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없는 자본주의

자본 없는 자본주의오랜만에 예전 이야기 하나를 풀어보려고 한다. 결혼 전에 아내와 만남을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 시절 아내는 부산에 있는 직장에 다녔고, 나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밤샘 근무가 끝나고 토요일 아침이 되면 숙소에 가서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고 정신없이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 세우고 몸을 던졌다. 그렇게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KTX에 올라탔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2시간 반 후에 부산에 도착해서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만약 택시에 타고 보니 신고 있는 신발이 구두가 아니라 병원에서 신던 크록스였거나,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거나 하면, 그날 점심을 함께 먹는 건 물 건너간 셈이었다. 토요일 오전의 서울발 부산행 KTX는 거의 항상 빈자리가 없어서, 며칠 전에 예약한 자리를 놓치면 다음 차를 언제 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말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그래도 전혀 힘든 줄 몰랐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 주에 다시 보자며 각자의 일터가 있는 부산과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왔을 때였다. 이렇게 매주 주말마다 만나고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차차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주는 나의 아내, 그러니까 그 당시 여자친구가 서울로 왔었다. 나는 차를 몰고 서울 시내 이곳저곳으로 안내했다. 차로 이동하는 내내 아이팟이 연결된 자동차 오디오에서는 내가 미리 선곡해 두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즘에는 골동품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네모난 화면 아래에 도넛 모양의 클릭휠이 달린 그 아이팟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 대화의 흐름이 끊어졌을 때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좋은 이야깃거리를 떠올리기 위해 애쓰며 말없이 앞을 보고 운전을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아마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내도 침묵을 끝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나 보다. 내 아이팟을 슬쩍 집어 들더니, 혹시 다른 음악이 뭐가 있나 봐도 되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순간 내 심정은 조금 복잡했다. 나는 운전하느라 핸들을 잡고 앞을 보면서도 계속 내 아이팟을 만지작거리는 아내의 손에 눈길이 갔다. 혹시 내 아이팟에 담겨있는 옛날 가요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이팟을 그만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내 아이팟에 흘러간 80~90년대 대중가요가 실려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 옆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 가까운 미래에 내 반려자가 된다면, 나는 아무것도 숨김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주말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마음을 먹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내 아이팟을 가져가라고. 우아한 클래식이나 감미로운 재즈뿐 아니라 내 아이팟 안에 들어있는 철 지난 가요도 내 취향의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그 기분은 마치 오랫동안 써온 일기장을 전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즘도 10대 때 듣던 가요를 종종 듣는다. 그 시절 들었던 노래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도 친숙하고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대 때 들었던 음악이 생애 나머지 시기에 들었던 음악보다 한 사람의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10대 때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을 때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음악처럼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실물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소설, 영화와 같은 창작물부터 디자인, 브랜드, 소프트웨어 등이 좋은 예다. 나름의 가치를 지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 대상들, 이른바 무형자산은 오늘날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 원제 : Capitalism Without Capital | 조너선 해스컬 |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지음 | 조미현 옮김 | 김민주 감수 | 에코리브르 | 2018년 06월 25일 출간>는 이러한 무형자산의 특징과 그 영향력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책 제목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이고 원서 제목도 같은 의미의 <Capitalism Without Capital>이다. 역설적인 의미의 제목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 제목은 약간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주제인 무형자산은 단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형태가 없는 것일 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형자산이 자본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본 없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만질 수 없는 자본주의’가 이 책의 실제 내용에 더욱 맞는 제목일 것이다.

여하튼,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나 건물처럼 전통적인 유형자산 못지않게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변화의 흐름에 대책없이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형자산이 유형자산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무형자산의 네 가지 특징을 요약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매몰성이다. 경제학에서 매몰이란 투자 후 이를 회수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지금 당신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보자. 스마트폰 기계 자체는 나중에 중고로 되팔 수 있다. 원래 스마트폰을 샀을 때 값만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일부라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스마트폰에 설치한 유료 앱들은 어떨까. 이를 되파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 다른 운영체제의 스마트폰으로 바꾼다면 이 앱들은 다시 쓸 수도 없다. 이때 앱 구입비는 매몰 비용이라고 한다. 실물이 없는 앱 즉 무형자산에 투자한 비용이다. 이는 손에 잡히는 기계로서의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실물이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에 비용을 지불하는 순간 다시 돌려받을 길이 없고, 이를 매몰이라고 한다. 무형자산의 매몰성은 무형자산이 실물로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둘째, 스필오버다. 스필오버란 우리말로 ‘넘쳐서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의미다. 계속 스마트폰을 놓고 이야기해 보자. 나와 당신은 각각 서로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 사장이다. 우리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직원을 시켜서 한밤중에 당신의 회사 창고에 쌓아둔 스마트폰을 트럭에 실어 몰래 가져왔다고 해보자. 이는 명백한 도둑질이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내가 당신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스마트폰을 돈을 주고 사들인 후 이를 분석하여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서 내놓도록 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도둑질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스마트폰은 다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물론 시장에는 지적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특허로 이를 보호하기는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개된 아이디어는 공개된 시점부터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보호받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당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아이디어를 비밀에 부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경쟁하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만천하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디자인이 될 수도 있고 기술이 될 수도 있는 아이디어, 즉 무형자산은 비밀에 부치지 않는 이상 주변에 흘러갈 수밖에 없는데, 그 속성상 비밀에 부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셋째, 확장성이다. 쉽게 말해,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반복해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 혼자만 쓸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내 글은 어떤가. 누구든 원한다면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무형자산이란 그렇다. 일단 한번 만들어 두면 비용의 재투입이 거의 필요 없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앞서 말한 매몰과 대조적인 성격을 보인다. 매몰은 무형자산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반면, 확장성은 한번 투자한 비용을 무제한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넷째, 시너지다. 상승효과라고도 하는 시너지는 흔히 ‘1+1=3’이라는 공식으로 더 자주 표현된다. 그렇다면 무형자산이 시너지를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하나의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와 만나서 서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검색 서비스에서 출발한 구글은 지도, 이메일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더니 이제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무료 메신저로 시작한 카카오톡은 대리운전, 콜택시 같은 차량 관련 서비스로 그 영역을 넓히더니 이제는 은행업까지 진출했다. 흥미로운 점은, 시너지가 앞서 말한 스필오버와 대조적인 면이 있다는 점이다. 스필오버가 무형자산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 대한 손실의 성격을 강조한 반면에 시너지는 이익의 성격을 강조한다.

요컨대, 매몰성sunk, 스필오버spillover, 확장성scalable 그리고 시너지synergy가 무형자산의 네 가지 특성이다. 저자들은 이 네 가지 영어 단어의 맨 앞글자를 따서 4S라고 부른다.

저자들은 무형자산의 네 가지 특징들이 현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한다. 금융 환경의 변화처럼 다른 것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을 여기서 다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고 적절하지도 않다. 내가 무형자산의 영향 가운데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불평등’의 심화이다. 오늘은 이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왜 무형자산이 중요해질수록 불평등이 심해질까. 나는 저자들이 분류한 무형자산의 네 가지 특징을 크게 둘로 묶을 수 있다고 본다. 매몰성과 스필오버 그리고 확장성과 시너지다. 앞에 있는 것은 무형자산의 손실적인 면이고 뒤에 있는 것은 이익적인 면이다.

무형자산이 승패를 가르는 시대에 살아남는 비결은 결국 무형자산 투자에 따른 손실을 버티고 살아남아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다. 즉 무형자산의 확장성과 시너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매몰성과 스필오버를 견디어 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무형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회사나 개인은 그 이점을 더욱 쉽게 누릴 수 있고, 반대로 무형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쪽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될 수밖에 없다. 매몰성과 스필오버는 빈익빈으로 이어지고 확장성과 시너지는 부익부로 이어진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매몰과 스필오버를 견딜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무형자산에 투자할 여력은커녕 유형자산을 확보하는 것조차 버겁다. 그 결과 무형자산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여러모로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형자산을 확보하는 게임에서 영영 구경꾼으로만 남아야 하는가.

자본_없는_자본주의-482997716-1532691018449.jpg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무형자산은 그것을 지탱하는 하나의 공통된 존재 기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용’이다. 무형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상호 간의 신용이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이를 앞의 네 가지 특징에 적용해 보자.

우리가 스마트폰 앱을 구입하느라 그 비용을 ‘매몰’하는 이유는 그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대한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공개된 아이디어가 타사에 의해서 도용되는 ‘스필오버’가 있음에도, 기업들이 이에 주눅 들지 않고 꾸준히 연구 개발을 이어가는 것은 혁신을 인정해주는 소비자들로부터의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창작물이 오래도록 생명력을 이어가는 ‘확장성’이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창작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신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가지 서비스를 성공시킨 회사가 다른 서비스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는 ‘시너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그 회사의 이름 즉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신용이 쌓였기 때문이다.

무형자산의 본질이 신용이라고 한다면, 개인이 무형자산을 쌓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신용을 쌓는 것이 곧 무형자산을 쌓는 것이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서 가뜩이나 자본이 부족한 우리가 생존하는 유일한 길은 신용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질문은 명백하다. 어떻게 하면 신용을 쌓을 수 있는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무형자산으로서 신용을 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다음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우선 자신의 신용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예전에 썼던 글에서 다른 사람의 신용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공식을 소개한 바 있다. 이른바 ‘신승건의 신용 법칙’이다. 이를 여기에 다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신승건의 신용 법칙
신용 = 약속을 지킨 비율 (%) x 알고 지낸 시간 (년)

이 법칙에 따르면 누군가가 아무리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고 하여도 냉철하게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 이 신용 법칙은 타인들의 평가와 잡음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상대방의 신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법칙에 따라 그 결과값이 1이 안되는 사람이라면 일단 크게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지금 당신이 꼭 신용을 얻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신용 법칙을 그 사람 관점에서 당신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 당신은 그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당신의 무형자산이다.

당신이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지켰던 약속과 지나온 시간, 이게 당신 브랜드고 콘텐츠다. 신용이 곧 무형자산이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는 사실 ‘자본 대신 신용이 중요한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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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 독서록입니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1개의 생각

  1. 김명환의 신용 법칙 (신의사님 내용 패러디…)
    신용 = 약속을 지킨 비율 (%) x 알고 지낸 시간 (년) + 함께한 식사수 (%)
    ps. 함께한 식사수는 그사람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초반에는 만난 회수로 생각했으나 상대방에 나를 무시가하고 찾아오는 횟수도 포함되므로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상대가 서로 동의한 상태인 식사?를 기준으로 잡아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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