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아니라도 걱정 없도록

와파린Warfarin이라는 약이 있다. 이 약은 피를 굳지 않게 하여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이런 효능이 있는 약들을 혈액 항응고제라고 한다. 혈전은 피떡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피가 응고된 것을 말한다. 피의 응고는 상처가 났을 때 더 이상 피가 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신체 반응이지만, 혈관 내에서 피떡이 생기면 혈관이 막혀버리기 때문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와파린을 쓰는 경우 중 대표적인 예가 인공 판막을 가지고 있을 때다. 심장에는 판막이라는 여닫이문 같은 구조가 있는데, 피가 한쪽으로 흐를 때는 열리지만 반대 방향으로 흐르려고 할 때는 닫히게 되어 있다. 심장의 왼쪽 부분이 몸 전체로 산소가 풍부한 피를 보내는 역할을 하고, 오른쪽 부분은 폐로 피를 보내어 산소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피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는 구조가 판막이다.

판막에 문제가 있을 때 인공판막으로 교체하기도 한다. 인공판막은 주로 세라믹이나 합금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원래 판막의 기능을 대신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아무래도 자연 상태의 판막과 비교했을 때 피의 흐름이 변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혈전의 위험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이때 와파린은 피를 굳지 못하게 하여 혈전이 생기는 위험을 미리 방지한다. 오늘날 와파린은 인공판막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혈전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와파린과 인공 판막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왼쪽 심장은 몸 전체로 피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왼쪽 심장의 중간에 놓여서 심장이 뛸 때 피가 거꾸로 가지 않도록 하는 판막을 승모판이라고 한다. 나의 승모판은 태어날 때부터 좁아져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시점인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병원에 입원하여 승모판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심장 수술이 치과 치료처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한 번 교체하면 평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다. 와파린을 복용할 때에는 피가 얼마나 천천히 굳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을 의사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검사 결과로 나타낸 것이 INR이다. 보통 사람의 INR 값은 1이지만, 나의 INR 값은 2에서 3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내 피가 보통 사람의 피보다 두세 배 정도 느리게 굳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와파린은 꽤나 까다로운 약이다. 같은 양을 복용하더라도 몸 상태에 따라서 혈액의 굳기를 조절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심지어 술 한 잔을 마셔도 그 정도가 변한다. 음식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와파린과 반대 작용을 하는 비타민 K가 많은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시금치 같은 녹황색 채소다. 청국장도 비타민K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와파린 복용 시에는 피해야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이 와파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와파린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은 혈액 검사를 하여 혈액의 굳는 정도가 목표한 수준에 있는지 확인한다. 평소 나의 INR은 다소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2에서 3이라는 목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도 3개월마다 찾아오는 혈액 검사 날이었다. 피검사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피를 뽑고 기계에 넣어 돌려 결과를 얻는 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항상 진료 예정 시각보다 1시간 앞서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고 진료실로 향한다. 진료실 앞 대기실 의자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 진료실 문 앞에는 예약 시간과 환자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있고, 외래 간호사는 쉴 새 없이 진료실 안의 컴퓨터와 진료실 밖의 대기 환자들을 오간다. 만약 예약 시간이 되었는데도 피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기라도 한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내 순서는 뒤로 밀린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예약 시간에 외래 간호사 컴퓨터에 검사 결과가 뜰 수 있도록 1시간 앞서 병원에 가는 것이다.

예약 시간이 되었을 때 외래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흰 눈썹에서 인자함이 느껴지는 N 교수가 앉아있었다. N 교수는 정년퇴임을 한 Y 교수의 후임으로 내 진료를 맡고 있었다. 3개월마다 만나다 보니 이제는 길 가다가 만나도 알아볼 정도로 익숙해졌다.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초코파이처럼 생긴 진료실 의사를 다리 사이로 당겨 앉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진료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N 교수가 모니터의 환자 목록에서 내 이름을 클릭하고 검사 결과를 열어보았다. 검사 결과를 훑어보던 그의 미간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 미묘한 표정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날짜 옆에 기록된 INR 값이 무려 7을 넘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여러 번 병원을 오가는 동안 그렇게 높은 수치는 처음이었다. 나의 INR 적정 수치는 2에서 3 정도다. 그런데 7이라니. 이게 사실이라면, 피가 굳는 정도가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만약 실수로 옆구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기만 해도 걷잡을 수 없는 출혈이 생길 수 있다.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N 교수도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교수님이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바로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INR이 7로 치솟은 것은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나 자신의 일이었다. 의사와 환자는 환자의 회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달려가지만, 의사는 어디까지나 보조자일 뿐이다. 실제로 잘못되었을 때의 위험과 그 위험에서 오는 공포는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애써 냉정함을 되찾고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INR이 치솟을 이유가 없었다. 평소와 비슷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약도 잘 챙겨 먹었다. 하지만 모니터에 뜬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N 교수는 일단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나는 외래 진료실을 나와서 옆 건물의 응급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뛰다가 혈압이 올라서 혈관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가라앉히며, 옆 건물에 있는 응급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응급실이 그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내 몸에 시한폭탄이 들어있을지 모르는데, 응급실에 있는 의료진들은 전혀 폭탄처리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의료진들이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 처리를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의사의 눈으로 보던 응급실과 환자의 눈으로 보는 응급실은 전혀 달랐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또 얼마간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응급실 담당 의사가 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고, 의사는 내가 하는 말을 차트에 열심히 받아적었다. 그 의사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내게 다시 혈액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혈액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도 그 의사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그 의사의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응급실 의사는 INR 값이 높으니 일단 비타민 K를 투여하자고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비타민 K는 와파린과 반대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피가 잘 굳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그 의사에게 말했다.


“만약 선생님 말씀대로 혈액 검사가 잘못되었다면, 제가 인공 판막을 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타민 K가 혈전의 위험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비타민 K를 쓴다는 것은 혈액 검사가 오류일 수 있겠다는 선생님의 추정과도 맞지 않는 것 같네요.”

그 응급실 의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역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어차피 재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쯤 걸릴 테니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요.”

그 의사는 내 말을 듣고 돌아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두 번째 혈액 검사 결과를 들고 돌아왔다. INR 값은 2.7이었다. 와파린 복용의 적정 범위 안에 있었다. 약물이 몸속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와파린의 반감기는 하루에서 이틀 정도 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안 한 상태로 한 시간여만에 INR이 7에서 2.7로 줄어드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두 번의 검사 결과 가운데 하나는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이 병원을 앞으로도 믿고 다니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개 환자가 거대 병원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주치의인 N 교수를 언짢게 할 수도 있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앞으로도 자기를 돌봐줘야 할 의사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환자로서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처럼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 병원을 믿을 수 있는 곳으로 남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병원의 불만 접수창구를 통해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곧 병원 차원의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다. 며칠 후, 첫 번째 혈액 검사를 담당한 의료진이 혈액 검사 기계의 보정calibration을 하지 않은 게 원인임이 밝혀졌다. 저울에 비유하자면,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눈금이 0을 가리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로 무게를 잰 것이다. N 교수가 아니라 혈액 검사를 담당하는 진단검사의학과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맨 처음 이 사실을 파악한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는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느니, “결과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았냐”라느니. 나로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런 태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 자기를 곤혹스럽게 할 거라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 알고 보면 그런 상황에서 환자들이 보여주는 집요함은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 의료진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말이다.


그 의사는 얼마 후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사과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일이 더 커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와 대화를 해보니 말이 통하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가 함께 작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사과를 결심한 것은 서로에게 다행이었다. 나는 응급실 진료비와 추가 검사비만 환불받고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나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사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내가 사과를 받으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다. 나는 고개 숙여 사과하는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사과하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일이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검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기계 오류로 잘못된 혈액 검사 결과를 얻은 이들이 분명히 더 있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그분들을 찾아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의사임을 처음으로 밝히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의사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을 바로잡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의사가 아닌 이들에게 일어났다면 영문도 모르고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란 걸 선생님 스스로 잘 아실 겁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환자들 한 분 한 분 관심을 두고 일해주기를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진단의학과 의사가 답했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처럼 이후 일은 순조롭게 잘 처리되었다. 3개월 후 다시 만난 N 교수도 평소처럼 차분하게 나를 살펴주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응급실에서 겪은 일은 나에게 결코 잊지 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를 질문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의사보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의사를 가족으로 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흔하다. 나는 의료라는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그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건강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가족이 환자라도 이렇게 하겠는지. 내가 환자라면 이런 대우를 받고 싶은지. 먼 훗날 언젠가 내가 의사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볼 때, 그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의사가 아닌 이들이 의사가 아니라도 걱정 없도록.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일부 내용은 이전 글에서 이미 소개된 것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초안을 보려면 아래 무료 이메일 구독을 신청하십시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