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삶을 권하다

작은 삶을 권하다이제 결혼한 부부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아내와 나도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로 구성된,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허름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날씨가 화창한 날 밖에 나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복도에 이불을 널어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전세로 산다는 건 어떤 면에서 유목민의 삶과 닮았다. 그 무대가 사막이냐 아파트 숲이냐 정도의 차이일 뿐,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다를 게 별로 없다. 통상 2년의 전세 계약 기간이 지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지 정해야 한다.

전셋집에 살면 가구나 백색가전을 살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사할 때 결국 다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삿짐에 섞여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물건 곳곳에 생채기가 나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머잖아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을 되새기다 보면, 좋은 가구와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도 자연스레 수그러들게 된다. 언젠가 내 집을 사서 들어갈 날을 기약하며.

그런 이유로, 우리 집에는 요즘 그 흔하다는 김치냉장고도 없었다. 온도에 민감한 먹을거리를 따로 저장할 곳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전세살이에 짐만 느는 것 같아서 그냥저냥 냉장고 하나로 버티며 살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가 스스로 냉장고 문을 여닫을 수 있을 나이가 되니,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왜 사람들이 냉장고를 놔두고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들여놓는지, 그제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김치 냉장고를 하나 주문했다.

김치냉장고 결제를 마치고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전보다 집이 넓어지고 방 개수도 늘어났지만, 새로 산 김치냉장고가 들어갈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줄자를 집어 들고 집구석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폭 1미터짜리 김치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이 좀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주방과 연결된 방 한구석에 코끼리 무덤처럼 쌓여있는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젖먹이 때 쓰던 딸랑이부터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받아온 교구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을 다한 장난감들의 잔해가 하나 가득 쌓여있었다. 그걸 본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저거 다 갖다 버리자.”

하지만 실제로 장난감들을 정리하면서 멈칫하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다 망가진 것을 버릴 때도 적잖은 망설임이 느껴졌다. 앞으로 쓸 일이 없을 게 분명한데도, 혹시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아이와 함께했던 물건을 버리면 그것에 담긴 추억도 함께 사라질 것 같은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쌓아두고 쓰지 않았는데 앞으로 그 상황이 달라질 리 만무했다. 아이는 앞으로 점점 커간다는 점을 생각해도 이 장난감이 어느 날 갑자기 필요해질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장난감들을 좀 더 과감하게 버리는 쪽으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 더는 쓰지 않을 게 분명한 장난감들을 한군데에 모으자 몇 박스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그리고 그만큼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김치냉장고가 들어갈 곳이 가까스로 마련되었다.

<작은 삶을 권하다 원제 : The More of Less | 조슈아 베커 지음 | 이은선 옮김 | 와이즈맵 | 2018년 09월 10일 출간>에서 저자 조슈아 베커Joshua Becker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한다. 어느 날 그는 큰마음을 먹고 집에 딸린 차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조슈아 베커에게 있어 차고 정리는 언젠가는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어왔던 숙제였다. 하지만 그는 정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무척 난감한 상황을 마주했다. 차고 안을 가득 채운 온갖 잡동사니 때문에 더 이상 물건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사촌이 말했다. “이 많은 걸 다 이고지고 살 필요가 있나.” 그는 사촌의 말에 크게 공감하여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과감하게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제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작은 삶을 권하다>는 저자가 당시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작은 삶’이란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작은 삶’이 단지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작은 삶’은 비우는 행위 그 자체보다도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사들이는 데 쓰는 관심과 시간을 줄이면,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쌓여있는 것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데 힘쓰면, 각자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쓸 수 있다는 조언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작은_삶을_권하다

말하자면 ‘작은 삶’이란 ‘소비와 소유의 절제’를 통해 ‘선택과 집중’에 이르는 생활 방식을 말한다. 그런 삶을 통해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더욱더 뜻깊고 가치 있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행복한 삶의 토대가 된다는 게 이 책의 요점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은 삶’을 실천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저자는 <작은 삶을 권하다>에서 ‘작은 삶’의 실천 방안들을 제안하고 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는데, 다음 세 가지 정도로 그 요점을 추릴 수 있다.

첫째,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남들의 평가가 기준이 된 소비는 후회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남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내 귀한 시간과 돈을 쓰는 게 과연 현명한 행동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둘째,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줄인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것만 선택의 전부가 아니다. 어떤 일에 시간을 쓸 것인지 결정하는 그 자체가 바로 선택이다. 유튜브 추천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나들이 가는데 그 시간을 쓸 것인가, 과연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한 번 산 물건은 오래 사용한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건을 구입하고 소유하는 걸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선택의 과정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여 가급적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오래 쓴다면, 잡다한 물건을 쌓아두는 결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불필요한 소비와 낭비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게 인생의 행복과 관련이 있는 걸까. 거기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은 이렇다. 흔히들 말하듯,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한 번 흘러가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Ήράκλειτος가 말했듯,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또한,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평균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100세 넘게 사는 게 여전히 흔한 일은 아니다. 일회성과 유한성,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절대불변의 특성이다.

단 한 번만 주어진 유한한 삶을 앞에 두고서 우리는 고민한다.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써야 할까.’ 이것은 어떻게 해야 ‘후회가 없도록’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삶을 ‘후회가 없도록’ 살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마도 삶의 끝자락에서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돌아볼 때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고 말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는 삶의 여정 중간중간마다 ‘후회가 없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매 순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후회가 없다는 건 어떤 것일까. 시간이 흐른 후에 지금의 선택을 돌아봐도, 여전히 올바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후회 없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모든 선택들, 매 순간 내린 선택들이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았을 때도 여전히 옳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흐른 후 후회로 남는다.

미래의 후회를 피하기 위해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달리 말하면 삶의 순간순간마다 기왕이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덜 중요한 사안에 대한 관심은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 그 답은 아닐까. 집안 곳곳의 잡동사니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것들이 차지하는 건 그저 공간만이 아니다. 그것들이 잠식하는 우리의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시간이 소모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잡동사니를 방치하는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고 답습하면서 정작 가치 있는 경험에 쓸 시간들이 사라진다는 걸 안타까워해야 한다.

요컨대, 더 중요한 것에 전념하기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 바로 ‘작은 삶’의 요점이다. ‘작은 삶’에서는 ‘작다’는 말 때문에 줄이는 행위가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일종의 준비 과정일 뿐이다. 우리 삶에서 더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올바른 선택을 이어가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작은 삶’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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