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겨울, 서울역 광장

아버지들에게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지난날의 경험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자기 자식에게 전해주고픈 마음이다. 지금의 내가 이제껏 살아온 이야기를 딸에게 남기고 있듯, 1999년 겨울의 나의 아버지는 얼마 전 수능을 치른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반평생을 은행원으로 일하며 삶을 일구어 온 서울의 도심이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광역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광화문이었다. 내가 교보문고에 가보고 싶다고 전부터 노래를 했다. 교보문고라고 지하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서점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없는 책이 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실제로 보니 말로 듣던 것 이상이었다. 서점이라고는 문제집을 사러 동네 책방만 가보았던 나에게 교보문고는 ‘아,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외국 서적 코너가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보들보들한 종이 질의 영어 원서들이 종류별로 넘쳐났다.

교보문고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우리는 시청 근처로 장소를 옮겨 화교가 하는 중국집 하나를 찾았다. 아버지가 그 근처에서 근무하던 때 종종 가던 곳이라고 했다. 내부 곳곳을 붉은색으로 장식한 식당에 들어섰다. 아버지 말로는 전가복이라는 요리가 일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주문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재료가 있어야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날은 안타깝게도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서 전가복을 먹을 수 없었다. 대신 생소한 이름의 면 요리를 시켰다. 중국 음식이라고는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무척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어서 우리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는 건 어떨지 고민도 했지만, 기왕 여행 삼아 나온 건데 조금 춥더라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옷깃을 여미고 한참을 걸어서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옛 대우빌딩에서 길을 건너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세기말의 흥분과 바로 몇 해 전 우리나라를 휩쓴 IMF 사태의 잔상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교회에서 나온 이들은 오가는 행인들을 향해 회개해서 구원을 받으라며 확성기가 터질 정도로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정작 한쪽에서는 구원받아야 할 이들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얼마 전까지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잃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거창고 학생 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담아 먹으며 텔레비전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입에 먹을 것을 허겁지겁 밀어 넣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헌혈을 마치고 얻은 것으로 보이는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아버지도 뒷짐을 진 채 그들을 바라보며 내게 조용히 물었다.

“왜, 저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 사람들이 배고파서 헌혈한 피가 네 생명을 구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마라.”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상식을 뒤흔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노숙자는 도와줘야 할 사람이었다. 반면에, 이제 곧 의대에 진학해 언젠가 의사가 되고자 하는 나는 그들을 도와야 할 사람이었다. 병실 너머 의학 도서관을 바라보며 환자가 아닌 의사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의사가 되어 내가 배운 지식과 기술을 베푸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옆에 세워져 있는 헌혈 홍보 입간판은 아버지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수술을 마치고 정신을 차린 후 몽롱하던 때, 머리 위에 매달린 채 나를 채워주던 붉은 색 피 주머니들. 그것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살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베풀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받은 것 가운데 극히 일부나마 돌려주면 다행일 뿐이었다.

베푼다는 말은 참 아름답다. 자비롭고 따뜻하며 심지어 근사해 보인다. 하지만 베푼다는 말은 자신이 받은 것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애써 이룬 것을 가여운 너희들에게 나누어주겠노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베푼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우고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배웠다는 건 누군가가 가르쳐줬다는 것이고, 가진 것은 곧 누군가로부터 얻은 것이다. 베푸는 게 아니라 돌려주는 것이다.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도 필요하다.

그날 아버지의 한마디는 내가 선택한 의사의 길을 처음부터 다시 정의하게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는 것’이 되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주는 자가 아닌 받은 자로서, 그리고 베푸는 자가 아니라 돌려주는 자로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 자리는 곧 내가 걸어갈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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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겨울, 서울역 광장”에 대한 2개의 생각

  1. 베푸고 돌려주는 삶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가 용기내어서 실천해내야하는 그리고 실천하는 삶의 일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사람이 교육의 성찰로 실천하는 씨앗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뜨려져 이상적인사회가 될꺼라 생각해요
    인간은 누구나 사명을 자각할 기회가 오면 멋지게
    변신하는 가능성을 지녔죠

    부자간의 멋진 보물추억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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