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좀 자고 싶은 사람들

떡진 머리를 하고 피로에 절어 있는 레지던트들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종합병원을 다룰 때 즐겨 쓰는 클리셰다. 그들의 모습은 흡사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 같다. 늘 긴장하고 있지만 표정은 지쳐있고, 눈을 뜨고 있지만 눈빛에는 영혼이 없다.

미디어에 비친 레지던트들의 모습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나 또한 외과 레지던트 시절 제대로 누워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응급 수술들이 이어져서 30시간 넘게 수술실을 벗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중환자실 창문 너머로 새벽을 맞이한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며 때로는 수술해야 하는 의사들의 정신과 신체가 최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숙련된 의사라도 환자 앞에 설 때는 몸가짐을 더욱 바로 해야 할 터인데, 하물며 이제 막 병원에 들어온 인턴 레지던트들의 심신이 지쳐있다는 것은 환자들에게 실로 위험한 일이다.

이런 부조리의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도 거대 종합병원의 수익 추구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의 IT 산업이 개발자들을 갈아 넣어 돌아간다던데, 대형 종합 병원은 인턴 레지던트를 기름 짜듯 짜내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만큼 그림자도 길어진다. 번쩍이는 첨단 병원 뒤로 드리운 그림자 안에서 젊은 인턴 레지던트들이 잠도 못 자고 학대에 가까운 근무환경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병원 수뇌부의 수익 추구만으로는 열악한 수련 환경이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인턴 레지던트들을 학대하는 관행의 원동력은 다른 곳에도 있다. 그건 바로 그 인턴 레지던트들을 이끌어줘야 하는 직속 상관 의사들의 보상심리이다. 그들 머릿속에는 ‘내가 젊었을 때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하라’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나이든 의사들도 비뚤어진 마음을 버리고 무엇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길인지 생각했으면 한다. 비록 나는 외과 레지던트 때 중환자실 옆에서 쪽잠을 자며 일했지만, 앞으로 인턴이나 레지던트에 들어오는 젊은 의사들은 잠 좀 자면서 일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의사가 맑은 정신으로 일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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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좀 자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3개의 생각

  1. 수면부족은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들었습니다.
    제대로된 판단이나 위기대처 능력도 떨어지게 되죠. 그런데 병원이야 말로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수련의를 기름짜고 갈아넣은 병원을 믿고 아픈 사람들은 찾아갑니다. 혹시 모를 의료사고 원인이 수면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도 좋지만 4,5시간은 재워야 병원이나 환자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 생각됩니다.

  2. 그런데 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pa제도에 전공의들이 결사반대하는거 보면 전공의 본인들도 공범이란 생각도 듭니다.

  3. 군대에서도 본인이 느꼈으니 후임도 그래도되
    병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국가에서도
    라고 생각하면 정말 무섭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 무섭고 대물림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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