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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의료 소비자의 길

요즘에는 장을 볼 때 온라인 쇼핑몰의 새벽배송을 주로 이용한다. 전날 밤에 주문을 넣어도 출근 전에 현관 앞에 물건이 깔끔하게 놓여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신선한 야채부터 생활용품까지 집에서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 절약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무료 배달을 위한 최소 주문 금액이 정해져 있어 당장 필요한 것이 적을 때는 퇴근길에 대형 마트를 들리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저녁 준비에 쓸 양파와 계란만 사려는 생각으로 대형 마트를 찾았다. 그런데 계산대 앞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줄이 평소보다 서너 배는 길게 늘어서 있었고, 카트마다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이런가 싶어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던 이에게 물으니 할인 행사 기간이라고 했다. 일부 신선식품은 절반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긴 줄의 이유가 납득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온라인 쇼핑몰을 즐겨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비슷한 상품끼리 가격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고, 다른 구매자들의 후기를 통해 품질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배송 서비스의 편의성까지 더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더 저렴하고 좋은 물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기업들이 밤낮으로 끊임없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배송 시스템을 개선하고, 상품 품질을 높이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혁신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경쟁 덕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경쟁도 종종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예컨대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환자와 의료기관이 만나는 의료계다. 특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에서 병원들이 가격을 자유롭게 정하지만, 환자는 그것이 적정 수준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의료 서비스의 특성상 전문성이 높고 복잡해서 일반 소비자가 품질을 판단하기 어렵기도 하다.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라는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공무원으로서 일하다 보면 간혹 민간 기업의 영역과 공적 영역을 혼동할 때가 있다.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굳이 행정이 개입하려 하거나, 반대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을 시장에만 맡겨두는 경우가 그렇다. 그럴 때마다 공무원으로서의 진정한 존재 이유와 역할의 경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정보 격차를 허무는 것이 공적 영역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는 의미가 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의 차이가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도수치료인데, 전국 의료기관을 비교했을 때 최저 300 원, 최고 60만 원으로 약 2천 배 차이가 났다. 중간값은 10만 원이었지만, 환자가 어느 의료기관을 찾느냐에 따라 실제 부담은 상당히 달라졌다.

한방 진료의 약침술은 더 극적이다. 최저가가 10 원, 최고가는 30만 원으로 3만 배의 격차를 보였다. 임플란트 역시 치아 한 개 기준 최저 7만 9천 원, 최고 990만 원이었다. 백내장 진단에 쓰이는 검사나 각종 영상검사도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물론 의료기관의 시설이나 인력, 시술 난이도에 따라 비용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격차라면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러한 의료비 정보의 불투명성을 줄이고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건강e음3‘을 통해 전국 의료기관별 비급여 항목 가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환자가 그것을 실제로 확인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정보가 있어도 환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비교 검토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결국 자신이 지불한 의료비가 합당한 수준인지, 더 합리적인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는 일은 의료 소비자 각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에서 식료품을 고를 때 가격을 따져보듯, 의료비를 지출할 때도 차분하게 비교하고 결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현대 경영학의 선구자 피터 드러커는 “활용되지 않는 정보는 무의미한 데이터일 뿐이다”라고 했다. 정보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그 힘은 의료비의 불투명성을 줄이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이끄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경쟁의 당당한 한 축이 될 것이다.

이 글은 2025년 9월 5일 국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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