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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의학자

이상한 나라의 의학자

오늘은 어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종교 자유도는 세계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개신교, 불교, 천주교와 같은 대표적인 종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가 우리 사회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566개의 종교 단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종교는 아직 이 통계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73.8%가 평생 한 번 이상은 발을 담가 본 종교다. 이쯤 되면 국민 종교로 불리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대부분 종교가 그렇듯 이 종교도 교인들의 열렬한 믿음과 지지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종교는 여타 종교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대다수 종교가 신의 존재와 사후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에 기대는 것과는 달리, 이 종교는 교인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더욱 강력한 것을 약속한다.

그것은 바로 ‘건강’이다. 사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교인들 자신의 건강이 이 종교가 약속하는 천국이자 극락이며 구원이다.

자. 지금부터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인간이란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때조차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종교라면 모름지기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사람들을 그들의 성전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십자가가 되었든 불상이 되었든 혹은 코란이 되었든. 종교의 불편한 진실이다.

이 종교의 관계자들도 그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건강’도 손에 딱 잡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또 너무 눈에 뚜렷하게 보이면 종교적인 신비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무언가 눈에 보이면서도 적당한 신비감이 느껴지는 ‘미끼 상품’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특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이 종교의 분파는 미신과 민간요법이 혼재하던 역사적 배경을 십분 활용하여 아주 매력적인 ‘미끼 상품’을 선보인다. 이른바 신성한 ‘검은 액체’라는 것이다. 이 종교의 교리에 따르면, ‘검은 액체’는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범한 물질로, 이것을 마셔서 체화하면 온갖 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검은 액체’의 효험이 현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 ‘검은 액체’가 ‘미끼 상품’의 위치를 넘어서 사실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검은 액체’가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 종교의 관계자들에게는 확실히 뛰어난 능력이 있다. 성스러운 ‘검은 액체’를 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두둑한 돈을 챙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알고 보면 종교라는 것이 참 역설적이다. 사랑과 자비를 전하는 종교가 결국 갈등과 반목을 일으켜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가 어느 종교를 믿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것은 역사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아니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검은 액체’의 종교도 그 위선과 포악성만큼은 기존 종교 못지않다. 숭배의 대상인 ‘검은 액체’를 마시고 교인들이 건강을 해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검은 액체’ 때문에 멀쩡하던 간이 망가지거나, 암에 걸린 이가 수술만 받으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었음에도 ‘검은 액체’에 의존해 결국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죽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여신도는 모태신앙이란 이유로 이 ‘검은 액체’를 걸음마를 막 뗀 아이에게 마시게 하여, 다 자리지도 않은 아이 머리털이 모두 빠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사실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으니 실제로 얼마나 자주 교인들이 목숨을 잃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종교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은 액체’의 신성함을 세속에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일은 종교 탄압이다.

이 종교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지는 않다. 현대 사회에서 갑자기 나타난 신흥 종교도 아니다. 아주 오래되었고, 전 세계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은 액체’가 숭배의 대상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것이 ‘검은 액체’의 자리를 대신한다. 예컨대 아프리카 일부 부족에서는 얼굴과 온몸에 칠한 화려한 물감이 정확히 그 역할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의학자 원제 : A Scientist in Wonderland | 에드짜르트 에른스트 지음 | 강석하, 김현우 옮김 | 과학과 세상 | 2017년 08월 25일 출간』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이 종교의 친척들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들 무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평생을 헌신한 의사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로,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다.

저자 에른스트 교수의 이름이 익숙하여 기억을 거슬러보니, 이 저자의 책을 내가 한 번 서평으로 다룬 적이 있었다. 전작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사이먼 싱, 에트차르트 에른스트 지음 | 한상연 옮김 | 윤출판 | 2015년 08월 25일 출간』였다. 3년쯤 전에 이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다룬 책이 바로 에른스트의 책이었다.

의사로서 ‘반권위주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방향을 제시하여준 책, 의학을 빙자하는 종교들에 대항하는 것이 의사로서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의무임을 일깨워준 책이다. 당시 내가 얼마나 깊이 감명을 받았으면 블로그를 열고 서평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라.

저자 에른스트는 원래는 독일 태생으로 대대로 의사를 배출해온 집안 출신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오랜 명문인 비엔나 대학University of Vienna 병원의 재활의학과장으로 일하던 중, 영국의 엑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서 서양 최초로 이러한 종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자리가 마련되자 선뜻 지원한다.

하지만 그는 알았어야 했다. 종교에 깊이 빠진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는 것을. 특히 그 종교가 관계자들에게 수익성 높은 사업이면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순수한 신념 덕분에,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이 에른스트 교수처럼.

하지만 에른스트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만약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종교가 사이비 종교라면, 게다가 그 사이비 종교가 돈을 벌고자 사람의 정신은 물론 신체까지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다른 말로 ‘사이비 의학’이라면 승패를 떠나서 싸울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이상한_나라의_의학자

말하자면, 이 책은 사이비 의학과 맞서 싸운 어떤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미신에 가까운 사이비 의학이 현대 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볼 때,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큰 책이다.

사이비 의학, 혹은 의학의 탈을 쓴 종교.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이비 의학에 기대어 연명하는 자들이 있다. 마치 의사인 척하며 실제로 아픈 이들을 치유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 그저 환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그들의 지갑을 터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 그렇다. 앞에서 말했던, 당신에게 몸에 좋다며 ‘검은 액체’를 팔아먹으려는 그 파렴치한 사이비 의사들이 바로 그 자들이다.

사이비 의사들이 항상 애용하는 레퍼토리가 몇 가지 있다. 아마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하나하나 드러내 보이고 그 허구성을 짚어 보자. 부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이비 의사들 앞에서 호구 잡히지 않기를.

첫째, 군중의 오류. 사이비 의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이 귀하디귀한 ‘검은 액체’를 마신다며, 이 ‘검은 액체’가 만약 효과가 없다면 그 많은 사람이 다 바보인 줄 아느냐며, 우리의 의심을 반박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다고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사이비 의사들이 수많은 사람을 농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둘째, 입증할 수 없는 효과. 이 사이비 의사들은 말한다. 신성한 ‘검은 액체’로 건강을 얻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하지만 ‘검은 액체’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입증된 임상시험이 얼마나 빈약한지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아니면 알면서도 돈에 눈이 어두워서 모른 체하는 것이거나.

셋째, 자연에 대한 환상. 자연은 그 단어 자체로 무언가 깨끗하고 심지어 장엄한 느낌마저 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검은 액체’가 오로지 자연의 선물로만 만든 것이라고 홍보한다. 현대 의학이 제공하는 의약품은 공장제 약품이므로 자연에서 나는 자신들의 것이 더 안전하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들도 안다. 독초나 독버섯도 자연산이라는 사실을.

넷째, 물귀신 작전. 그러면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대 의학의 의사들이 처방하는 약도 문제가 많다고. 물론 의사들이 처방하는 의약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이비 의사들의 위험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리고 사실 의사들이 처방하는 의약품은 엄정한 임상시험을 거쳐서 시판되므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매우 낮지만, 설사 나중에 문제가 생길 때조차도 그 이후의 대처는 사이비 의사들과는 다르다. 적어도 문제가 생길 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는 갖추어져 있다. 그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자의 최소한의 양심에 관한 문제다.

다섯째, 유구한 전통이란 허울.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오랜 세월 쌓인 경험과 유구한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달리 말해, 그들의 ‘검은 액체’가 오래전 의학적 지식과 약품 제조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래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죽어갔다는 사실, 그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작용에 대해서조차 쉬쉬하는 사이비 의사들의 모습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마 수십 수백 년이 흘러도 그들의 후계자들로부터 ‘유구한 전통’ 같은 비겁한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 사이비 의사들은 그렇게 전통에 목매달면서도 현대 의학의 여러 장비들, 이를테면 X-ray나 CT 혹은 초음파를 사용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행태인가. 정말 묻고 싶다. 그들이 믿는 경전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졸업한 신학교에서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현대 의학 기기, 나라에서 그거 쓸 수 있게 해준다 치자.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종교와 현대 의학은 점성술과 천문학만큼이나 다르다. 점술가에게 천체망원경을 사용하게 해주면, 더 용한 점괘라도 나온다는 말인가.

요컨대, 나는 오로지 자연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기대어 전통이란 허울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의사들의 활동 영역은 의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종교다울 때 아름다운 법이다. 만약 종교가 돈맛에 취하여 의학 행세를 한다면,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이비 의사 개개인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며 심지어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뚜렷하게 공개하지 않는 ‘검은 액체’을 권한다면, 그래서 제대로 집계조차 안 되는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상적인 종교가 아니다. 조직적인 반인륜 범죄일 뿐이다.

여기서 내가 그 ‘검은 액체’의 종교가 무엇인지, 사이비 의사들이 누구인지 직접 밝히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쯤 당신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사이비 의사들은 이게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 가운데 단 한명이라도, 정말 단 한명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돈 때문에 무고한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을 그만둔다면, 밝은 세상으로 나와서 정직한 삶을 살기로 한다면, 나는 그걸로써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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