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포퓰리스트인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여기에 어떤 정치인이 있다. 그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 왜냐하면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신속하게 파악하고 정책에 적용한다. 이를테면 그는 대기업이나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이를 사회적 약자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위해 활용한다. 외교 무대에서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대중들 앞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그들과 소통하는데도 소홀함이 없다. 이런 노력들 덕분일까. 이 정치인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그 정치인을 좋아하지는 않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정치인을 포퓰리스트Populist라고, 그의 정치 방식을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부른다. 포퓰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철학’이다. 원래 의미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포퓰리스트나 포퓰리즘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르게 껄끄럽게 다가온다. 포퓰리스트라는 단어에는 깊이는 없이 오로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치인 가운데 자기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로 부르는 이는 거의 없다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정치인이 보통사람들 즉 대중의 요구와 바람에 따르는 것이 과연 잘못된 태도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존재하는 이유, 특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정치인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나 나처럼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각자 먹고살기에 바쁘다. ‘이 사회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 ‘이래서는 안 된다’ 같은 생각은 많지만 이를 실현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일해 줄 심부름꾼을 정하기로 한다. 여러 심부름꾼이 각자 자신의 생각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을 더욱 잘 반영한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선다. 혹은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서 그 생각을 사람들에게 설득한다. 이것이 이른바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의 작동 원리이자 정치인의 존재 이유다.

따라서 정치인이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 인기를 모아서 기반을 다지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만약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철학’을 충실히 실천하여 포퓰리스트라고 불린다면, 이는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긍심을 느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는 정치 철학’인 포퓰리즘은 언제나 옳은가. 그렇지는 않다. 일부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자신의 인기와 정치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대중의 뜻을 반영하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정책이 나중에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잘못 실현된 포퓰리즘이 사회 불안 심지어는 내전이나 국가 간 전쟁으로 이어진 예 또한 역사책에 셀 수 없이 여러 번 등장한다. 포퓰리즘은 적절히 활용되면 보통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되면 사회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포퓰리즘에 충실한 정치인들, 즉 포퓰리스트들의 위험성을 돌아보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 출신의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Jan-Werner Mueller는 저서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원제 : What Is Populism | 얀 베르너 뮐러 지음 |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7년 05월 10일 출간>에서 포퓰리즘이 언제 민주주의 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누가_포퓰리스트인가첫째, 포퓰리스트가 자신들의 지지자만 ‘진정한 국민’이라고 주장할 때이다. 이 말에는 자신들만 도덕적으로 정당한 지도자이고 진정한 국민의 대표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반대편의 경쟁자는 국가를 위협하는 특정한 외부 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암시도 동시에 포함한다.

둘째, 포퓰리스트가 집권하여 비판적인 언론과 시민사회를 탄압할 때이다. 집권하기 전에는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집권한 후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누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다른 목소리를 억누름으로써 포퓰리스트는 더욱 단일하면서도 쉽게 통제 가능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셋째, 포퓰리스트가 선거에 질 때이다. 이때 포퓰리스트는 상대편이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 정권을 훔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여전히 존재하며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새롭게 집권한 정권에 대한 저항에 동참하라고 선동한다. 포퓰리스트들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새로운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어떤 정치적 철학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포퓰리스트가 스스로 ‘나만 진정한 국민을 대표한다’라고 주장한다거나 지지자들을 향해 ‘당신들만 진정한 국민이다’라고 주장할 때 민주주의 사회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이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자신과 정치적 입지가 다른 이들을 무조건 ‘종북’ 또는 ‘친일’로 몰아붙이는 이들은 서로 지향하는 방향만 반대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다. 이처럼 사람들의 적개심을 자극하고 분쟁을 도모하는 악질적인 포퓰리스트는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철학’을 따르는 본래 의미의 포퓰리스트와 다른 이들이고 따라서 당연히 이 둘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세포가 있다. 그 세포들 가운데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종양이라고 한다. 종양은 크게 양성과 악성으로 나뉜다. 양성종양은 비교적 성장 속도가 느리고 발생 부위에 국한되어 다른 조직으로 침투하거나 전파되지 않는다. 반면에 악성종양은 성장 속도가 빠르며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거나 혈관 등을 통하여 몸 전체로 퍼질 수 있다. 악성종양은 다른 말로 암이라고 부른다.

나는 포퓰리스트도 양성 포퓰리스트와 악성 포퓰리스트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 포퓰리스트는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복지를 증진하고 기회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 초점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반면에 악성 포퓰리스트는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주장을 앞세운다. 생산적인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반대 진영의 사람들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고 비난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고 한다. 마치 주변 조직을 침범하는 악성 종양과 그 생태가 비슷하다.

악성종양이 암세포를 온몸으로 퍼뜨리는 것처럼 악성 포퓰리스트는 그들의 자만심과 적개심을 그들 지지자들에서 시작하여 사회 곳곳으로 퍼뜨린다. 암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처럼 악성 포퓰리스트들도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누가 포퓰리스트이고 누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모든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다. 단지 누가 양성이고 누가 악성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누가 사람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누가 편협한 적개심에 귀를 기울이는지 중요할 뿐이다.

글을 다 읽고 나면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정치 기사들을 둘러보라. 당신이 적개심을 갖도록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있는가. 당신만 진정한 국민이며 당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알고 보면 어떤 음흉한 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속삭이는가. 그렇다면 그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당신을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악성 포퓰리스트들이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에 대한 15개의 생각

    1. 편을 가르고 반감을 조장하여 이를 이용하려는 자들,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1. 마음에 몇 번을 되뇌입니다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자신의 도구로 삼으려는 자들~~~
    감사합니다.

    1. 우리는 정치인에 관한 한 좀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인이 존재하는 것이지,
      정치인을 위해서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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