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관하여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누구나 갑질이 나쁘다고 말한다. 왜 나쁜가 물어보면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갑질에 대한 그런 접근 방식이야말로 이제껏 갑질이 근절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먼저, 사람들이 왜 갑질을 하는지 생각해보자. 흔히들 말하기로, 갑질이 ‘갑’의 우월적 지위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다. 갑질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나 선택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갑질의 배경일 뿐이다. 지위와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누구도 이걸 두고 갑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갑질은 자기 권한을 빌미로 그 밖의 것을 공짜로 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몸이 편하고 싶어서, 돈을 좀 아끼고 싶어서, 부족한 자존감을 보상받고 싶어서… 하나같이 무언가 공짜로 얻고 싶은 욕구가 갑질의 원인이다. ‘갑’은 갑질이 자신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고 행동에 나선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갑질이 ‘갑’ 본인에게 유리한 행동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그렇지 않다. 갑질은 ‘을’ 못지않게 ‘갑’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위다. 사실 갑질은 ‘갑’ 입장에서 일시적인 이익에 비해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행위이다.

갑질로 잃어버린 3천만 원

만약 당신이 작은 회사의 회계 담당자라고 생각해보자. 당신 회사의 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기로 악명이 높다. 물론 당신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당신이 거래처에 대금을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그걸 또 물어보냐고 속사포 같은 폭언이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 휴대폰에 알람이 울린다. 카톡이 왔다. 대화 목록을 보니 사장이 보낸 메시지가 하나 있다. 긴급하게 결제해야 할 건이 있어 지금 알려주는 계좌번호로 3천만 원을 쏘라는 내용이다. 곧이어 계좌번호가 하나 올라온다.

‘OO 은행 123-456-7890 예금주 김**’

당신은 잠시 망설인다. 지금까지 사장이 카톡으로 돈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게 요즘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카톡 피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긴급한 결제’ 운운하는 메시지 바로 위에는, 바로 어제저녁에 사장이 남긴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 못 하냐.”라는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그걸로 봐서는 맞은 편에서 카톡을 보낸 게 진짜 사장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당신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카톡 메시지만 보고 큰돈을 보내기가 망설여진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어젯밤 남겨진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 못 하냐.”라는 메시지가 자꾸 눈에 밟힌다. 사장이 보낸 카톡이 맞는다면 그 이후에 이어질 폭언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결국 당신은 “알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사장이 카톡으로 알려준 계좌에 3천만 원을 송금한다.

잠시 후, 출장을 나갔던 사장이 문을 열고 돌아온다. 오늘 어디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거 같은데, 자기 휴대폰으로 전화 좀 걸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올해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계에는 3천만 원의 피해액이 추가된다.

갑질하면 손해 본다는 믿음

가상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을 상황이다. 요점은 갑질이 ‘갑’ 자신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고로부터 차단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갑’은 무방비 상태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

사람은 남을 위해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는 따져보고 움직인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올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재빨리 움직인다. ‘갑’ 스스로 갑질 때문에 눈이 멀고 귀가 먹으며 손발도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갑질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이유다.

갑질은 사회악이라느니, 갑질의 피해자는 평생 상처를 앉고 살아야 한다느니 하는 뻔한 설득은 이제 그만두자. 대신, 갑질하면 손해 보게 된다는 믿음을 심어주자. 나는 그것만이 우리 사회에서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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