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인정받는 법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휴식기를 보내기로 했다. 그때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쉼 없이 달려온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그 이후 이어지게 될 삶을 준비하며 솜을 고르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 얼마 간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침마다 조금 더 눈을 붙이겠다고 이불 속으로 숨을 필요도 없었다. 알람을 끄고 “5분만” 하는 생각에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경험이 많았던 터라, 알람 때문에 더 이상 아침잠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열시, 그리고 나중에는 정오쯤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오면 내 주변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내가 알던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궁금했다. 컴퓨터마다 네이트온 메신저가 깔려있던 시절이었다. 네이트온에 로그인했다고 이름이 뜬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쯤 대답이 올지 멍하니 기다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들이 내 인사에 답변을 바로 하지 않은 것은 나와는 다르게 학교나 직장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신저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어딘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대답이 늦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루는 아침 운동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가 내 앞으로 지나쳐갔다. 나와는 무관하게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세상과 내 일상이 너무 대조되었다. 이제 막 기차가 떠난 플랫폼에 나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은 결코 홀가분한 것만은 아니었다.

바쁘게 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리고 어쩌다 만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게 된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겠다는 것이 내 결심에 의한 것일지라도,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게 된다. ‘혹시 내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잡생각만 늘어난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을 때, 불안감은 어딘가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하도록 등을 떠민다.

그 불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결국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자신도 이 세상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 역할을 정말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다 보니 결국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갇히게 되어 버린다. 어릴 적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경우 생존법’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중 아직도 기억나는 내용은, 목이 마르더라도 절대 바닷물로 해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혹시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갈증을 바쁜 일상이라는 바닷물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오롯이 휴식을 위해 썼던 1년은 나름 값진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남들과 같은 길을 가기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남의 인정이 아닌 오로지 나의 주관대로 인생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1년 만에 의과대학 졸업생 무리에 섞여서 내가 일하게 될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취직할 직장을 고르는 의사들의 모습은 다른 전공 졸업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 직장이 병원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신규 의사들은 수련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수련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쳐야 특정과의 전문의가 될 수 있다.

나도 어느 병원에 지원할지 결정했다. 내가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평생을 환자로 드나들었던 병원, 정문을 나서면 대학로가 있는 바로 그 병원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를 치료해 준 의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해보고 싶었다. 나의 모습을 보고 나처럼 아팠던 아이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나를 대단하다고 평가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내심 기대되었다. 이런저런 심정이 한데 섞여서 어느새 그 병원은 내가 의사가 되면 반드시 일하고 싶은, 아니 일해야 하는 병원이 되었다.

그 병원 사람들이 나의 모교에 채용 설명회를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채용 설명회 날짜에 맞추어 모교를 찾았다. 졸업 후의 모교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겨우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인데도, 다시 찾은 강의실 문의 낯선 느낌은 내가 과연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지 망설이게 했다.

잠시 주춤하다가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가 강의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몇 명이 더 들어와서 비어있는 자리를 채웠다. 잠시 후 예정된 시각이 되었다. 사회자는 간단한 병원 소개를 한 후, 고개를 돌려서 강의실을 찾은 그 병원의 교육수련부장을 단상 위로 불러 세웠다. 교육수련부장은 수련병원 내 인턴, 레지던트들의 채용과 수련에 관련된 업무를 총책임지는 자리다. 수련병원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주 중요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병원의 핵심 간부 의사가 이제 막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을 채용하겠다고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나타났다. 비유하자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의 주요 임원이 일개 대학교에서 열린 신입 직원 채용 설명회의 마이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전공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이쪽 업계에서 보통 그런 궂은일은 그 의과대학 출신의 인턴이나 레지던트 아랫년차에게 맡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그 병원은 그런 홍보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신규 의사들이 지원하려고 줄을 선 병원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육수련부장이 채용 설명회에 직접 나섰다는 것은 이들이 인재 채용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연단에 오른 그 교육수련부장의 낯이 익었다. ‘설마.’ 하며 다시 쳐다봤다. 세상에,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냥 알고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본과 3학년 때 그 병원에서 실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흉부외과 교수였다. 따로 연락할 생각조차 안 하고 채용 설명회를 찾았는데 그사이 교육수련부장이 되어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채용 설명회가 끝났고, 나는 그 교수가 앉아있는 앞자리로 내려가서 악수를 청했다. 나를 본 그 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꼭 자기네 병원에 지원하라고 했다. 이런 게 바로 운명이다 싶었다. 나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동안 환자의 처지로 드나들던 그 병원에 의사가 되어 돌아가겠다는 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막연한 꿈이 이제 현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사실 내 성적은 그 병원에 합격하기에는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결과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원서 접수가 마감된 후 경쟁률이 공개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손에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보다도 잡을 듯 말 듯한 것이 더욱 마음을 잡아당기는 법이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이전까지 무언가를 그만큼 강하게 갈구했던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마음속에서 혹시라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도, 생각이 현실이 될까 봐 애써 좋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교수가 채용 책임자로 있다는 점에도 기대를 걸었다. 비록 점수가 조금 모자란다손 치더라도 설마 나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나는 아침 9시부터 병원 홈페이지의 채용 공고 게시판을 열고 기다렸다. 아직 담당자가 컴퓨터를 켜고 있는지 합격자 명단은 올라오지 않았다. 인터넷 새로고침을 누르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러도 합격자 명단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도 합격자 발표는 실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일 테다. 그래서 몇 번 더 검토하고 있겠거니 했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제발.’을 되뇌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조회수는 그 사이에 이미 수십 명이 다녀갔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진 것일 테니. 심호흡을 하고 엑셀 파일로 만들어진 합격자 명단을 열어보았다. 응시번호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나의 앞 번호, 그리고 내 번호가 있을 자리, 하지만 나를 건너뛰고 다음 번호로 바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 내 이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착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수정된 합격자 명단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인터넷 새로고침을 몇 번이고 다시 해봤다. 하지만 그날 오후가 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나는 탈락했다.

너무 괴로웠다. 너무 괴로워서 며칠간 식사도 못 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병원은 내가 생각한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곳은 당시까지 내가 가고 싶은 단 하나의 병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상황이 꿈이기를 바랐다.

하루 이틀이 흐르고 일주일 이주일이 흘렀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심지어 인터넷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는 것이라고는 조용한 가운데 바르게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한 달쯤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조금씩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내가 그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던 것에는 사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그 병원에 들어가려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남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여길 것이라는 기대였다. 1년의 휴식을 거치는 동안 나는 남들과 다르게 인정 욕구를 내려놓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남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한편으로 나는 그 병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채용 책임자의 개인적 인연과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으로만 의사를 뽑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했다. 그 병원은 나를 함께 일할 수 있는 의사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곳을 믿고 다닐 수 있는 병원으로 인정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정 욕구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 그리고 대단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욕구를 쫓아서는 결코 남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자신의 인생만 피곤해질 뿐이다.

남들의 인정이라는 것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해서 얻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인정이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올곧게 가다 보면 저절로 따라오는 덤 같은 것이다. 그때 그 교수가 그랬듯,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원리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을 때에 결과적으로 남들의 인정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꽤 시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 교수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다.

“그때 저를 떨어뜨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신에게 의사로서 배우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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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인정받는 법”에 대한 1개의 생각

  1. 선생님 12월의 첫날 아침에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저역시 자신을 돌아보게하는 좋은 기회인것 같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내려놓는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오면 욕심이 앞서는것이 현실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그 병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채용 책임자의 개인적 인연과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으로만 의사를 뽑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했다. 그 병원은 나를 함께 일할 수 있는 의사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곳을 믿고 다닐 수 있는 병원으로 인정했다.” 이문장이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늘 읽으면서 깊은생각을 할수있도록 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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