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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킹

카테고리 킹

평소 자주 쓰던 익숙한 물건의 이름이 알고 보면 특정 회사의 상표명인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의 상표가 어떤 물건의 종류 전체를 대표할 때 생기는 일이다.

익숙한 예로 ‘스카치테이프’나 ‘딱풀’이 그렇다. 사람들은 “스카치테이프로 붙일까”라고 하지 “셀로판테이프로 붙일까”라고 하지는 않는다. “딱풀 좀 줘봐”라고 하지 “고체풀 좀 줘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후자가 해당 물품을 지칭하는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스카치테이프’나 ‘딱풀’은 어떤 제품의 상표일 뿐이다.

물론 모든 상표가 ‘스카치테이프’나 ‘딱풀’ 같은 대표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 대표 제품이 여타 제품보다 비교할 수 없이 유명한 경우에만 그렇다. 유명해진 이유를 살펴보면, 그 제품이 해당 카테고리 자체를 처음 만들어 냈거나 적어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분야를 완전히 새로 창조하고 장악해버린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기업을 카테고리 킹Category King이라고 한다. 카테고리 킹은 동명의 책 『카테고리 킹 원제 : Play Bigger | 앨 라마단, 데이브 피터슨, 크리스토퍼 록헤드, 케빈 매이니 지음 | 신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11월 22일 출간』에서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저자들은 카테고리 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의 주장에 내 나름의 해석을 더해서 이를 정리한다. 카테고리 킹이 나타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불편함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초창기 인터넷은 원래 극소수 연구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량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그러자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이 문제가 인터넷 성장에 따른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누군가는 불편함을 당연한 게 아닌 해소할 수 있는 문제로 본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대학원 과정에 있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도 초창기 인터넷 사용자로서 똑같은 불편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 불편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았다.

셋째,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문의 중요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피인용 지수impact factor, IF가 있다. 어떤 논문이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많이 인용될수록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두 대학원생은 이 피인용 지수 개념을 인터넷 정보 검색에 적용한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웹페이지 중에서 다른 웹페이지로부터 인용된 횟수가 많을수록 검색 결과의 상위에 표시했다. 이들이 만든 검색 서비스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전에 없던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했는데, 그 검색 서비스의 이름이 바로 구글Google이다.

넷째, 이 해결책이 하나의 생태계 즉 카테고리가 된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마다 구글 첫 화면에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몰리자 구글은 다양한 수익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지켜본 후발주자들은 자신들도 인기 있는 검색 서비스를 만들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경쟁에 뛰어든다. 검색 서비스라는 산업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된다.

다섯째, 해결책을 창안한 자는 카테고리 킹이 된다.

야후Yahoo도 검색 서비스를 강화한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빙Bing을 만든다. 하지만 후발주자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반짝 관심을 끌 뿐 시간이 갈수록 인기가 시들시들해진다. 반면에 더 많은 사람이 구글을 사용하고, 구글에는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구글의 입지는 더욱더 단단해진다. 이처럼 카테고리 킹이 되면 지배적인 위치에서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글은 후발주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배력을 갖추게 된다. 마침내 구글은 그 이름이 검색 서비스를 대표하는 지위에 오른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구글링googling’이라고 한다. ‘구글’이 곧 ‘검색’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구글도 ‘스카치테이프’처럼 카테고리 킹이 되었다.

카테고리_킹

요컨대, 카테고리 킹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불편함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그 출발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이제껏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해결책으로 풀어가는 창의성이 이어진다. 그 해결책이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든다. 이어서 후발주자들이 여기에 몰려들면서 생태계를 이룬다. 맨 처음 해결책을 제시했던 창안자는 이 생태계를 지배하는 카테고리 킹이 된다.

하지만 한가지 유념할 점이 있다. 카테고리 킹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카테고리 킹 자신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생태계 안에서는 그 지배력을 유지하겠지만, 그 생태계 밖에서 도전자가 나타나면 카테고리 킹은 어느새 그 위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말하자면 카테고리 킹은 언제든 또 다른 카테고리 킹으로 교체될 수 있다.

예컨대 구글은 여전히 뛰어난 검색 서비스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인터넷의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웹페이지의 인용 횟수를 분석해 원하는 결과를 찾아준다는 구글의 방식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구글은 개개인의 검색 기록에 따라 검색 결과를 조정하는 등 ‘기존의 틀 안에서’ 개선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 쭉 펼쳐진 검색 결과에서 원하는 걸 고르는 건 인터넷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자 페이스북이 나타나 ‘기존의 틀 밖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들은 구글의 기본 원리인 웹페이지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관계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준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인 셈이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방식이 구글의 방식 못지않게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소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진다.

아마 페이스북이 구글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기업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구글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는 점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페이스북은 이미 또 다른 카테고리 킹인 셈이다.

『카테고리 킹』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그때 나는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분야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카테고리 킹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나에게 가장 익숙한, 아니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의사이다.

오래 전 주술이나 민간요법이 의사의 역할을 대신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당신은 더 이상 벌침을 맞지 않는다. 시름시름 앓는다고 굿판을 벌이지도 않는다. 혹시 아직도 약초 달인 시커먼 물을 보약이라며 마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신 병원에 가서 의사들을 만난다. 의사들은 의학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 원리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각종 장치와 기구를 활용하여 당신이 아픈 이유를 찾는다.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을 하고, 약이 필요하면 약을 처방한다. 의사와 당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알고 보면 그 하나하나가 체계적인 연구와 엄격한 임상시험에서 얻은 귀한 결과물들이다.

의사들은 미신이 횡행하던 시대를 벗어나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현대 의학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일구어낸 이들이다. 그런 면에서 의사는 전형적인 카테고리 킹이다.

하지만 의사도 자신들이 의료의 카테고리 킹이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의사도 언제든지 새로운 카테고리 킹에 의해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가 주도하는 의료 서비스가 이미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는 언제 어디서든 아플 수 있지만 의사를 만나려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야 한다. 시공간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한편, 의사마다 지식과 경험이 서로 다르므로 같은 질병에도 서로 다른 진단과 치료가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의사들은 오진할 수도 있다. 이를 경험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환자들 개개인이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다 다를 텐데 의사들이 일일이 파악하여 대처할 수도 없다. 환자 개개인의 다양한 특성에 따른 문제이므로 개체적 한계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시공간적 한계, 경험적 한계, 개체적 한계는 의사 주도의 의료 체계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이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변화의 출발점이다.

구글이 야후를 뒤집었듯이 그리고 페이스북이 구글에 도전하듯이, 여러 한계를 지닌 의사 중심의 의료 체계를 환자 입장에서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킬 해결책은 없을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 여기는 현행 의료 체계의 수많은 한계들을 완전히 새로운 틀 안에서 해결해낼 수 있는 그런 카테고리 킹 말이다.

여기 유력한 후보가 있다. 다만 그 후보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그리고 이 셋은 서로 경쟁하고 배척하는 상대가 아니라 서로 힘을 합칠 수 있는 후보들이다. 그럼 그 세 가지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보자.

먼저, 원격의료이다. 원격의료는 의사의 시공간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병이 나면 아픈 몸을 이끌고 의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아플 때는 집에서 쉬고 싶은 법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의료 서비스는 집에서 받는 게 이상적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이유 등 여러 걸림돌 때문에 이게 불가능했다.

지금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가만히 살펴보자. 의사의 눈이 되어 줄 카메라가 있다. 그리고 의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스피커와 마이크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검사 기계와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블루투스도 있다. 앞으로 더 훌륭한 기술들이 얼마든지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수술처럼 고가의 시설이 필요한 의료 처치를 예외로 둔다고 하자. 고혈압과 당뇨병같이 정기적인 관리로 충분한 질병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원격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의사의 경험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의사 한 명이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전념해도, 전 세계 새로 출간되는 의학 서적의 100개 가운데 2개를 읽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의학 논문은 의사들이 자는 동안에도 40초마다 하나씩 쏟아져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의학 지식을 고려했을 때, 작은 수박 크기의 머리 하나가 지식 저장소의 전부인 의사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다르다. 무엇보다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먼저 속도의 한계가 없다. 인간 의사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속도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료 지식을 흡수할 수 있다. 게다가 낭비되는 시간 없이 거의 즉시에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기억의 한계가 없다. 의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배운 걸 까먹기도 한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한번 배운 것을 저장 공간의 어딘가에 넣어두고 절대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실수란 것이 없다. 단지 시행착오가 있을 뿐이다. 배운 적이 없는 걸 틀리는 건 실수가 아니라 시행착오다. 아무튼 시행착오 정도만 해도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인간 의사보다는 훨씬 낫다.

마지막으로, 맞춤의료이다. 맞춤의료는 환자의 개체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 건 의사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몸에 대해서 더욱 잘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피 한 방울로 개인의 유전자 분석이 가능한 시대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분석을 통해 향후 질병 가능성을 판단하는 서비스도 시중에 선을 보이고 있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병을 얻고 뒤늦게 고생하기보다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막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노력이 계속 쌓이면서 현대 의학의 개체적 한계도 해결될 것이다.

요컨대 원격의료, 인공지능, 맞춤의료는 다음 세대에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 카테고리 킹의 유력한 후보들이다. 기존에 당연시되던 한계를 해결하는 게 카테고리 킹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시공간적, 경험적, 개체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세 후보는 미래 의료의 카테고리 킹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은 의사를 만나는 것이 곧 의료 서비스 그 자체다. 의사가 의료 서비스의 명실상부한 카테고리 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잖은 미래에 의료 서비스의 의미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이다. 아니,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우리 삶을 건강하게 지켜줄 새로운 카테고리 킹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함께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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