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피트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거리, 5 피트

따스한 봄기운이 만연한 계절이다. 이맘때 극장가에서는 다양한 로맨스 영화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손짓한다. 영화 <파이브 피트 Five Feet Apart | 2019>도 올해 개봉한 여러 로맨스 영화 중에 하나다. 서로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연인 ‘윌Will Newman’과 ‘스텔라Stella Grant’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파이브 피트>에서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여느 연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단 한 번의 포옹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지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가 아니다. 서로 바라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서 있지만 그 이상은 다가갈 수 없다. 이들은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특별한 규칙이 있다. 서로가 6피트, 약 1.8미터의 안전거리를 두고 지내야 한다. 이 규칙을 어기면 서로에게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켜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은 때로 무모해지는 법이다. 이 둘은 용기를 내서 딱 1피트만 더 서로에게 다가서기로 한다. 그렇게 5피트의 거리, 삶을 이어가기에는 아찔하지만 사랑을 이어가기에는 아쉽기만 한 거리, 차마 넘고 싶어도 넘을 수 없는 그 거리를 유지하며 두 연인은 특별한 사랑을 이어간다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란?

낭포성 섬유증은 주로 백인들에서 나타나는 선천성 유전병이다. 백인들에게는 3,000명 가운데 한 명이 걸릴 정도로 드물지 않은 질병이며 백인 소아에게 호흡부전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기도 하다. 백인이 아닌 경우에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데 동양인의 경우 90,000명 가운데 한 명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사례만 보고된 적이 있을 정도로 매우 드문 질환이다.

낭포성 섬유증은 체내에서 두껍고 끈적한 점액이 생성되는 것이 중요한 특징으로, 췌장, 위장관, 기관지, 폐 등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열 명중 한 명은 태어날 때 태변성 장폐색증을 경험하는데, 태변의 점도가 과도하게 높아서 말 그대로 장이 막혀버리는 걸 말한다. 이는 낭포성 섬유증을 갖고 태어난 환자가 일생 중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증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췌장에서는 소화에 필수적인 췌장액이 과도한 점성 때문에 잘 배출되지 않는다. 췌장액은 지방 흡수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췌장액이 적절히 분비되지 못하면 흡수되지 못한 지방이 지방변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지방과 함께 흡수되는 지용성 비타민의 체내 결핍으로 이어지는데 그 결과 낭포성 섬유증 환자에게서 성장지연이 빈번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췌장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당뇨병 및 췌장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호흡기 증상은 낭포성 섬유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관지 내에서 비정상적으로 끈적거리는 점액이 생성되면 호흡 곤란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끈적한 점액에는 세균이 번식하기 쉽기 때문에 심각한 감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세균을 옮길 수 있다. 영화 <파이브 피트>에서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이 서로 6피트라는 안전거리를 지켜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낭포성 섬유증을 앓는 환자들은 폐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복잡한 치료 관리를 이어가야 하며, 심각한 경우에는 폐 이식 수술까지 고려해야 한다. 영화 <파이브 피트>에서도 여주인공 스텔라가 폐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당연하다’라는 말의 의미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당연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포옹과 입맞춤은 우리들에게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고픈 소원일지 모른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제껏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면면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결국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알고 보면 당연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의 비결이 아닐까.

이 글은 (사)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건강소식> 2019년 6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건강소식>은 월 32,000부가 발행되는 매체로 (사)한국건강관리협회 유관기관 및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기관, 전국 병원과 보건소, 협회 검진기관 고객들에게 배포되는 건강 관련 소식지입니다.
필자에게 기고 의뢰를 원하시는 매체의 관계자는 여기에서 문의해 주세요.


이 글은 시청록입니다.
시청록에서는 혼자만 보기 아까운 영상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려면 아래 무료 이메일 구독을 신청하십시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