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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술을 끊기 좋은 이유

1월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익숙했던 달력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숫자로 바뀔 때 우리는 더 나은 한 해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정렬하기에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이 시기는 잦은 모임이 이어지곤 합니다. 이렇게 신년 인사와 덕담이 오가는 자리에는 으레 술이 곁들여집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술잔은 한 해의 음주 습관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1월의 시작에서 건강을 다짐하지만 동시에 습관의 덫에 걸려들 위험에 놓일 수도 있지요

202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는 우리 사회가 음주에 얼마나 깊이 물들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성인의 월간 음주율은 58.3%에 달하며 특히 미래의 주축이 될 20대와 30대의 고위험 음주율은 66%에서 70%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나타냅니다. 연간 14조 원에 달하는 사회적 손실액 중 숙취로 인한 생산성 손실만 5조 원이라는 사실은 음주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보건 이슈임을 보여줍니다. 비록 이 통계가 특정 달의 상황은 아니지만 새해 모임과 결합하면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술의 기원과 인간의 본능

사람들이 술에 쉽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믿는 데에는 매우 오래된 생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2025년 『BioScience』에 발표된 다트머스대와 세인트앤드루스대의 공동 연구는 그 기원을 우리와 가까운 유인원의 행동에서 찾았습니다. 연구는 유인원이 자연 발효된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술이 관계를 엮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믿음의 배경에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유대감을 쌓았던 유인원 시절부터 이어진 본능이 자리합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술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다고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과거 유인원이나 고대 인류가 경험했던 알코올은 자연 발효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높은 도수의 주류와는 체내 작용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알코올이 주는 편안함, 들뜸, 관계의 부드러움은 근본적으로 신경계를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것을 넘어서 신경세포의 기능을 둔하게 만드는 결과입니다. 이는 일시적 쾌감을 선사하지만 뒤이어 판단력 저하와 충동의 분출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적당한 음주라는 착각

“적당히 마시는 술은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표현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2023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술의 안전 기준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단 한 잔의 술이라도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25년 9월 『BMJ Evidence Based Medicine』에 실린 영국과 미국 공동 연구진의 보고서는 이 결론에 힘을 실어줍니다. 이들은 기존에 일부 연구에서 주장되었던 ‘적당한 음주의 심혈관계 보호 효과’가 실제로는 통계적 오류나 연구 설계상의 착시에 가깝고 가벼운 음주조차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같은 해 『Neurology』에 발표된 하버드의대 연구는 우리의 뇌 건강에 대한 더 섬뜩한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일상적 과음 습관이 치명적인 출혈성 뇌졸중 발생 시점을 평균 10년이나 앞당긴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술로 인한 뇌출혈은 그 크기가 더 클 뿐 아니라 영구적 후유 장애도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알코올은 양이 적더라도 뇌 세포와 혈관 구조에 생체 흔적을 남기는 독성 물질인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술을 마실 때 기분 전환이나 해방감을 즐기는 동안 우리 몸속에서는 알코올을 해독하고 그 독성을 막기 위한 조용한 전쟁이 벌어집니다. 알코올은 혈액을 통해 뇌로 빠르게 전달되어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특히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영향을 미쳐 블랙아웃 현상을 유발합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변화로 일시적 쾌감은 생기지만 곧 대뇌 피질 기능이 떨어져 자제력을 잃고 충동이 쉽게 분출됩니다. 뇌가 느끼는 편안함은 신경세포가 마비된 결과입니다.

간에서는 알코올이 맹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바뀌어 염증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독성 노출이 반복되면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을 거쳐 회복 불가능한 간경변증으로 이어집니다. 알코올은 장내 미생물 군집의 균형도 무너뜨려 면역 반응을 약하게 만들고 장 점막을 뚫고 독소가 침투해 전신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를 만듭니다.

또한 알코올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올립니다. 장기간 반복되면 심장 근육이 약해지는 알코올성 심근병증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작은 잔이라도 반복되는 음주는 심장이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남습니다. 숙취 역시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몸이 독성 물질을 처리하고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새해에 절주를 시작하기 좋은 이유

새해 초는 습관을 바꾸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입니다. 시간의 흐름이 한 번 끊어지는 듯한 느낌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조금 떨어뜨려 바라보게 하는 심리적 거리감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부정적 습관을 끊고 긍정적 행동을 시작하도록 돕습니다.

행동과학 연구자들은 1월이 긍정적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헬스장을 찾는 발걸음이나 생활 습관 개선 시도는 이 시기에 크게 증가합니다. 2024년 『Psychology Today』는 연초라는 시기적 특수성이 미래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분석하며 이를 심리학적으로 ‘신년 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부릅니다.

이 같은 심리적 동력은 음주 습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완벽한 금주라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 쉬어보기나 한 잔 덜 마시기와 같은 작은 시도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새해의 다짐이 이러한 작은 절주 실천을 이어가는 안정적인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절주하는 한 해를 시작하며

절주는 완전한 금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술자리마다 한 잔이라도 줄이는 실천만으로도 뇌졸중과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음주 횟수를 줄이거나 마시는 양을 의식적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뇌와 간, 심장은 회복할 시간을 확보합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조절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국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절주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세요. 상담을 통해 자신의 음주 패턴을 점검하고 무리가 없는 장기 계획을 차분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일상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받으면 절주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연초는 삶의 리듬을 재조정하고 건강과 생활습관을 다시 살펴보기 좋은 때입니다. 한 해의 출발점에서 술의 유혹보다 나의 몸을 먼저 챙기는 선택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절주라는 작은 실천이 건강을 지켜줄 든든한 토대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이 글은 2025년 12월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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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nderson, D. J., et al. (2023). Alcohol consumption and social bonding: An evolutionary perspective. BioScience, 75(1), 12-23.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3). Global status report on alcohol and health 2023. WH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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