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지 않고 사는 법

분노가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응급실에서부터 PC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세태를 지켜보면서 한 번은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아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내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사람이 도무지 화를 내는 모습이 없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발끈할 만한 일인데도, 나는 화를 내는 법이 없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황이 내 바람과 다르게 흘러갈 때 불만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분노로 감정을 폭발시키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노의 원인이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그건 곧 자책과 다를 바 없지 않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내가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 곧 자책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가 언제 분노를 느끼는지 생각해보자. 분노를 느끼는 상황은 이 땅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저 사람이 어떤 부당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분노한다’라고 느낀다는 점은 같다. 즉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분노를 일으킨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실제 분노의 원인은 상대방의 언행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오늘은 당신이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다. 몇 달간 기울여온 노력의 성패가 이 발표로 판가름 난다. 때문에, 당신은 전날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발표 준비를 하고 늦게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간의 스트레스에 피로가 겹쳐서 당신은 결국 발표 당일인 오늘 아침에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벽시계를 보고 다급해진 당신은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듯 세수를 하고 헝클어진 머리 정도만 대충 정돈한 후 출근 준비를 마쳤다. 아침을 거를 수는 없어서, 전날 먹고 식탁 위에 놓아둔 퍽퍽하게 식은 피자를 입에 욱여넣고 그렇게 집을 나섰다.

당신은 버스에 타고 가는 내내 발표 자료를 넘겨보며 빠뜨린 건 없는지 계속 검토했다. 어느새 버스는 회사 건물 맞은편에 도착했다. 읽고 있던 발표 자료를 옆구리에 끼우고 버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어내린 후,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 후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고, 당신도 사람들에 섞여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중간쯤 지났을 때. 저 멀리서 파란색 용달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당신 오른쪽의 정지선을 살짝 넘으며 급히 멈췄다. 신호를 잠깐 못 보고 그랬나 보다. 잠깐 멈칫했던 당신은 다시 횡단보도 맞은편을 향해 갈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갑자기 용달차 기사가 당신을 향해 상향등을 번쩍이면서 빵빵 경적을 울린다. 그뿐만 아니라 뭔지 모를 말을 하면서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해댄다. 아직 횡단보도 신호등은 파란불이었고 심지어 깜빡이지도 않는데, 이 무슨 적반하장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당신은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발표로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처음 보는 기사의 시비조 행동에 갑자기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말없이 참고 지나가면 만만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눈에 있는 힘을 주고 운전석 쪽을 노려봤다.

당신이 위협적인 표정을 보이자, 용달차 기사는 오히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뭔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히 당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당신이 방금 지나온 횡단보도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당신은 용달차 기사의 행동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이 조금 전까지 읽다가 옆구리에 끼워두었다고 생각한 그 서류 뭉치가 뒤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렇다. 그 기사는 당신이 중요한 서류를 떨어뜨리고 갔을까 봐 걱정해서 알려준 것이었다. 운전석에서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상향등과 경적이었다. 상황 파악이 되자, 용달차 기사를 겨누었던 당신의 날카로운 감정은 일순간에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자. 이제 이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자.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용달차 기사를 향한 당신의 감정이 분노 직전에서 고마움으로 180도 바뀌는 동안, 정작 분노 유발자가 될 뻔했던 그 기사의 행동은 하나도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오로지 바뀐 것은 같은 상황에 대한 당신의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따른 당신의 반응뿐이다.

이처럼 분노의 원인은 상대방의 행위가 아니다. 그 행위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다. 같은 것을 보고 분노할 수도 있고 상호이해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분노할지 말지는 당신 자신의 의지와 결정에 달린 문제다. 당신을 분노케 하는 것은 남이 아닌 당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소소한 발견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리 일상이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날카로운 분노로 서로 몸과 마음이 다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그런 작은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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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한 8개의 생각

  1. 좀 다르게 해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이 생판 모르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지만,
    직장상사,친구,알고있는 지인의 행동으로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중에 한명이겠죠..?!
    말한마디..행동하나에 신경이 쓰이고,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반응을 하고,
    반응을 표출하는 것은..좀 예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조차도~ 그사람을 향한 ‘인간애와 정”이 있어서.. 그냥,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서 본인도 모르게 상대방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라고요, 굳이, 말하자면..요즘사람들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관심 조차 1도 없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고 해야할까요..?!?! 특히나, 요즘처럼,
    출근중에도, 식사중에도, 사람들과의 모임중에도, 각자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에만 집중을 하고 있으니깐요.. 어떤한 상황이나 상대방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는것 자체가 본인 스스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찌되었든~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꾸준히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인간의 숙명(?) 이기 때문에..분노가 결코~ 좋은것은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아주 작은 인간미(?!) 혹은, 그 반응 쯔음..(?!)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흔히 듣는 엄마의 잔소리, 직장 선배의 쓴소리, 나에 대한 뒷담화까지도..!! 결국, 누구나 혼자라면.. 분노할 일도 반응 할 일도 분명 없을테니깐요.. 🙂

  2. 분노는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는 말에 공감 한다.
    분노는 이성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결국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분노,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해야
    한다.

  3. 밝고 좋은 예시라고 생각됩니다
    실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많은 상황도
    있죠~
    그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잘 읽었습니다.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으며
    분노도 2가지 표출 대상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사소한 것에 대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분노,
    다른 하나는 사회 정의 실현에 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분노, 예를 들어 권력자들의 횡포에 대한 분노 등
    이런 생각이 드네요
    분노할 상황에 분노하지 않으면 그것은 노예근성에물들었다는 그런 생각
    ㅎㅎ

  5. 그렇습니다.
    “일체유심조” 모든것이 마음에서 나온다는것.
    잠시 잊었던것을 일깨워주셨네요.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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