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결정하는 것들

우리는 항상 미래를 걱정한다. 현재 처한 상황 가운데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지속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생이 별 볼 일 없을 것 같다는 불안도 밀려온다. 지금 웬만큼 누리고 있다고 해도 안심하지 못한다. 과연 이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미리부터 노심초사한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있을 때는 또 있는 대로 한순간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먼지처럼 쌓이고 쌓인다. 먼지들이 두텁게 쌓일 때쯤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라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은 다들 수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 갖추고 시작한 것 같다. 그에 반해 나만 홀로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여있는 것 같다.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한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그 시간 그 장소를 떠올리며, ‘차라리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라며 뒤늦게 아쉬워한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그러면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짙은 미련이 남는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깨닫게 된다. 사실 남들도 그 속을 알고 보면 힘들지 않은 이가 없다. 다 나름의 이유로 미래를 걱정하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라며 불평하며, 결국 과거를 후회한다. 이것은 하나의 악순환의 고리이다. 만약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또 다른 걱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 불평, 그다음은 후회…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나름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10대 후반의 한창 예민한 시기에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버텨야 했다. 또래의 무리에 섞여 있는 게 당연할 나이였지만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한순간도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후회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걱정과 후회를 잇는 연결 고리인 불평 대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운이 따랐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이 이후의 삶에서 조금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20여 년 전의 어느 늦가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나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이 잘 안 와서인지, 벌써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5층 병실에 앉아서 창밖 너머로 어둠 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로등은 켜져 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가다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 쪽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고요하다 못해 스산한 한밤중의 병원이었다.

문득 학교 생각이 났다. ‘지금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커서 과연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잡념이 머릿속을 내리누르며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기분을 더욱 가라앉게 했다.

멍하니 보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밖으로 유독 환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3층 정도의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의 창문 안쪽으로 천장에 줄지어 있는 형광등이 밝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자정을 훌쩍 지나서 새벽으로 향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저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물었다.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내 옆으로 와서는 내가 턱을 들어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눈에 힘을 주고 그 건물을 바라보고 나서, 이내 그곳이 의과대학에 딸린 도서관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의대생들이라고 하였다.

의대생.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여기서 환자가 되어 수액들을 팔에 주렁주렁 매달고 생사를 가르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시각 바로 길 건너에서는 의대생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문득 나도 그들이 있는 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모르지 않았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라는 것을. 의대에 입학한다는 건 건강한 몸을 갖고 밤을 새워서 공부해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물며 학교 수업도 듣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나에게는 가당치 않은 꿈이란 사실을. 어쩌면 길 건너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상상은 꼭 이루어 내겠다는 의지에 관한 것이었다기보다는, 힘든 상황을 잊게 해줄 진통제에 가까웠다.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도서관 안에 있는 의대생들은 각자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삶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시간마저도 부질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나의 모습이 길 건너 의대생들과 너무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반항심일 수도, 어쩌면 그 반대로 무한의 긍정일지도 모르는 강렬한 감정이 꿈틀대었다. 살아 숨 쉬는 그 무언가로 내 삶을 채우고 싶었다. 진통제로 잠재우기에는 나의 삶이 너무 소중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병실에서 의학도서관을 바라보는 삶’이 아닌 ‘의학도서관에서 병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환자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노라 굳게 결심했다. 그 잠깐 사이 차오른 눈물의 간지럼을 참지 못해 눈을 감았다. 볼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수술을 마치고 한 달여쯤 지나서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두 달 가까이 학교를 빠졌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사이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만큼은 전과 같지 않았다. 병실에서 의학도서관을 바라보던 그 날의 다짐은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결국 나를 그들이 있던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나는 의사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놓여있는 상황들, 이 가운데 1년 전에 예상했던 것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가장 큰 걱정거리가 1년 전에 짐작이나 했던 것이었나.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1년 전에도 현재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1년 후가 어떠할지 지금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현재의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지금 처한 곤란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가 그래왔듯, 미래도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사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불평으로 일관하다가 후회할 때, 걱정은 현실이 된다. 현재 놓인 상황이 곤란하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불평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과감하게 도전할 것인가.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다.

요즘도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진료를 받기 위해서 내가 수술받았던 병원을 찾는다. 그때마다 의학도서관 건너편의 내가 입원했던 건물 앞을 지나간다. 거기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입원했던 병실의 창문을 올려다본다.

그 창문 안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10대 후반의 나와 마주한다. 수십 년의 시간의 벽을 넘어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언제나처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환자들을 바라보겠다’는 그때의 다짐을 흔들림 없이 지키며 살고 있냐고.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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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결정하는 것들”에 대한 2개의 생각

  1. 고맙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건강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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