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는 속지 않기를

    응급실 바깥에서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트지를 바른 응급실 유리문 너머에서 앰뷸런스의 경광등 불빛이 멈춰 섰다. 잠시 후 접수대 앞에 있던 청원 경찰들이 응급실 문을 열어젖혔고 2월의 한기가 열린 문 사이를 통해 응급실 로비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구급대원들이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을 들것에 실어서 들어왔다. 현장부터 함께 한 구급대원에 따르면, 아주머니가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했다고 했다. 나는 계속 아주머니의 상태를 주시하며 비어있는 침대로 안내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의식이 있었다. 숨찬 정도도 집에서 출발할 때보다는 꽤 나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숨찬 것도 찬 거지만 온몸이 가려워서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침대에 자리를 잡고, 나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이전까지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지냈다고 했다. 심지어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챙겨 먹는 약도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아주머니는 갑자기 호흡곤란이 시작되면서 온몸이 참을 수 없도록 가려워진 것이다.

    환자를 훑어보던 중 특이한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무릎 주변으로 무엇에 물린 것처럼 보이는 붉은 반점들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게 교과서에서 보던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나필락시스란 온몸에 걸쳐 나타나는 극심한 과민 반응을 말한다. 아나필락시스를 즉각 치료하면 큰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지만, 지체하거나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로 호흡곤란 때문에 백 명 중 한 명이 희생될 정도로 위험하다. 만약 아나필락시스가 맞는다면 아주머니는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아나필락시스는 벌레의 독처럼 매우 작은 양의 원인 물질로도 일어날 수 있다. 아주머니의 무릎에 있는 붉은 반점이 중요한 단서인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오늘 벌레에게 물린 적이 없는지 거듭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물론 모를 수도 있었다. 작은 벌레에 물렸으면 정작 물려놓고도 모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속 뭔가를 숨기는 듯 내 시선을 피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영 개운치 않게 느껴졌다.


    내가 아주머니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밀고 당기는 동안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이가 하나 있었다. 아주머니가 병원에서 들어온 후부터 계속 그 주변을 맴도는 중년 남성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서 턱을 내밀고 혹시 환자의 보호자가 아닌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당황한 듯 뒷걸음을 쳤다. 그러더니 곧 조심스레 다가와서 자기가 이 환자의 보호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나 불안한 표정으로 아주머니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내게 되물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지금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환자의 증상을 불러온 진짜 원인일 듯싶었다. 나는 이 중년의 남성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들이 숨기려 하는 증상의 실체를 찾아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 남성의 정체에 관해서 물어보는 게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가족이 아닌 이상 법적으로 보호자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환자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지만 그리하려면 먼저 환자와 무슨 관계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환자 가족이 아니라면 함부로 환자 상태를 말해줄 수 없다고 알려줬다.

    그 중년의 남성은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묻는 나의 질문을 듣고 그걸 꼭 말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아주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오른손 검지로 인중을 지그시 누른 채로 잠시 고민하더니, 꽤나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자기가 오늘 이 아주머니의 진료를 본 한의사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나더러 그 한의사에게 본인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줘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온 이유는 급작스러운 과민 반응일 가능성이 있고, 피부의 반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벌레에 물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한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사실은 응급실에 오기 전 자신이 아주머니의 무릎에 봉침시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목을 움켜쥐며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해서 구급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자기도 20년 가까이 한의원을 운영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크게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봉침시술이란 벌의 꽁무니에 있는 침에서 추출한 독, 즉 봉독을 치료 효과를 기대하며 사람의 피부에 주입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한의원에서 관절통 완화 효과를 기대하고 이 같은 봉침을 쓴다고 한다. 문제는 봉독이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한의사는 사실을 털어놓고 나서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한의사를 보며 말했다. 하마터면 당신의 무모한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뻔했다고. 한의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곧 아주머니에게는 에피네프린이 투여되었다.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인 걸 고려하여 두어 시간 동안 수액을 맞으며 지켜보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아직 숨 쉬는 것이 아주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안심이 되는 듯했다.

    아주머니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게 보이자 그 한의사는 내가 있는 스테이션1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뒤를 돌아서 아주머니를 향해 웃으며 손을 한 번 흔들더니 다시 나를 보고 손을 동그랗게 모아 입 앞에 대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제 저는 좀 가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뭐 제가 여기 더 있을 이유도 없을 것 같고 …”

    나는 대답했다.

    “그래도 선생님 환자이신데, 퇴원할 때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한의사가 대답했다.

    “음, 뭐 틀린 말은 아닌데요 …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 지금 한의원 문을 열어놓고 와서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

    나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내 대답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미 챙겨온 가방을 들고 응급실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잠깐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응급실 인턴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조금도 고민할 것 없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스테이션에 비어있는 의자를 찾아 잠시라도 앉아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응급실 인턴에겐 잠깐 앉을 수 있다는 건 더없이 달콤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게 주어진 잠깐의 여유를 다른 식으로 쓰기로 했다. 나는 어쩌다가 벌침을 맞을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나 들어볼 참으로 그 아주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혼자 응급실에 버려진 그 환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말동무나 해줄 생각이었다.

    아주머니는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듣자 하니 서울 시내의 골목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정식 백반집인 듯했다. 아주머니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건 아니고 설거지나 손님이 일어선 후 식탁 정리처럼 식당의 잔업무를 돕는다고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할 때까지 꼬박 14시간을 일하고, 그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해서 12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 몇 달 사이에 무릎관절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30분 이상 걷기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가까운 정형외과에 갈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식당에서 일하는 언니가, 정형외과에 가면 무조건 수술을 하자고 한다며 한껏 겁을 주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고민 끝에 그 언니로부터 점괘가 용하다는 한의원을 하나 소개받아서 그리로 갔다고 했다. 조금 전까지 응급실에 있던 그 한의사의 한의원이었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응급실에 오기 바로 전 봉독시술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처음에 응급실에 왔을 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그녀는 한의사가 말하지 말라고 시켰다고 털어놓았다. 그 한의사가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때 스테이션 쪽에서 인턴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이제 좀 쉬다가 별일 없으면 퇴원하게 될 거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다른 환자 채혈을 마치고 검체 수집함으로 향하는 도중에 아주머니의 침대 쪽을 돌아봤다. 퇴원 결정이 내려졌는지 아주머니는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두 손을 포개어 잡으며 말했다. 다시는 제발 이상한 치료는 받지 말라고. 이제 더는 속지 말라고. 아주머니는 나에게 잘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몇 시간 전 가쁜 숨을 쉬며 들것에 실려 들어왔던 바로 그 문을 통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1. 병원의 입원 병동이나 응급실 등에서 의료진이 머물면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마련된 구역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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