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늘 긴장과 기대를 함께 가져옵니다. 올해도 진로 탐색 특강이 시작됐고 이번 프로그램은 부산중앙도서관에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도서관이 기획한 강연이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방향이 분명했습니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생각의 출발점을 함께 만들어 보자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장소는 부산경남여자고등학교였습니다.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입니다. 학업 분위기가 안정적이고 진로 지도를 꾸준히 이어온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강연 전부터 마음에 남았습니다.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선택을 앞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강연은 남성여고 강당에서 진행됐습니다.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신승건 작가 초청 특강’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 한 권을 냈을 뿐인데 그런 호칭을 붙여주신 점이 고마웠습니다. 동시에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당을 채운 학생들의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할 때도 말을 꺼내기 전 잠시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미 각자 고민을 안고 있다는 점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강의라기보다 제 삶의 일부를 나누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그 시절에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망설이다 멈춰 선 순간도 있었고 돌아가야 했던 길도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과보다는 판단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 과정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강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부산중앙도서관 주무관님들의 준비 덕분이었습니다. 현장을 차분하게 챙겨주신 덕에 강의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늘 가까이에서 지도해 오신 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하루의 만남 뒤에는 선생님들의 긴 시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당을 나서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시간이 학생들에게 꼭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언젠가 선택의 순간에 오늘 나눈 이야기 중 한 장면이나 문장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강연은 학생들을 위한 시간이었고 동시에 저 자신이 지나온 선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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