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평소와 다르던 친구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평소 성실하던 사람이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을 그저 성격 탓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뇌과학은 이런 행동이 우리 마음 깊은 곳,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뇌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셈이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이라는 미국의 뇌과학자가 쓴 책이다. 그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뇌를 연구하고, 사람들이 뇌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방송과 책을 통해 뇌과학을 설명해 왔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 ‘내가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특히 뇌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습관, 심지어 범죄 행동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갑자기 총기 난사라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데, 나중에 그의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그 종양이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부위를 압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우리가 단순히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만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글먼은 범죄에 대한 판단이나 처벌도 뇌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무조건 벌을 주기보다는 치료와 재활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여러 뇌 부위들의 협업 결과라는 점도 강조한다. 뇌 안에는 다양한 부위들이 각자 의견을 내고 경쟁하듯이 작동하면서, 마치 정치처럼 ‘결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싸우듯 갈등할 때, 이 내부의 뇌 작용이 원인이라는 설명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은 뇌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시험 기간만 되면 자꾸 딴짓을 하게 되는 이유,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도 초콜릿 앞에서 무너지는 이유도 뇌의 무의식적인 작용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나의 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물론 이 책이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어려운 실험이나 이론보다는 쉬운 예시와 비유를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깊이 있는 과학 지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뇌와 무의식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 안의 뇌, 특히 무의식이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 숨겨진 조각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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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 가운데 꽤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