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인 더 게임

스킨 인 더 게임공개적으로 글을 써온 이후로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이메일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중에는 글이 도움이 되어 고맙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 위한 내용이다. 앞으로도 도저히 나아질 길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힘든 사람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내가 뭐라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이메일을 보낸다. 그럴 때는 나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딱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 1년 전에 오늘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1년 전에는 지금처럼 상황이 나빠질지 몰랐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1년 후에 또 어떤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질 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자살처럼 가능성 자체를 모두 사라지게 하는 일이 지금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최악이라는 사실이다.

절망해서도 안 되지만 자만해서도 안 된다. 이유는 같다.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지 않듯이 성공도 지속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생이 잘 풀렸더라도 앞으로 계속 잘 풀릴 거라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시절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이들은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실력으로 얻어낸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틀린 생각이다. 성공은 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운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에 심취한 이들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늘 같은 방식을 답습하다가 결국에는 기존에 이루어 놓은 것도 모두 잃는다.

불확실한 상황에 과도한 믿음과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파국을 맞는 상황이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개인이 모여있는 사회나 국가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는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설명을 하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핵심만 집고 넘어가자.

서브 프라임 모기지란 채무를 값을 능력이 작은 이들, 즉 비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 담보 대출을 가리킨다. 왜 이런 대출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기존에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은 이미 대출을 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은행들은 다른 고객이 필요했다. 이때 은행은 기존의 우량 고객보다는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떨어지는 비우량 고객들 즉 서브 프라임 고객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대출을 갚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는 집을 사두면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에 돈이 부족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

은행들은 그 대출을 갚으라고 할 권리인 채권을 모아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 파생상품의 뿌리에는 집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에 안전성도 확보된다고 여겨졌다. 이후에는 파생상품으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익성은 늘어났고, 위험성은 줄어들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은행의 비우량 고객들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집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당시 집값 상승의 원동력 중 상당한 부분이 비우량 고객들의 대출로 이루어진 거품이었다는 말이다. 2006년 무렵 사람들은 조금씩 집값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결국, 집을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자 순식간에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그 집들을 담보로 잡고 있던 파생상품의 가치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파생상품들을 자산으로 갖고 있던 은행들은 엄청난 손실에 직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대형 은행들은 파산에 이르렀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 위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레바논계 미국인 경제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검은 백조Black swan‘ 이론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백조의 색깔이 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검은 백조’는 원래 ‘상식에 반하는 불가능한 상황’의 비유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1790년 영국의 박물학자 존 레이섬이 호주에서 검은색 백조를 실제로 발견했다. 이후 ‘검은 백조’는 ‘상식에 반하는 불가능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탈레브는 ‘사회 시스템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상황’을 ‘검은 백조’에 비유했다.

탈레브는 불확실한 요소로 가득한 현실에서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와 그 해결에 대한 고민을 장장 25년에 걸쳐 다섯 권의 <인세르토 Incerto> 시리즈에 담아냈다. ‘인세르토’는 라틴어로 확실하다는 의미의 ‘certo’ 앞에 부정을 의미하는 ‘in-‘을 붙인 단어로 ‘불확실함’을 뜻한다.

탈레브는 그 첫 번째 책인 <행운에 속지 마라 원제 : Fooled by Randomness>에서 ‘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한다. 성공에는 노력이나 실력 외에 운도 크게 작용하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했을 때 ‘운’이 아닌 ‘실력’ 덕분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결국 ‘운’에 대한 무시와 ‘실력’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잘못된 판단을 거듭한다. 그 결과 전혀 예상치 못한,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즉, ‘검은 백조’를 만나고 만다.

두 번째 책 <블랙 스완 원제 : The Black Swan>에서는 불확실한 요소를 무시하다가 처하게 되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검은 백조’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성공의 경험에 과도하게 의지한 채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에 눈을 감지 말라고 경고하며, ‘검은 백조’에 앞서 나타나는 사소한 징조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탈레브는 2008년 초에 <블랙 스완>을 세상에 내놓으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이 앞으로 월스트리트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우리는 이제 그가 경고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어지는 책 <블랙 스완과 함께 가라 원제 : The Bed of Procrustes>와 <안티프래질 원제 : Antifragile>에서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예상치 못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조언한다. 특히 <안티프래질>에서는 불확실성이 야기한 충격을 버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

<인세르토>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자 완결편인 <스킨 인 더 게임 원제 : Skin in the Game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 김원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04월 29일 출간>에서는 <안티프래질>에서 고민했던 ‘검은 백조’에 대한 대비책이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 대비책이란 바로 ‘책임과 행동의 균형’이다. ‘책임과 행동의 균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요한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이들이 그 결과에서 비롯될 수 있는 위험도 함께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책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스킨 인 더 게임’은 ‘도박에 건 살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저당으로 건 살점 1파운드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의 살점을 내거는 신중한 자세로 ‘책임과 행동의 균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제목이다.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일은 이제 근절되어야만 한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문장도 ‘책임과 행동의 균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타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다면 탈레브가 말하는 ‘행동과 책임의 균형’에 대해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스킨_인_더_게임저자가 25년에 걸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완성한 <인세르토> 시리즈의 완결판, <스킨 인 더 게임>은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실제로 처해있는 현실을 돌아보면, 책이 경고하는 바와 현실 가운데 어느 게 더 심각한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소위 ‘높으신 분들’이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위험과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컨대 몇몇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특목고와 해외 명문대로 보내놓고 사람들에게는 교육 정책에 관해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설사 교육 정책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도, 그들의 자녀는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자녀들은 해외에 거주하면서, 입으로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들도 그렇다. 정말로 전쟁의 위험 없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왜 그들의 자녀들은 해외에 있는가. 그들의 정치적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정작 그들의 자녀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이 한 일의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내 가족은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정치인들의 백 마디 말보다,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녀가 어디 있는지가 그들의 진실성을 파악하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된다.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간다. 행동과 책임은 함께 간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만약 권리와 행동만 취하고 의무와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로부터 엄중한 저항을 맞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 걸맞은 위험과 책임을 감당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이제까지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풀어질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신뢰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모인다. 말과 실제가 다르면 신뢰가 깨질 것이고,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면 신뢰도 두터워질 것이다.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예기치 못한 위기는 신뢰만이 해결할 수 있다. 어쩌면 ‘검은 백조’는 금융 위기 같은 사회 현상이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 호수에 살고 있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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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인 더 게임”에 대한 1개의 생각

  1. 참좋은 글입니다. 진정 자신의 판단으로 어떤 결정을 내린사람들에게 그런 결정으로 역효과가 났을 경우 결정자 자신에게도 그 역효과의 파장이 미치는지—- 그러므로 좀더 신중하고 세심한 판단기준을 갖고 심사숙고하는 결정권자기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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