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과 레지던트 2년 차 중반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삭막한 병원 생활에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러다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의 안식을 얻어보고자 주위에 보이던 아무 책이나 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두 달가량 자투리 시간마다 책을 읽으며 지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책 읽기가 익숙해질 즈음, 마음속에서 어떤 공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정량적인 성취감은 있었지만, 정작 그 책에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를 짚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책의 제목과 중간중간 인상적인 문장 몇 개가 떠오르는 막연한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눈으로는 책을 읽었지만, 머리에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한 주, 두 주, 시간이 흐르면서 글도 점점 쌓여갔다. 그즈음 흩어진 글을 한데 모으고 다른 이들의 반응도 살필 겸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를 만들면서 한 가지를 정해야 했다. 블로그에는 카테고리라는 게 있었는데, 쉽게 말하면 여러 글을 하나로 묶는 주제어를 가리킨다.

내가 쓰는 글들의 카테고리를 뭐라고 해야 할지 고심했다. 책을 읽고 쓰는 글이니 ‘서평’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내 글에 ‘책을 평한다’는 뜻의 서평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신이 없었다. 그다음 ‘독후감’이라는 이름도 생각해보았지만, 오래전 개학 날이 임박해 완성하던 방학 숙제의 느낌이 들어서 별로 내키지 않았다. 이런저런 카테고리 이름의 후보를 생각해본 끝에,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를 담아서 ‘독서록‘으로 정했다. 블로그 이름은 내가 읽은 책이 모여있다는 의미로 내 이름 뒤에 ‘서재’를 붙였다. ‘신승건의 서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써 온 글들을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도 서평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대답일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책을 읽었고, 그냥 읽고 지나치기 아쉬워서 글을 썼다.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책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과 신변잡기 적힌 내용도 적잖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쓴지 5년이 훌쩍 넘었다. 나의 글의 정체성 찾기라고 해야 할까. 이제야 비로소 서평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평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집어 든 책이 <서평 글쓰기 특강 김민영 , 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06월 02일 출간>이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독서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두 저자 김민영과 황선애가 함께 쓴 책이다. 저자들은 서평 쓰기야말로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독서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책을 읽은 후 생각을 정리하며 서평을 써보라고 권한다. 이 책의 부제가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인 이유이다.

첫 장에서는 독서의 연장으로서 서평 쓰기가 갖는 의미와 목적을 알아본다. 책에서 접한 내용을 글로 옮기면 우선 자기 스스로 그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책을 매개로 자기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머릿속에 지식을 입력하는 걸 넘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출력 독서법’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장에서는 독후감과 서평을 비교한다. 독후감은 개인적인 감상을 위주로 써 내려간 글이다. 다분히 주관적인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서평은 자신이 읽은 책을 남에게 소개한다는 목적을 갖고 쓰는 글이다. 알고 보니 내가 그동안 써온 글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독후감이었다.

세 번째 장에서는 비평과 서평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서평은 넓게 보면 비평의 한 종류로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서평이라고 할 때는 어떤 책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쓰는 글을 가리킨다. 그와 비교해 비평은 글쓴이가 다양한 배경지식을 동원하여 책의 사회 문화적 가치를 논한다는 특징이 있다.

네 번째 장에서는 서평 쓰기 로드맵을 소개한다. 서평 쓰기 로드맵이란 ‘발췌, 메모, 개요, 초고, 퇴고’로 이어지는 서평 쓰기의 실제 과정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서평 쓰기에 필요한 요령들도 소개하고 있다. 평소 서평을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면, 네 번째 장에서 소개하는 서평 쓰기 로드맵을 참고하여 시작해보면 좋을 듯싶다.

한편, 저자는 서평 쓰기 로드맵에서 ‘퇴고’를 특히 강조하는데, 다섯 번째 장에서 이 주제에 대해서 더욱 깊이 알아본다. 알다시피 퇴고란 처음 쓴 글 즉 초고를 검토하며 더 좋게 고치는 과정을 말한다. 저자는 퇴고가 글쓰기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글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처음부터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인데, 퇴고를 염두에 두면 그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글쓰기에 부담이 아닌 여유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 장에서는 각종 매체에서 서평가로 활동하는 이들과 서평 쓰기를 주제로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모두 여섯 명의 서평가들이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이들이 맨 처음 서평을 쓰게 된 계기는 서로 다르지만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나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평 쓰기라는 책의 주제가 자칫 글쓰기 교재처럼 식상해질 수 있는데, 서평가들과 함께한 인터뷰 덕분에 여타 글쓰기 책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생동감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책 하나를 읽은 뒤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허전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래서 읽은 내용을 글로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다면. 아니면 나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쓴 경험이 있지만,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 책 <서평 글쓰기 특강>이 적잖게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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