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때문에 벌어진 일들

거창고등학교는 조그만 시골 학교다. 한 학년 학생 수가 200명이 채 못 되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타지에서 왔는데,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 방 하나에는 12명이 들어갔다. 이때는 비슷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끼리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학생들의 타지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서 학교 측이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였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용인 수지에 살았기 때문에 분당을 비롯한 경기도 출신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방은 서울에서 온 아이들이, 또 다른 방은 부산에서 온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무릎 높이의 평상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안쪽으로 개인당 하나씩 배정된 목제 사물함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그 위로 각자 쓸 이불을 개어 올렸다. 한 사람당 폭 50cm에 길이 2m 정도의 개인 공간이 주어졌다. 밤에 잘 때 서로의 이불이 조금씩 겹쳐지기도 했다. ‘군대 내무반’ 하면 떠올리게 되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덧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이었다. 고3을 앞두고 기숙사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이 하나둘 자취를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단체 생활은 여러모로 불편했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전후로 어림잡아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각자의 자취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학교 주변의 집주인들은 남는 방을 거창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빌려주며 나름 쏠쏠한 수입원으로 삼고는 했다. 하지만 대학가처럼 규모의 경제가 움직이는 수준은 아니었으므로, 학생들은 부동산을 거치는 대신 일일이 집마다 문을 두드려가며 혹시 빈방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나도 그즈음 기숙사에서 나올 준비를 시작했다. 주말 내내 근처에 집들을 샅샅이 알아보고 다닌 끝에, 학교 정문 맞은편 언덕에 있는 조그만 방을 자취방으로 정했다.

내가 거기서 살았으니 자취방이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어떤 할머니가 사는 시골집의 허름한 창고였다. 거기에 싱크대 같은 집기를 욱여넣어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곳이었다. 넓이는 한 평이 조금 넘을 정도나 될까. 이불을 펴면 남는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방구석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어서 축축한 냄새도 났다.

그 와중에 곤란했던 것은 역시 화장실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가장 안쪽 으슥한 곳에 재래식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요즘은 아무리 깡촌이라도 보기 어려운 것이다. 처음에는 이 화장실에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 구덩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악취도 악취였지만, 발이 미끄러져 여기 빠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가는 건 특히 더 엄두가 안 났는데, 말 그대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자취방에 가기 전에 반드시 학교에서 볼일은 다 보고 갔었다. 자취방에서 공부하다가도 일을 보고 싶으면 언덕을 내려와 학교로 내달렸다. 하지만 이 방식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언젠가 한밤중에 화장실이 급해진 적이 있었는데 학교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급히 기숙사로 뛰어갔지만, 거기도 역시 문이 잠겨있었다. 뭐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이 자취방 화장실로 향했다. 침침한 불빛 아래에서 일을 보고 있자니 구덩이에서 손이 올라올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귀신 입장에서는 구멍을 막고 있는 내가 더 무서울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이후 화장실 때문에 학교로 향하는 일이 더는 없었다.

화장실 옆에는 다용도실을 겸한 세면장이 있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샤워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문이 없었다. 어차피 집주인 할머니 빼고 다 남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평소에 허리 높이까지 오는 커다란 적갈색 고무 물통에 항상 물을 받아놓았는데, 샤워는 못 해도 여기 있는 물로 세수를 하고 가끔 등목도 하고는 했다. 그리고 매주 주말이 되면 친한 친구들 몇 명이 함께 가까운 대중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다.

시골의 3월은 아직 밤이 쌀쌀했다. 슬리퍼를 끌고 방 뒤쪽으로 가서 기름보일러를 틀어두어야 겨우 잠들 수 있을 정도였다. “징~”하며 기름을 태우며 떠는 보일러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나았다. 문제는 새벽 서너 시가 되면 아침잠이 없는 집주인 할머니가 기름을 아낄 생각으로 보일러를 꺼버린다는 점이다. 나는 4월이 지나기 전까지 종종 한기를 느끼며 새벽에 눈을 떠야 했다.

깊은 밤에 눈을 뜨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천장의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뭔가가 후드득 하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집주인 할머니가 기르는 강아지가 크게 “멍!”하고 짖으면 다시 그 후드득 하는 소리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렇다. 천장 어딘가에는 쥐들도 살고 있었다. 자취방에서 지내는 동안 그 쥐들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좋은 점도 있었다. 자취방이 그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마당에 나가면 저 아래로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청명한 시골 공기를 깊게 들이쉬면 기분까지 상쾌했다. 방에도 책상과 책장을 들여놓으니 조용히 공부하기에는 나름 괜찮았다. 나중에는 미니 냉장고도 들여놓아서 1년 동안 유용하게 잘 썼다.

자취방에 적응할 즈음, 무덥고 습한 8월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방학이었지만 고 3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그날도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간간이 교실 창밖을 보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급기야 교실 창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태풍 ‘올가’가 올라오고 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오후가 되어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섰다. 우산은 없었지만 다행히 비가 멎었다. 잠시나마 이불을 펴고 낮잠을 잘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가방을 들쳐 메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교문 앞 문방구를 지나서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에 다다랐다. 그곳은 시멘트를 대충 바른 경사가 있는 골목인데, 얼마나 가파른지 10m 정도 되는 거리를 두 손을 다 사용해서 거의 기다시피 해서 올라가야 한다.

후다닥 기어 올라가서 허리를 펴고 앞을 보았다. 눈앞에 뭔가 널브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길에 뭉텅뭉텅 찢어진 책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부는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처박힌 채로 젖어 있었다. 허리를 숙여 자세히 살펴보니 수능 문제집이었다. ‘누가 문제집을 이렇게 아무 데나 버린 거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가던 길을 갔다. 그런데 자취방으로 향할수록 그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자취방에 도착한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내 자취방 천장이 뜯겨 있었다. 세찬 태풍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내 자취방 천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오던 길에 본 책들은 내 책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취방 앞으로 내 수능 문제집과 정리 노트들이 정신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집주인 할머니도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멋쩍게 웃으며 난장판이 된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있었다. 나는 수능을 세 달여 앞두고 벌어진 일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때까지 풀었던 문제집과 정리했던 노트도 거의 못쓰게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순간 어떤 오기가 끓어올랐다. 뻥 뚫린 천장과 그 아래 흩어진 책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미완의 문장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추락하는 것은 바닥이 없다.’ 바닥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떨어질 수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추락해도 바닥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언제든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 그날 나를 산산조각 낼 뻔한 것은 자취방을 날려버린 태풍이 아니었다. 그 앞에 주저앉고 싶었던 나약함이었다.

내가 손 쓸 수 없는 것을 탓하는 대신,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 다음 날 바로 잃어버린 책들을 새로 사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난장판이 된 방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뻥 뚫린 천장 너머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스며든 밤공기는 한여름치고 꽤 선선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밤하늘의 별을 세면서 잠을 잔 게 언제였나.’

새로 발견한 게 있는 반면에 사라진 것도 있었다. 그날 밤 이후로 천장 위를 뛰어다니는 쥐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마 태풍에 같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요즘도 태풍철이 되면 그날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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