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기억들

저마다의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단지 곳곳의 익숙한 길들, 친구들과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들을 잡으러 뛰어다니던 동네 뒷산, 설날 세뱃돈으로 조립식 프라모델을 사러 달려가던 문방구.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속한 공간들이다. 특히 나처럼 어릴 때 살던 곳이 지금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곳은 꿈결 같은 기억 속의 먼발치에서나 바라볼 수 있다.

아련한 그리움은 언젠가 한 번 그곳을 다시 찾아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래서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란 대개 언제가 되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법이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예전에 살던 동네들을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다. 주말에 평소처럼 집에서 뭉개고 있을 게 아니라,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원을 해결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말 해보자는 엉뚱한 오기가 같은 게 생겼던 듯하다. 우선 가까운 동사무소에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뽑았다. 거기에는 유년 시절 기억 속의 장소들이 어른의 주소로 적혀있었다.

차를 몰고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시간의 흐름만큼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30여 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아파트 주차장은 자동차 핸들을 꺾기에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좁았고, 등에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오가던 등굣길은 정말 같은 길인가 싶을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없는 게 없던 학교 후문 문방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제 내가 살만한 물건은 없어 보였다. 해가 질 무렵, 차를 돌려서 내가 서너 살 무렵 살던 아파트 앞에 잠시 멈추었다. 부모님 집에 오래된 접착식 앨범이 하나 있는데, 거기 있던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 여기를 오르내렸을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는 수십 년 후 어른이 된 자신이 차를 몰고 다시 여기를 찾아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오랜 기억처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승건.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승’은 ‘잇는다’는 뜻으로 ‘承’이라고 쓴다. 친동생과 사촌 동생들이 함께 쓰는 돌림자다. ‘건’은 ‘굳세다’는 의미의 한자로 ‘健’이라고 쓴다. ‘건강하다’고 할 때 ‘건’이다. 뜻을 풀어보면 ‘건강함을 잇는다’가 된다. 나중에 커서 출세하지 않아도 좋고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저 건강하게 버티기만 하라는 기대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건강하기를 바라는 기대. 하지만 기대라는 감정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대는 그것이 애써 극복하고자 하는 근심의 존재를 반영한다. 기대와 근심은 물을 반쯤 채운 유리컵을 바라보는 두 개의 다른 관점이다. 한편에 근심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는 건, 또 다른 한 편에 기대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근심이 있다는 뜻이다.

기억조차 희미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혜화동에 있는 대학병원에 다녔다. 진료일이 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 큰 병원에 있는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나를 살게 해준다기에, 때가 되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사람들은 선생님이라고 하면 교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는 진료실에서 흰옷을 입고 앉아있는 선생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새끼 오리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 마주한 걸 엄마라고 믿고 따르듯, 내가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만난 선생님은 교사가 아닌 의사였다.

내가 세 살이 되든 해, 처음으로 심장 수술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대동맥이 좁아져 있어서 그걸 바로잡아주는 수술이었다고 한다. 그 수술 흉터는 지금도 왼쪽 옆구리 아래에 조그맣게 남아있다. 그때는 내가 무척 어릴 때라서 그런 상황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나이에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병원에 가면 가는가 보다 했다. 매일 저녁 어머니가 우윳빛 포장지에 담긴 가루약을 입에 털어 넣어 주면, 그 약이 뭔지는 몰라도 내가 삼켜야 하는 것이구나 했다. 기억하기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약이 별로 쓰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날마다 먹어야 할 약이 쓰기까지 했다면 참 쉽지 않았겠다 싶다.

초등학교, 아니다. 내가 졸업한 후에 초등학교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으니 국민학교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한 건 국민학교 4학년 봄이었다. 열 번째 생일 무렵 두 번째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가슴을 여는 수술을 받았다. 사실 가슴을 연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서정적이다. 실상은 흉골을 톱으로 썬 다음 갈비뼈를 좌우로 젖혀서 심장을 들여다보며 잘못된 곳을 바로잡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약 7시간 가까이 걸린 긴 수술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살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내가 받은 수술이 좁아져 있는 심장 판막을 넓히는 수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 후,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 한 번 더 가슴을 열었다. 그때는 판막을 아예 인공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이날 이때까지 그럭저럭 한 사람 몫을 하면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어려서 큰 수술을 받느라고 참 힘들었겠다고.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라니 보통 일이 아니었겠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실 그런 게 아니었다. 수술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잠깐 겪고 나면 될 일이었다. 그보다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그때까지 학교는 절대 빠지면 안 되는 곳인 줄 알았다. 공부 욕심은 없었지만, 개근상 욕심은 있었다. 하지만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한 달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 같은 반의 50여 명 가운데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를 빠지는 아이는 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뭔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가슴에 새겨진 흉터도 큰 변화였다.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슴 중앙에 세로로 긴 뭉치의 거즈가 고정되어 있었다. 소독할 때 내려다보니, 까만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한 뼘 길이의 기다란 상처가 드러났다. 시간이 흘러서 실밥을 뽑고 어느 정도 아물자 그 모습은 흡사 부드러운 지렁이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 같았다. 목 아래의 움푹 들어간 곳부터 명치까지 자리 잡은 이 연분홍색 지렁이는 그날 이후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가장 큰 비밀이 되었다.

심지어 세 번째 수술 후에 이 지렁이는 조금 더 살이 올랐다. 같은 부분을 다시 열었기 때문이다. 처음 지렁이를 만났던 때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헐렁한 티셔츠를 입지 않았고, 와이셔츠를 입을 때 안에는 반드시 하얀 라운드 티를 받쳐입었다. 수영장은 당연히 기피 장소 일 순위였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부디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건 동정심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배려나 그 비슷한 것을 얻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이미 얻을 것보다 나눌 것이 많은 사람이다. 이 사회에서 배려를 받기보다 배려를 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 내가 힘들었던 과거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다. 나에게는 지나간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일이다. 바로 그들의 진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당부하고 싶다.

아픈 이들이 느끼는 것과 옆에서 짐작하는 것 사이에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아픈 이가 겪어야 할 질병의 고통과 그 치료의 고단함을 생각하며 위로한다. 분명 고맙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한발 더 나아가서, 아픈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픈 이들은 질병 그 자체 못지않게, 심지어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서도, 자신이 여타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환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결국은 사회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똑같은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랬다.


이 글은 집필 중인 자전적 에세이 초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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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기억들”에 대한 2개의 생각

  1. 휴전선 철조망 넘어
    총알이 뚫고 간
    녹슨 철모 위에 나비 한 마리 앉은
    평화의 과거…
    늘 편안한 글 주시기에 그런 아픔 없으시줄
    알았습니다
    그런 아픔 안고 이겨오신 승건 선생님,
    오늘은 더 멋져 보이십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 저도 작년 11월 말경에 일을 끝내고 철재 문을 닫다가
    문이 이탈 되면서 오른쪽 발목에 떨어져 세군데가 골절
    되는 사고로 약 5개월 정도를 기브스를 하고 행동의
    부자유함을 절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자존감 마저
    약해졌습니다.
    골절로 한시적으로 불편했을뿐인데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느끼며,남과 다르다는 차별을
    극복하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를 돕고 의지
    하며 살아가야 함이 순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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