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완주를 통해 배운 것들

고등학생이 된 후 두 번째로 맞는 봄이었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포근해지고 있었다. 병원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오후마다 밀려오는 나른함을 이겨내며 학교생활에 힘껏 적응해나가는 중이었다.

학교에서는 매년 그즈음 봄 예술제가 열렸다. 크게 체육과 문예의 두 가지 활동으로 나뉘어 나흘 동안 진행되었다. 체육은 배구나 농구 등의 운동 경기이고, 문예는 글쓰기처럼 조용한 활동을 말한다. 누구나 한 가지 종목에는 참가해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친구들의 경기를 응원하면서 보냈다. 거창고등학교의 봄 예술제는 명실상부 학생들이 주도하는 행사로, 졸업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간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다.

봄 예술제의 마지막 날에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출발하여 거창 읍내를 가로질러 반환점까지 간 후에, 같은 길을 거슬러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식 마라톤보다는 거리가 짧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마저 반감되지는 않았다. 마라톤이 올림픽의 꽃이듯, 거창고등학교의 마라톤도 봄 예술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모든 재학생이 참가하는 게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빠질 수 있었다. 운동 경기 중 다친 학생들은 물론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얼마든지 빠질 수 있었다. 그걸 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라톤에 참가할지를 두고 혼자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당시는 심장 수술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지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마라톤을 뛰고는 싶었지만, 한편으로 그래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무리하다가 잘못되었을 때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입게 될 상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라톤을 뛸 수 있는 학생이 사정이 있어서 뛰지 않는 것’과 ‘마라톤을 뛰면 안 되기 때문에 뛰지 않는 것’은 달랐다. 전자는 선택의 문제지만, 후자는 한계의 문제다. 내가 마라톤을 뛰지 않는다면 그건 후자였다. 나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는 셈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봄 예술제 직전 병원에 다녀왔다. 담당 교수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학교에서 곧 마라톤이 열리는데, 나도 뛰어도 되겠냐고. 교수님은 짧지만 단호한 어조로 절대 하지 말라고 답했다. 긍정적인 답변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안된다는 답변을 듣고 보니 오히려 도전 욕구가 생겼다. 교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라톤을 완주한다면, 앞으로 다른 그 누가 “너는 안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말에 주눅 들지 않게 되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이다. 누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봄 예술제 마지막 날 운동장에 서 있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본관 계단에 마련된 본부석 진행자의 구령에 따라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가장 뒤쪽에 서 있었다. 혹시 누가 나를 발견하고서 뛰지 말라고 할까 싶어서였다. 사람들이 앞을 보고 있는 동안, 맨 뒤에 서서 티 나지 않게 준비운동을 따라 하며 근육을 풀었다.

잠시 후 단발의 총성이 하늘을 갈랐다. 모래시계의 좁은 목을 통과해 내려가는 모래알처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좁은 교문을 통과해서 읍내로 쏟아져 나갔다. 학교가 높은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내려가는 길이라 출발은 수월했다. 계속 달렸다. 아스팔트 길을 지나서 비포장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출발할 때 한데 뭉쳐져 있던 사람들의 무리는 어느새 맨 앞과 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행렬이 되었다.  나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할만했다. 가볍게 조깅하듯이 뛰다가 힘에 부치면 잠깐 걸어갔다. 그렇게 뜀박질과 걷기를 반복했다.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출발하고 30분쯤 지났을 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듯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종종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러다 말겠거니 했다. 하지만 점점 심해졌다. 멈추어 서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에 손을 올렸다. 땅을 내려다보고 헉헉대며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쪼그려 앉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저 멀리서 선생님 한 분이 뛰어왔다. 찬찬히 숨을 쉬라고 했다. 10분쯤 그렇게 숨을 가다듬으니 다시 또 괜찮아졌다.

손발을 털고 다시 대열로 돌아갔다. 그때부터는 무리하지 않았다. 뛰지 않는 대신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가 힘들어지면 또 천천히 걸었다. 다른 이들이 속속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내 목표는 완주였다. 그런데 그렇게 앞서가던 이들 가운데 달리기를 중단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늦게라도 반드시 완주할 것이다. 완주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저 멀리에서 선두 그룹으로 보이는 이들이 반대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이미 반환점을 돌고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반환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참을 가도 반환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나쁘진 않았다. 반환점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내가 선두 그룹과 처음 마주친 거리 만큼을 더 가서야 비로소 반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환점에 거의 도착하자, 먼저 반환점을 돈 주자들이 이제 막 반환점으로 향하는 이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쳤다. 잠시 후 나도 반환점을 돌면서 뒤따라 오고 있는 이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를 응원해줄 수 있구나. 나도 그 정도는 되는구나.’

돌아오는 길은 처음만큼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만 계속 간다면 완주는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다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기였다. 빠른 걸음조차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다시 쪼그려 앉았다. 그 근처에 있던 선생님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데려갈 차량도 한 대 도착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뛰다가 죽든지 아니면 다 뛰고 나서 제대로 살든지 하자.’ 거친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직한 생각이기도 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완주할 것인가. 결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걸어서라도 완주하자.’ 나를 에워싸고 있던 이들을 향해서 “뛰지는 못해도 걸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걷기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뛰지 않겠다는 거듭된 내 다짐을 받고 나서야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이미 인적이 뜸해진 길 위로 돌아갔다.

나의 앞뒤로 아무도 달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운영진들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갔다. 시간에 대한 감각조차 무뎌질 때쯤, 저 멀리 학교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말했듯 학교는 읍내에서도 높은 지대에 있었다. 내가 훗날 이 순간을 완주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200미터가량 되는 이 비탈길을 올라서야 했다.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서 비탈길을 올랐다. 학교 입구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나와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지쳐서 웃어줄 수조차 없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학교에 들어서니 운동장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이제 이들과 다르지 않다.’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 명백한 사실, 내가 스스로 증명한 그 사실이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박수 치는 이들을 뒤로한 채,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 가운데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더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운동장 한가운데 드러누웠다.

그날의 마라톤 완주로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이건 내 인생이라는 현실이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남과 비교할 이유가 없고 할 수도 없다. 늦다고 조바심낼 것도, 빠르다고 우쭐할 것도 아니다. 아프다고 절망할 것도, 건강하다고 자만할 것도 아니다. 세상이 의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볼 때, 끝까지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나는 끝에서 3등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내 뒤에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날의 완주는 그 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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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완주를 통해 배운 것들”에 대한 1개의 생각

  1. “뛰지는 못해도 걸을 수는 있다”
    지친 그를 다독이며 가는’ 그 곁의 또 다른 그에게
    정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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