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의 진짜 의미

대부분의 마트에는 들어가서 가장 눈에 띄는 쪽에 과일 코너가 있다. 그리고 그 과일 코너 중간쯤에는 거의 항상 바나나가 놓여있다. 얼핏 보기에는 다 같은 바나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종류가 있다. 바로 유기농과 유기농이 아닌 것. 나는 이 둘을 마주할 때마다 잠시 고민에 잠긴다.

먼저, 아무래도 유기농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나나가 숨을 쉬는 것도 느껴질 듯 하다. 당연히 농약은 안 썼을 것이다. 그에 비해 옆에 있는 ‘보통’ 바나나에는 농약이 범벅되어있을 듯하다.

유기농이 값은 좀 더 나가지만 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다. 상술인 듯한 찜찜함도 없지는 않지만, 겨우 조금 더 비싸다는 이유로 가족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유기농이 아닌 거로 선택하는 건 안 될 말이다. 명색이 아빠고 남편인데 돈 몇 푼에 연연할 수 없다. 차라리 상술에 넘어가면 넘어가고 말지. 자의 같은 타의 혹은 타의 같은 자의로 내 손은 어느새 유기농 바나나를 향하고 있다.

비싼 가격이 유기농 식품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가격과 수요는 서로 반비례하기 마련이지만, 유기농 식품만큼은 예외다. 비싼 가격이 오히려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유기농이 좋아서 비싼 것일까. 좋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에 좋다는 것일까. 사람들이 흔히 짐작하는 것처럼 유기농 식품의 비싼 가격은 유기농이 건강이나 환경에도 좋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유기농은 사실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유기농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GMO가 아닌 종자를 쓰고 화학 비료나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재배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유기농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기농 식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을 위한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건강과 환경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유기농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다. 예컨대 트랜스 지방 때문에 건강에 부담이 되는 달콤한 쿠키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쿠키가 먹고 싶을 때 이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기농 딱지가 붙어있는 쿠키를 선택한다. 좀 더 건강한 쿠키와 평범한 쿠키를 비교한다. 그럼으로써 건강한 선택을 했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한편, 유기농은 환경에 해가 덜 된다는 인식도 있다. 사람들은 유기농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으니 환경 오염이 적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유기농도 비료와 농약을 쓴다. 그뿐만 아니라 유기농 재배는 일반적인 재배 방식보다 그 효율이 현저하게 낮아서, 같은 넓이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이 더 적다. 이는 곧 유기농 재배에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생태계 파괴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유기농 식품이 환경에 유익하다는 건 유기농 재배의 영향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 생각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유기농 쿠키 같은 트랜스 지방과 탄수화물 덩어리보다는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섬유질이 풍부한 과일이 훨씬 낫다. 환경을 생각하더라도, 더 많은 땅을 갈아엎어 가며 재배한 유기농 과일이 기존의 과일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유기농’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살아있고 숨을 쉬는 듯한 비범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이 더 건강하고 깨끗하다고 여긴다. 환경에도 더욱 유익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마트 진열대에 유기농과 유기농이 아닌 것이 있다면, 비싼 값을 주더라도 기꺼이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는 유기농 제품 구매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믿는다.

유기농 식품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유기농이라는 말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과 실제 유기농이 가리키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자는 것이다. 선택의 과정에 좀 더 신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매사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성이 행동을 결정하고 이성이 그 행동을 설명하는 경우가 실제로는 적지 않다. 그리고 그 감성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유기농’은 그러한 언어의 한 예일 뿐이다.

요컨대, ‘언어에 의해 유발된 감성’, ‘감성적으로 내려진 판단’,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는 착각’이라는 세 단계의 연쇄 고리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우리의 판단과 결정이 이 여기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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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의 진짜 의미”에 대한 1개의 생각

  1. 요즘 포스팅이 없으셔서…어디 아프신가 했습니다. 이런 좋은 포스팅 을 안주시다뇨~~ 오늘은 제가 퍼가겠습니다. 어서 좋은글 계속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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