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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

긴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한낮의 따스한 봄볕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마음까지 녹여준다.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보면, 분홍빛 꽃잎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이 순간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의 설렘이 공기 중에 감돈다. 그러나 이 계절이 모두에게 반가운 것은 아니다. 알레르기 비염을 가진 사람들에게 4월은 걱정스러운 계절이다.

봄철만 되면 많은 이들이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한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알레르기 비염을 진단받은 사람들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성인의 알레르기 비염 진단율은 21.2%로 10년 전보다 크게 증가했다. 특히, 과거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서 흔하게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성인에서도 비염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알레르기 비염이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인류의 오랜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비염은 흔히 현대인의 질병으로 여겨지지만 그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 문서에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신의 저주로 간주되기도 했다. 과학적인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건초열’이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주목받았는데, 이 병은 주로 귀족들에게 발생해 ‘귀족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환자들은 눈이 붉게 충혈되고 기침과 콧물이 멈추지 않는 등 심각한 증상을 겪었으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찰스 해리슨 블랙클리는 이 병이 꽃가루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직접 실험 대상으로 삼아 꽃을 두피에 문지르거나 꽃가루를 흡입하며 증상을 관찰했다. 결국 건초열이 꽃가루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이를 통해 알레르기의 면역학적 원리가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알레르기 비염은 면역 체계가 특정 유발 물질(알레르겐, allergen)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대표적인 유발 물질로는 꽃가루, 집먼지 진드기, 곰팡이, 동물의 털 등이 있다. 면역 체계가 이러한 물질을 유해하다고 잘못 판단하면, 히스타민 같은 염증 물질이 분비되며 재채기, 콧물, 코막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봄철에는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면서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도 알레르기 비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레르기 비염의 증상과 관리법

알레르기 비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재채기, 맑은 콧물, 코막힘, 눈 가려움 등이다. 코가 자주 막혀 한쪽 코로 숨쉬기가 어렵거나, 코 내부가 가려워 자주 문지르는 습관이 있다면 알레르기 비염을 의심해볼 만하다. 이를 방치하면 만성 부비동염(축농증)이나 중이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학습 능력 저하와 성장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여느 질병이 그렇듯, 알레르기 비염도 평소 생활 속에서 미리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레르기 비염이 걱정된다면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실천해보길 권한다. 

첫째, 실내 공기 관리는 알레르기 비염 예방의 핵심이다. 깨끗한 실내 공기는 증상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기청정기도 실내의 미세먼지와 꽃가루를 줄이는 좋은 수단이지만, 틈틈이 창문을 열어서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들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하루 최소 두 번은 창문을 열어 실내를 환기시키도록 하자. 또한, 실내 습도를 40~50%로 유지하면 곰팡이와 집먼지 진드기의 번식을 억제할 수 있다.

둘째, 외출 후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고, 머리카락과 피부에 묻은 꽃가루를 제거해야 한다. 가능하면 샤워를 하거나 최소한 머리를 감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외출 시 입었던 옷은 실내로 들이기 전에 밖에서 먼지를 충분히 털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실내로 유입되는 알레르겐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외부 환경에 늘 노출되는 자동차는 그 특성상 내부로 꽃가루가 들어올 가능성이 상존한다. 차량의 에어컨 공기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내부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도 봄철 알레르기 비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증상이 심해지면 미루지 말고 즉시 의사를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자. 항히스타민제나 비강 스테로이드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증상을 한결 완화할 수 있다. 최근에는 증상을 근본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면역 치료(알레르겐 면역 요법)도 시행되고 있다. 이 치료법은 원인 물질을 소량씩 주입하여 면역 체계를 적응시키는 방법으로, 장기적으로 증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비염이 심한 경우에는 레이저 치료나 수술적 치료도 고려할 수 있다.

알레르기 비염, 피할 수 없다면 다스리자

알레르기 비염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어렵지만, 생활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면 증상을 충분히 완화할 수 있다. 실내 공기질을 개선하고, 외출 후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며, 필요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알레르기 비염은 문턱을 넘어오는 봄바람 속에 숨어들어 매년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이를 완전히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차라리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봄도 어느새 두려움이 아닌 설렘의 계절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5년 4월 9일 대한제당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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