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면 [4]


처음엔 내가 잠이 덜 깬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이메일에는 분명히 우리가 다음 날 타고 가야 할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통보가 담겨있었다.

전후 사정을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빠듯한 예산에 맞추어 독일 국적의 한 항공사에 예약을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 항공사의 조종사들이 파업을 했다. 그 항공사에 속한 항공편들이 무더기로 결항하였고, 우리가 예약했던 비행기는 출발을 24시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예고 없이 취소되었다. 이메일에는 별도의 항공편과 관련된 그 어떤 안내도 없었다.

우리는 우피치 미술관을 떠나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우선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는 것이 급했다. 왜냐하면 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병원에 복귀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루라도 늦으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예정된 날짜에 맞추어 돌아가야 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전화로 항공사에 전화를 했다. 먼저 한국 지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밤늦은 시간이어서 아무도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독일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항공권이 취소된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는지, 거듭된 전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담당자와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일어서서 팔짱을 끼고 노트북 앞을 맴돌았다.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정리해보니 해야 할 일의 순서가 잡혔다. 다음 날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나는 하는 수 없이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다행히 대안이 있었다. 취소된 비행기와 비슷한 시각에 로마에서 출발해서 이스탄불에서 잠시 쉬었다가 서울로 가는 터키 항공의 비행기였다. 원래 계획보다는 조금 늦어지지만 병원에 결근하지 않을 수 있는 여정이었다. 우리 부부로서는 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터키 항공의 비행기표 2장을 구입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다음 날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피렌체를 떠나 기차를 타고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인 그곳에서 또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로마 피우미치노 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병원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기념품으로 에스프레소 깡통을 한가득 구입했다. 마지막 체력까지 모두 소진했을 즈음 터키 항공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두어 시간을 날아서 경유지인 터키의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서울을 향해 다시 이륙하기까지 일곱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공항을 떠나서 근처로 나갈 수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고민할 것 없이 공항을 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중해 해변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택시에서 내려 해변을 따라 잘 정돈된 산책로를 걸었다. 늦은 밤 해변의 산책로에는 이국적인 운치가 감돌았다. 산책로를 따라서 오른쪽에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불을 켠 카페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왼쪽에는 지중해의 잔잔한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구름을 타고 오는 등대처럼 저 멀리서부터 불빛을 깜박거리던 비행기가 어느새 손에 잡힐 듯한 거리까지 다가오더니, 공항 방향으로 찬찬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손을 잡고 걸으며 지난 며칠 동안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되돌아보았다. 콜로세움 앞에서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던 일, 수녀원 창문을 통해 안개를 머금은 움브리아 평원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던 순간, 바로 전날 항공권이 취소되어 당황한 가운데 차분하게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했던 경험들을 하나둘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뜻하지 않게 이국적인 해변에서 신혼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항공권이 갑자기 취소된 당혹스러운 사건이 있었기에 우리가 그 시간을 이스탄불의 해변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걸. 그때는 불행이라고 느꼈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행운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함께 걸어가게 인생의 여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숱하게 펼쳐지겠지만, 항상 희망만은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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