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이따금 죽음 그 너머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그때,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어딘가에 남아 있기는 할까. 바빴던 하루를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면, 어느새 답도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세상을 떠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그 사람들을 알던 사람들마저 떠나갈 것이다. 그럼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이미 예정된 미래라는 건 틀림없다. 흔한 말로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 다섯 살짜리 딸아이가 레고 블록을 쌓으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아니 해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곧 마흔이다. 운 좋게 건강을 잃지 않고 평균수명만큼이라도 살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이 딱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일 것이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내다보며,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있을까. 다행히도 나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대단치는 않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했다. 따뜻해야 할 때와 차가워야 할 때를 분별하려고 했다.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너그럽고 싶었고, 강한 이가 부당하게 나오면 단호하게 맞서려고 했다. 환자와 의사, 아들과 아빠 그리고 직원과 사장이라는 서로 다른 처지와 역할 속에서, 누구에게도 잔인하지 않으려고 했고 동시에 비굴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글을 남길 뿐이다.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아쉬웠던 경험은 아쉬웠던 경험대로, 그 기록들이 어떤 식으로든 딸의 삶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런 진심을 담아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로 옮기려고 한다. 그렇게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몇 사건들을 글로 옮기려고 보니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담게 되었다.

첫째, 배우는 삶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한다. 그것은 진로 문제일 때도 있고, 돈 문제가 되기도 하며, 인간관계의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풀리지 않는 고민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제각각 달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다. 바로 당면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모르는 것을 알게 만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배움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심지어 지금 그럭저럭 잘하고 있더라도, 배움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든지 있다. 단지 그걸 모르고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안주할 뿐이다.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 최선이 아닐 때가 많다.

누구든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우는 삶에 있어 중요하다. 또래의 친구는 물론이고, 학교의 선생님도 틀릴 수 있다. 성직자라 불리는 이들도 틀릴 수 있고 진료실의 의사들도 틀릴 수 있다. 물론 부모도 틀릴 수 있다.

하지만 남이 틀렸다는 확신이 든다고 하여 항상 충돌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 두 번째로, 틀리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비판적인 견해의 결과가 반드시 충돌일 필요는 없다. 감정과 대응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배우는 삶이란 소유보다는 경험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삶이기도 하다. 돈과 시간을 소유보다 경험을 늘리는 데 쓰는 삶이다. 생각해보자. 물건을 사는 즐거움보다 경험을 통한 배움이 더 오래 그리고 깊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유에는 배움이 없지만, 경험에는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일어서는 삶이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내가 아픈 채로 태어난 것도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평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었다. 기왕 한 번 사는 거라면 정말 후회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기회의 문들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반면에, 포기야말로 용기 있는 선택일 때가 있다. 포기를 통해 얻은 여유는 더 큰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그런 포기에는 상당한 결단력과 현실 인식 능력이 필요하다. 흔히 생각하듯 포기는 무조건 나약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진정 나약한 것은 미련이 남아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다.

포기조차 답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순간도 있다. 그럴 때는 미래를 내다보지 말고 차라리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딱 1년 전으로 돌아가 보라. 그때 지금 일을 예상했었나.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삶을 내려놓고 모든 가능성을 끝내버리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셋째, 감사하는 삶이다.

오늘 하루 나는 남들 덕분에 많은 것을 누렸다. 누군가 집을 지어 놓았기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고, 누군가 열심히 농사를 지은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집을 짓고 농사를 지은 사람들도 각자 자기들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남들이 해결해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가 하면,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서는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한때 의사가 환자를 돕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자가 없다면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의사를 돕는 게 환자라고 할 수도 있다. 얼핏 보아 남에게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도움을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감사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감사하는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이 가장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남이 나에게 감사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남에게 감사하면서 사는 게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전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후자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이 결정하는 것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 그 인생이 훨씬 즐겁지 않을까. 삶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다.

기쁨,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까지. 삶의 모든 기복과 혼돈스러운 감정들은 결국 여기에서 다시 모인다. 배우려고 했고, 넘어졌을 때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니 그저 감사해야 할 기억들만 남았다.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일어설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를 세차게 흔들었던 칼바람의 기억조차, 훗날 돌아보니 나를 한 단계 자라게 한 성장통이었다. 그래서 그 또한 감사하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것들이 감사할 일들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난날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배우는 삶, 일어서는 삶 그리고 감사하는 삶이라는 세 가지 삶에 관한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앞으로 대략 반년 정도에 걸친 여정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내년 봄 즈음 이 이야기는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때가 되면 여기 올린 글들은 더 이상 인터넷 속 화소의 배열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때 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을 찾을 생각이다. 일단은 평소와 다름없이 어린이 서적 코너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내가 쓴 책이 꽂혀있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반듯하게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가장 위에 놓인 걸 하나 집어 들고 내가 쓴 책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날 고른 다른 책들과 함께 계산을 마치고 종이백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서, 거실 책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둘 것이다.

훗날 딸아이가 토라져서 나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때, 그럼에도 나에게 조언은 구하고 싶을 때. 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서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미 내가 세상에 없을 때. 그럴 때 언제든 책장에서 꺼내서 펴볼 수 있도록. 배움과 일어섬, 그리고 감사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나는 지금부터 그런 책을 쓰려고 한다.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한 4개의 생각

  1. 주신 글 대하며
    뒤엉켜 울고 웃었던 아련한 날들 되살아 났습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함으로 남는~~
    감사합니다.

  2. 고맙습니다 고마움 느끼기는 빠지지 않네요 예전에 보내준 행운의 세가지 요소가 생각이 나네요
    1,위험감수 2,아이디어 3,감사하기

    글 고맙습니다, 건강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하루되세요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