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지능

지각지능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 1999>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세계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대담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이를테면 당신의 가족과 직장 그리고 지금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까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릿속에서 연출된 가짜라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매트릭스>의 배경이 되는 가짜 세상은 고도의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고 연출된 것이다. 그 고도의 지적 존재란 인류와 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한 기계들이다. 인류는 그 기계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 속에 정신이 가두어진 채, 실제 세계에서는 기계들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로 전락한 삶을 살게 된다.

기발한 발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매트릭스>는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아무리 골수 영화 팬이라도 ‘오, 그럴듯한 이야기네.’라고 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우리 인류가 실제로 매트릭스 안에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실제로 거의 없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말이다.

그런데 매트릭스가 진짜로 의미하는 본질, 즉 사람들이 믿고 있는 세상이 실제 세상이 아닐 수 있다는 발상에 관해서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계가 만든 가상현실이 매트릭스의 유일한 작동 원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안과 의사 브라이언 박서 와클러Brian Boxer Wachler가 그의 책 <지각지능 원제: Perceptual Intelligence | 브라이언 박서 와클러 지음 | 최호영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01월 16일 출간>에서 말하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는 실제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매트릭스와 다를 바 없는 가상의 세계에 빠져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영화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기계들이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인간을 가두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인간의 미숙한 사고방식이 스스로를 ‘착각의 틀’에 가둔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할법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이러한 ‘착각의 틀’의 사례를 보여준다. 사람 모양의 그을음이 남은 빵조각을 성모마리아의 발현이라고 믿으며 수천만 원에 거래하는 사람들이나 고양이 똥에서 채취한 커피 한 잔에 10만 원을 지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착각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 놓여있지만, 알고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맹목적인 믿음과 가치 판단으로 실제가 아닌 허상에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각지능이란 ‘우리의 경험에서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해석 방법’이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착각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 더 쉽게 말해 ‘착각에 빠지지 않는 능력’이 바로 지각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지각지능이 극복해야 하는 숙제인 착각의 실체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다만, 그 내용이 다소 중언부언이라 내가 보기에는 이 내용의 대부분이 책의 분량을 뽑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만약 나더러 정말 중요한 핵심만 뽑으라고 한다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착각의 틀’의 실체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허영심, 편견, 위선이다.

먼저, 허영심은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는 겉치레에 치중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의 밑바탕에는 자기 자신의 판단보다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낮은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남의 눈을 빌려서 세상을 살아간다. 결과적으로 착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편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편견이란 이전의 제한된 경험이나 환경의 기억에 사로잡혀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걸 말한다. 자연스레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실제와 인식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이 또한 필연적으로 착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위선은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행위다. 우리는 말만 번드르르하고 실제 행동은 개차반 같을 사람을 두고 위선적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게 반복되다 보면 자신의 진짜 생각과 모습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위선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걸 넘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착각에 빠뜨리는 이유다.

요컨대, 허영심과 편견 그리고 위선은 우리 자신을 착각에 빠뜨려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매트릭스는 기계가 만든 가상 현실이 아니라, 허영과 편견 그리고 위선으로 이루어진 ‘착각의 틀’이다. 이것이 저자가 <지각지능>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내용이다. 허영심, 편견, 위선에 눈이 멀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는 게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다.

지각지능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착각의 틀’에서 벗어나 명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높은 지각지능’을 위해서 우리가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허영심과 편견 그리고 위선이란 인생 매트릭스의 3요소에 이미 그 힌트가 있다. 지각지능이 높은 삶, 즉 ‘착각의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꾸로 그 원인이 된 이 세 가지를 해소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허영심에 젖어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고, 편견에 흔들리기보다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며,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버리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답은 아닐까. 그렇게 하면 ‘착각의 틀’이라는 매트릭스도 자연스레 무너지게 될 것이다.

책을 바탕으로 추릴 수 있는 생각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어떤 어색함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사실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오늘 글의 진짜 핵심이다.

<지각지능>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봄 직한 내용이다. 허영심, 편견, 위선에 빠져서 거짓된 삶을 살지 말자는 이야기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특히 소셜 네트워크마다 부풀려지고 뒤틀려진 병든 자아가 넘쳐나는 오늘날에 특히 곱씹어볼 만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가 이처럼 좋은 주제를 다루기 위해 선택한 전달 방식에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니, 아쉬움을 넘어 정작 저자 자신의 지각지능은 충분히 훌륭한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예컨대, 저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몇몇 저명인사의 주치의라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뿐만 아니라 유명 영화배우들인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나 톰 행크스Tom Hanks가 저자의 이웃임을 밝히며 그들과의 친분을 언급한다. 이것들은 사실상 책의 메시지와 관련 없는 내용이다. 내가 과도하게 민감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과시성 내용들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다. 저자가 책에서 누누이 언급한 허영심으로부터 정작 저자 자신은 자유로운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그리고 이처럼 자기 자신도 극복하지 못한 허영심을 남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곧 위선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누군가를 지적하고 가르치려고 할 때,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잘못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자기 자신이 잘못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저자는 남들의 지각지능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지각지능을 먼저 돌아보아야 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는 저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나 자신도 글을 통해 이렇게 저자를 비평하고는 있지만, 내가 저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 내가 주제넘게 저자의 지각지능이 높네 낮네 운운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저자의 책에서 위선과 허영을 지적하면서도 못내 조심스러운 이유다.

어쩌면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착각은 남들이 착각하고 있을 거라는 바로 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매트릭스에 갇혀있다고 말하는 동안 정작 우리 자신은 매트릭스로부터 자유로운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착각하지 않는 능력에 관한 책, <지각지능>을 읽고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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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지능”에 대한 3개의 생각

  1. 허영심,편견,위선~~
    아프리카 오지에서 깡마른 아이를 안고 가슴 아파하는 어느 평화봉사자의 알록달록한 챙넓은 모자를 보며
    우린 너무 사치했구나 생각한 적 있었습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만남의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무게~~
    많은 것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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