 근원을 파헤친다.

음식의_언어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어원학’의 범주로 보지만, 나는 저자의 작업을 과거를 향한 어원학에 한정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에서 음식에 비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음식은 현재의 우리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내 나름대로 책에서 느낀 점은 크게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저자는 가격이 저렴하거나 수준이 낮은 식당들은 자신들의 메뉴에서 음식을 설명하기 위해 더욱 긴 설명을 사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값싼 식당에서는 음식 자체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값싼 식당측에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을 향한 의심에 대해서 변명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다보니 메뉴에 적힌 설명이 길어진다. 즉, 음식이 허술하다보면 말이 많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비단 음식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정직하지 못한 이들이 남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법이다. 반면에 본질에 충실한 사람은 말이 적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 저자는 포테이토칩의 포장지에 담겨있는 다양한 홍보문구를 살펴본다. 그 문구들은 자연산 감자를 쓴다거나 콜레스테롤이나 트랜스지방이 없다는 등의 말로 포테이토칩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포테이토칩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크푸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회사들은 당신의 건강보다 그들의 이윤을 위해서 다양한 광고를 한다. 마트에 가보면 말로는 건강식품이 아닌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실상을 알고 보면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서 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자.

셋째, 음식의 명칭이 유래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식문화가 오늘날 대표적인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보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나 아시아에서 유래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 다소 개발이 더딘 나라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무시하거나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넷째, 한편으로는 오늘날 전세계적인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유럽이나 미국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후발주자라도 언제든 기회와 노력이 합쳐지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개방성과 창의성이다.

다섯째, 과거에는 음식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에 절여야 했다. 하지만 냉장고 같은 보관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음식을 소금에 절여서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미 짠맛에 길들여진 인류는 소금에 절인 음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을 해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 사실은 올바른 습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한 번 몸에 밴 것은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책은 음식과 그 음식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그 언어의 유래와 배경 등을 살펴보는 가운데 얻게 되는 어떤 인생의 통찰과도 같은 것이다.

본질에 충실하고, 광고에 현혹되지 않기, 겉모습을 떠나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개방성과 창의성을 지키기, 마지막으로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단순히 음식과 관련된 언어의 유래를 알게 된 것보다도, 이 책을 통해 얻은 더욱 중요한 깨달음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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