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는 연필의 감촉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육각형의 단단한 몸체가 손가락을 감싸고, 적당한 무게가 지적 활동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수 세기의 기술과 진화가 녹아 있다. 연필의 심재는 흑연(graphite)이다. 16세기 영국에서 순수한 흑연 덩어리가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연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흑연은 쉽게 부서지지만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성질이 있다. 이를 고정하기 위해 점토와 섞어 구운 것이 오늘날의 연필심이다. 심을 감싸는 나무는 대부분 삼나무(cedar)다. 부드럽고 결이 곱다. 깎을 때 저항 없이 단정한 단면을 드러낸다.
연필은 겸손한 도구지만, 변화의 도구이기도 하다. 잉크가 마를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기록할 수 있고, 지우개로 쉽게 수정할 수도 있다. 모든 필기구 중 가장 가벼우며, 심이 다 닳을 때까지 성실히 흔적을 남긴다. 그 무엇보다도, 연필은 사색의 속도를 따르는 유일한 도구다. 볼펜은 마찰이 적어 글자가 너무 쉽게 미끄러진다. 반면 만년필은 속도를 늦춘다. 연필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문학가와 사상가들이 연필을 사랑한 이유다. 톨스토이, 헤밍웨이, 스타인벡은 원고를 연필로 썼다. 카프카 역시 연필을 애용했다. 그의 노트에는 연필로 적힌 날카롭고 깊은 사유가 가득하다.
연필이 그려내는 흔적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가는 선은 날카롭지만 강하지 않고, 진한 선조차도 잉크처럼 냉정하지 않다. 연필의 흔적은 지울 수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점이 연필을 인간적이게 만든다. 실수하고, 수정하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치며 종이는 깊이를 얻는다. 지우개가 문지른 자리에는 미세한 흔적이 남는다. 그것은 연필이 남긴 기억이다. 손으로 직접 깎은 연필은 모양이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규칙함이 오히려 개성을 더한다. 나무가 깎이는 순간 퍼지는 특유의 향기는 사용자에게 미묘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연필심이 점차 닳아가며 손가락이 조금씩 더 나무에 가까워지는 경험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 감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연필은 살아남았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스케치에 연필을 사용한다. 시험장에서 연필은 여전히 빠른 생각과 계산을 돕는다. 유년의 손이 처음 글자를 배우는 도구도 연필이다. 예술가들은 연필을 통해 아이디어의 원형을 포착한다. 화가들은 그림을 시작할 때 연필로 가벼운 선을 긋는다. 과학자들은 개념을 정리할 때 여전히 연필을 집어 든다. 연필은 지식과 창작의 근본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연필을 쥐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사색가들과 연결된다. 그것이 연필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다. 작은 도구 하나가 인간의 사고를 담고, 표현하며, 시대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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