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면 [1]

인턴 시절 나는 주로 병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오프1가 주어지면 그때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차로 한 시간쯤 운전해서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해주는 저녁을 먹고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저녁부터 깊은 잠이 들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저녁 먹고 잠자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날도 3일 만에 집에 와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된장찌개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주방 정리를 마치고 식탁 맞은편의 의자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요새 병원 일은 좀 할 만하니?”

“인턴이 하는 일이 뭐 그냥 그렇죠.”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그건 그렇고, 네 제수가 아는 사람 소개해 준다는데 한번 만나볼래?”

대학원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회사를 만들었다가 끝낸 일련의 일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걸 곁에서 보고 있던 어머니는 그저 불안하고 마뜩잖은 시간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머니의 가장 큰 바람은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큰아들이 더 늦기 전에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내 두 살 아래의 동생은 먼저 결혼을 해서 자기 가족을 이루었다. 동생은 대학생일 때부터 만나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대학교 졸업 후 서울 양재동에 있는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고 바로 결혼을 했다. 제수씨가 된 동생의 여자 친구는 졸업 후 은행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다. 화목하게 지내는 동생네 가족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어머니는 휴대폰을 열어서 제수씨에게서 받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단아한 인상의 한 여자가 어느 카페 같은 곳에 앉아있었다. 제수씨 은행 동료의 대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다. 수수한 옷차림과 차분한 웃음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한 번 만나봐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여 주소록에 저장했다.

잠시 후 카톡을 열어보니 친구 목록에 여자의 이름이 자동으로 추가되어 있었다. 무슨 말로 첫인사를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이모티콘 같은 걸 자제하고 최대한 정돈된 말투로 내 소개를 남겼다. 이후 문자가 오가는 동안 여자가 눈웃음 모양의 이모티콘 같은 것을 쓰는 걸 보고, 나도 조금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약속 날짜는 여자의 일정에 맞추기로 했다. 여자는 은행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방 발령으로 여자의 고향인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마침 다음 주 일요일에 친구 결혼식 겸해서 서울에 왔다 갈 예정이랬다. 나도 그 일요일이 오프라 오전부터 집에서 쉴 수 있었다. 그날로 약속을 잡으면 병원에서 일하다가 떡진 머리로 나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나도 여자에게 그날이 좋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는 내가 고르기로 했다. 일단 사람들이 부대끼는 강남 쪽은 제외했다. 여자가 식사 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이제껏 내가 가본 식당 중에서 괜찮은 곳들을 떠올려 보았고, 남산 자락의 독일 문화원 바로 옆에 위치한 조그만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약속 장소로 낙점했다.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故 김수근 선생이 직접 설계한 가정집을 후에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곳으로, 내가 중요한 손님과 만날 때 종종 이용하는 곳이었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평소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서 약속 시각인 6시에 늦지 않도록 집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평소 걸리는 시간’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약속 시각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는 도로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6시를 10분쯤 앞두고 나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맞은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처음으로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반가움 반 어색함 반으로 대답했다.

“아 …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기로 한 신승건인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심 여자도 늦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는 최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제가 30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 어쩌죠?”

“네, 주말이라 길이 많이 막히죠? 조심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최대한 빨리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결국 약속 시각보다 40여 분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장의 빈자리에 대충 세워두고 잔뜩 상기한 얼굴로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자 앞에 도착해서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여자는 생글생글한 웃음을 지으며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길 막히는 데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이 여자는 내가 늦은 것에 대해 별 불만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할까 봐 걱정해주고 있었다. 사람의 직감이라는 게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이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무척 깊은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첫 만남에 40분이나 늦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여자의 첫인상이 참 좋았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자는 나보다 2살 어리다고 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자라온 환경이 비슷했다. 둘 다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궁핍하지도 않은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건강히 살아있고, 손아래 동생이 하나 있는 점도 같았다. 둘 다 성당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동질감을 느꼈다. 심지어 휴대폰도 서로 똑같은 제품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직업인 은행원은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사실 나의 가족 중에서는 은행원 출신이 많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다 만나서 결혼했다. 외할아버지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하던 은행에 계셨다. 아버지의 동생인 작은 아버지도 은행원이었다. 이 자리를 마련해준 내 동생의 아내, 즉 제수씨도 은행원이다. 쉽게 말해서, 나와 내 동생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가족의 대부분이 은행원이었다. 여자는 내가 은행원 가족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싫지 않은 듯했다.

그다음으로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여자는 서울대를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꽤나 놀랐다. 그때까지 내가 서울대 출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공부만 잘하는 차가운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자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전혀 달랐다. 활기찼지만 품위가 있었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자가 부산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서울역까지 여자를 바래다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기차 플랫폼까지 내려가서 배웅해 주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여자가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어서 생각만 하고 말았다. 우리는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열차 안내전광판 밑에서 조만간 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같은 자리에 서서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면 나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여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첫 만남에 조금 섣부른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 여자가 나의 아내가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지내며 매일 저녁 전화로 만났다. 나는 통화를 시작하면 여자가 이어폰을 꼈는지부터 확인했다. 휴대폰 전자파로부터 여자를 지켜주겠다는 내 나름의 관심의 표현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과를 공유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묻고 답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 알게 된 내용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얼른 수첩에 기록해 놓았다.  3인 1실의 인턴 기숙사에서 지내던 시절이라, 통화하는 중에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건물 바로 위층의 빈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조명이 모두 꺼진 강당 뒤에 앉아 통화를 이어갔다.

보름 후 나는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 9시에 서울역을 출발했다가 당일 밤 9시에 부산역에서 돌아오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기차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니 여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부산역을 빠져나와 여자의 직장 근처인 중앙동으로 향했다. 여자는 마치 여행 가이드라도 된 것마냥 오래된 동네의 골목 골목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동안 매일 저녁 통화를 했던 덕분인지, 우리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난 사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일주일 후 여자는 출장 때문에 서울에 온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내가 일하는 병원에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다만 내가 일이 끝날 때까지 병원 로비에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자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는 퇴근 후 여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다음으로 소화도 시킬 겸 병원에서 멀지 않은 청계천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선선한 가을밤이라 우리 말고도 산책을 나온 사람이 많았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섞여서 천천히 걸었다. 청계천 3가쯤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빈 벤치를 하나 발견했다. 나는 손으로 벤치 쪽을 가리키며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고 했다.

우리는 노란 조명이 내리비치는 나무 벤치 위에 나란히 앉았다. 사실 나에겐 생각이 있었다. 만난 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앉은 벤치에서 일어나기 전에 여자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렇다. 이제 비로소 나의 심장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 어차피 숨길 수 없고, 숨겨서도 안 될 일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말해야 할 것이라면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여자와 계속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의 심장 이야기를 듣고 떠날까 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떠나는 것조차 내가 지켜줘야 할 여자의 결정이었다. 나의 욕심이 여자가 스스로 판단을 내릴 기회를 막아선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가 결혼하지도 않을 남자와 무의미한 시간을 쓰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이야기부터 학창 시절에 세 차례에 걸쳐 가슴을 여는 수술을 받은 이야기까지, 최대한 상세히 나의 심장 병력에 대해 털어놓았다. 지금 내 심장에는 인공 판막이 있으며 평생 와파린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있는 그대로 말했다. 한동안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여자가 갑자기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1. Off: 당직의 반대말로, 근무를 마치고 퇴근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일부 내용은 이전 글에서 이미 소개된 것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초안을 보려면 아래 무료 이메일 구독을 신청하십시오.

“당신을 만나면 [1]”의 3개의 댓글

  1. 오늘따라 신새벽부터 심란해지는 마음 부여잡고
    차분히 평정심을 찾으려는중에 신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진정성이 묻어나는 몰입의 일상을
    느끼게 되어 이내 곧 제마음도 편해지는 새벽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다음 전개되는 이야기가 무척궁금
    해지네요 기다려집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2. 한 편의 영화같은 이야기글이군요.
    결혼한 독자들은 추억을 재구성하는 즐거움도 있구요.
    드라마처럼 다음회를 기다립니다.

  3. 매력있는 글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글 읽는 동안 스르르 몰입이 아주 잘 되네요. 소재도 소재려나와 진정이 우러나서 그런가봅니다.
    게다가 중요한 장면에서 딱 끊으시는 절단신공이라니.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