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내가 일하는 곳의 바로 옆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초등학교가 있다. 출근 때마다 등교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마주친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이 아이들 중 한 명의 엄마일 법한 사람이 조끼를 입은 채로 깃발을 들어 신호가 바뀔 때까지 아이들이 건너지 못하게 막는다. 곧 신호가 바뀌고 깃발을 앞으로 뻗으면 이 아이들은 무리 지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흘렀다. 매일 아침 등교와 함께 어김없이 시작하는 50분짜리 수업이 나는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고 있는 틈을 타서 벽시계를 흘끗 올려다보지만, 시계 분침은 몰래 쉬고 있다가 들킨 것 마냥 그제야 한 칸씩 나아간다. 쉬는 시간 10분 전부터는 시계 분침이 내 눈치를 보는 것도 귀찮은 듯 더욱 느려진다. 그렇게 오전에 네 시간, 또 오후에 몇 시간을 지나서야 길고 지루한 하루가 끝난다. 그땐 그랬다. 시간도 어지간히 참 안 갔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자 상황이 급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롤러코스터 탑승 직후 꼭대기에 올라갈 때처럼 느리게 진행되었다면, 2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바로 그 롤러코스터가 아래로 내리꽂는 것처럼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기 시작한다. 잠깐 넋 놓고 있다 보면 한 달, 두 달, 일 년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오늘도 그랬다. 얼마 전까지 실수로 2018이라고 쓰고 8자 아래쪽 동그라미를 뭉개서 9자를 만들고는 했는데, 무심코 달력을 보니 벌써 2019년이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실감하며 깜짝깜짝 놀란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왜 그럴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똑같은 1년이라도 10대 때 느끼는 1년과 20대 때 느끼는 1년, 그리고 30대 때 느끼는 1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닌가 보다. 이미 세상에는 이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와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어릴 때와 나이가 들었을 때 새로운 경험의 빈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새로움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매 순간이 기억에 깊이 새겨지는 반면, 어른들은 대체로 이미 경험했던 일들을 다시 겪게 되는 경우가 많아 새로 기억에 추가될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할 내용이 많다면 같은 시간도 더욱 길게 느껴진다는 게 이 가설의 요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만족스럽지 않다. 일례로, 어른이 되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이때도 인생의 다른 어떤 시기 못지않게 새로운 경험이 밀도 있게 쌓여간다. 하지만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사회 초년생으로 보내는 시간은 무척 빠르게 느껴진다. 어림잡아 비교하면 20대 후반의 신입사원 시절 1년은 학창 시절 1개월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간다. 왜 그런 것일까. 새로운 경험의 빈도가 시간의 체감 속도를 결정하는 전부는 아닌 걸까. 어쩌면 성인이 되었을 때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휴식’의 여부이다. 어린 시절에는 쉴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반면에 성인이 되어갈수록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쉴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삶에 가속도가 붙는 더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스쳐 지나가듯 산다는 뜻이다. 인생을 하나의 여행에 비유했을 때, 정신없이 반복되는 삶을 산다는 건 길가의 풀 한 포기 만져보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갈길을 재촉하는 것과 같다.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여정을 마치는 셈이다.

문제는 휴식 없이 정신없이 살다 보면 과연 지금 사는 게 올바른 길인 지조차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바쁜 일상에서도 반드시 휴식을 가져야 하는 건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지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옳은 방향으로 천천히 가는 게 틀린 방향으로 빨리 가는 것보다 낫다. 결국 ‘속도’와 ‘방향’의 문제이다. 만약 ‘방향’이 잘못된다면 빠른 ‘속도’는 점점 더 나쁜 미래를 재촉할 뿐이다.

일하지_않는_시간의_힘.jpg정리하면,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유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지금 당장은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가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지 돌아볼 수가 없다. 길게 보아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데, 이 방향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준의 휴식이 꼭 필요하다.

우리 삶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자연스레 그다음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다시 휴식을 되찾고 삶의 방향을 가다듬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 원제 : An Oasis in Time | 마릴린 폴 지음 |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사 | 2019년 01월 15일 출간>에서는 그 해법으로 ‘안식일’을 제안한다. 흔히 유대인들의 전통으로 알려져 있는 안식일은,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만들고 7일째 되는 날 휴식을 취했다는 믿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오늘날에도 정통파 유대인들은 매주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고, 이 날은 어떠한 생산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 모든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원리원칙대로 지키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책의 저자인 마릴린 폴Marilyn Paul이 그랬다.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현대 사회를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쉼 없이 일에 몰두하다가 탈진에 이른 경험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큰 병을 얻어 죽음을 마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 결국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절감한다.

이때 저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보아온 안식일 전통에 눈을 뜬다. 그리고 휴식이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저자는 안식일 전통을 일상생활에 하나둘씩 적용해 나가고, 결국 잃었던 건강도 되찾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유대인의 안식일 전통을 현대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여기에 ‘오아시스 시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오아시스 시간’을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정리한 결과물이 바로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다.

여기에서 그 방법들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들만 세 가지로 추려볼까 한다.

첫째, ‘오아시스 시간’의 시작과 끝을 정한다. 이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겠다는 명확한 약속을 한다는 뜻이다. 약속은 남들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시작을 정해야 바쁜 일상 속에서도 ‘오아시스 시간’을 감행할 수 있다. 한편, 그 끝을 정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다른 바쁜 일상에 활력소를 부여하는 ‘오아시스 시간’ 본래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만약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지 않고 어영부영 휴식을 갖게 된다면, 쉬긴 쉬었는 데 쉰 것 같지도 않아서 여전히 찝집한 상태만 이어질 것이다.

둘째, ‘오아시스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요즘엔 많은 이들이 여가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기사도 찾아보고 유튜브에서 관심 가는 동영상도 찾아본다. 흔히 이런 일들을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휴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심해지면 오히려 휴식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 딴에는 쉬기 위해서 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더욱 큰 피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오아시스 시간’ 동안에는 아예 스마트폰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셋째, ‘오아시스 시간’에는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에서 당신은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오아시스 시간’에는 그런 역할에서 좀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저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 찾기’를 그 방법으로 제시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간이 흐르고 뒤돌아보면 굳이 그렇게 집착했어야 했었나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일들이 있다. ‘오아시스 시간’만큼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지금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만 생각해 보자.

앞서 오늘 글을 시작하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이 빨라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건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볼 만한 할 주제다. 시간이 빨라진다는 건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방향’을 바꾸기는커녕 바쁜 일상에 갇힌 채로 그 ‘방향’이 옳은지조차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보다 중요하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빠른 ‘속도’는 오히려 우리 삶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며칠 전 5월 2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직장 스트레스 증후군인 번아웃Burnout을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번아웃’이 직업과 관련한 맥락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휴식 없는 바쁜 일상의 결과가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전같이 않게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지는가. 그건 지금 당신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삶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적어도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일상 속에서 휴식을 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일부러 만들어 내서라도 휴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오아시스 시간’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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