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면 [3]

땡볕이 내리쬐는 2014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어딘가에 들어가 좀 쉬었으면 했다. 그때 마침 길 건너편에 예쁜 성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통 한옥의 기와지붕 너머로 수줍게 드러난 현대적인 느낌의 성당 종루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땀도 식힐 겸 성당 안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성당 내부도 예사롭지 않았다. 오래된 고서적이 전시된 1층 로비는 흡사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양옥이 한옥을 품고 있는 구조였는데, 내가 이런 방면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주 공을 기울여 지은 건물이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성당 안을 거닐며 더위를 식히고 밖으로 다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어떤 인상 좋은 신부님 한 분이 성당 입구에 서 있었다. 우리는 성당에서 신부님을 만날 때마다 의례 그렇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신부님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성당 참 예쁘죠?”

내가 대답했다.

“네 정말 예쁘네요.”

신부님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신부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신부가 되기 전에 건축을 공부했어요. 신부가 되고 나서 여기 원래 있던 다 무너져 가던 성당을 새로 지어보겠다고 교구에 이야기했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여기로 보내졌고, 함께 힘을 모아서 새로 지은 게 지금의 이 가회동 성당입니다.”

신부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성당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신부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부부세요?”

“아. 아니에요. 결혼 준비 중이에요.”

그러자 신부님이 더 크게 반색하며 말했다.


“오, 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결혼하세요. 앞으로 여기를 결혼 명소로 만들 참이랍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 신청하세요. 나중에는 신청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지 몰라요.”

우리는 신부님의 설득에 완전히 넘어가서 이 성당에서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그 자리에서 신청하려고 하였으나, 가회동 외 지역 사람들을 일단 가회동 성당 사람들이 신청한 후 남는 날짜에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본당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성당의 체계를 고려했을 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회동 외 지역의 사람들도 신청이 가능한 날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쪼록 그때까지 우리가 결혼식 날짜로 정한 날이 무사히 비어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그날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다른 지역 사람들도 신청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날이 되었다. 나는 새벽부터 성당 앞에서 기다리다 가장 먼저 접수를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리는 원하는 날짜에 가회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난 지 일 년 반이 흐른 2015년 3월, 우리는 서울의 가회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사람들이 화이트데이라고 부르는 날 여자 친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나는 우리의 청첩장에 담아 보낸 아래의 자작시처럼 아내와 평생토록 사랑으로 함께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당신을 만나면

신승건

당신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해맑은 미소로 저를 반겨주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면 행복해집니다.
차분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당신의 훌륭함보다 저의 미천함을
더 가치 있고 고귀하게 여겨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알아갈수록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저를 아끼고 배려해 주는 모습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게 또다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여도
현명한 조언으로 밝은 미래를
깨닫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만날수록,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신혼집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양가 부모의 금전적인 도움을 모두 사양하고 오로지 우리 부부가 피땀 흘려 일해서 모은 돈으로 구한 집이었다. 우리는 진즉 양가 부모에게 우리를 돈으로 도와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허름한 집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갖추어 가는 여정이야말로 삶의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안락함을 얻는 대신 그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신혼여행지는 로마, 아시시 그리고 피렌체까지 이탈리아의 도시 세 곳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김포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간 후, 공항 철도로 갈아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면세점에 들러 미리 구입한 물건들을 챙긴 후 출국 절차를 밟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로마에 있는 동안 비가 계속 와서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콜로세움에도 갔지만,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는 통에 가까스로 사진 두어 장 남기는 걸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조차도 미소지으며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스페인 계단 쪽에 갔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모처럼 맑아진 날씨 덕분에 우리는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그 앞의 콘도티 거리에서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할 장갑도 샀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바티칸에도 들렀는데, 단순히 관광만 한 게 아니라 베드로 대성당 안에서 미사도 보았다. 아름다운 비둘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삶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했다. 우리는 그렇게 로마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기차에 몸을 싣고 북쪽의 아시시라는 조용한 마을로 향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곳에 눌러앉아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나면 그런 마음이 더욱 고개를 드는데, 아시시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아시시는 이탈리아 중부의 비옥한 움브리아 평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평화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실제로도 아시시에는 고요함과 여유로움이 감돌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아시시에 있는 동안 호텔이 아닌 수녀원에 머물렀다. 신혼여행과 수녀원이라는 조합이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다른 여행지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소박함에서 오는 감동을 한껏 마음에 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시시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수도사들이 머물기 위해 마련된 방에서 잠을 깬 아내와 나는 벽 한쪽에 난 작은 창문을 열어젖혔다. 눈앞에는 넓은 평원 위로 조용한 안개가 나지막이 깔린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 크지 않은 뒷마당으로 나가서 여유로운 아침 맑은 공기로 가슴을 채우고, 수녀님이 준비해주신 정갈한 빵 몇 개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길을 나서자 흡사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보이는 풍성한 올리브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아스팔트가 아닌 닳고 닳아 매끈해진 돌들이 박혀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길 양옆으로 수 세기는 족히 넘게 한 자리를 지켜왔을 석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흔히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하지만 이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런 풍경이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아시시의 골목을 거닐면서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워가면 좋을지에 대해 잔잔한 대화를 이어갔다. 아시시에서 며칠을 보낸 후,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타고 짧은 신혼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떠났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두오모 성당으로도 유명한 피렌체였다. 르네상스의 도시답게 피렌체에는 다양한 명소가 많았다. 그 가운데서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종종 꼽히는 우피치 미술관은 꼭 가 볼 만한 곳이었다.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변에 위치한 우피치 미술관은 원래 피렌체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이 사용하던 궁전이었다.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는데, 메디치가가 몰락한 후 그들의 궁전은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우피치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가 우피치 미술관에 갔던 때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바로 하루 전이었다. 그러니까,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다시 기차를 타고 로마로 가서 곧바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이 신혼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셈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부터 미술관 입구에 가서 그곳을 전문으로 안내하는 한국인 가이드를 만났다. 미술관이 얼마나 큰지 가이드를 따라가며 핵심 전시품들의 설명만 들었는데도 벌써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약간 목도 마르고 출출해질 무렵, 우리는 그늘이 있는 미술관의 발코니로 가서 쉬기로 했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시 쉬려고 할 때, 스마트폰에서 “딩동”하고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본 나는 그 내용을 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이메일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귀하가 예약한 로마발 서울행 항공편이 취소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일부 내용은 이전 글에서 이미 소개된 것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초안을 보려면 아래 무료 이메일 구독을 신청하십시오.

“당신을 만나면 [3]”의 4개의 댓글

    1. 청첩장에 새겨 넣으신 시가 참 좋네요.
      한편으론 이제 이야기 끝인가 싶어서 아쉬웠는데 다시 다음 글로..
      계속 비행 취소되고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작성하신 서평 못지 않게, 아니 사실 그보다 더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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