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호텔

신의 호텔요즘에는 결혼하는 것도 힘들지만,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의 자녀가 하나 혹은 둘인 경우가 많다. 자녀가 적다보니 부모들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한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학원에 다닌다. 말문이 트이기 전부터 다니는 영어 유치원부터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듣도 보도 못한 학원까지, 그 종류가 상상을 초월한다. 차라리 그런 학원을 만드는 게 창의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문득 나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학교 수업에 앞서기 위해 선행학습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종류의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다. 영어도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정규교육 과정으로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대신 나는 조금 다른 선행학습을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에서도 도심에서 좀 벗어난 한적한 곳이었다. 10분 거리 안에 논밭이 있고, 겨울에는 그곳에 얼음을 얼려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다. 얼음의 투명한 정도만 보고도 그 위를 지나가면 깨질지 아닐지 알 수 있었다.

논밭 뿐이 아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게 또 있었다. 무슨 무슨 재활원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주말이 되면 부모님 손에 이끌려 그곳에 갔다. 특별히 뭔가 하기 위해서 간게 아니다. 그저 그곳의 아이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숨바꼭질을 했다. 말 그대로 같이 어울려 놀았다.

내가 거기서 배운 것이 무엇이었을까. ‘불쌍한 이들에게 베풀라’는 교훈이었을까. 아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도 존중받을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말고는 그것에 비하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컨대, 나의 선행학습은 삶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내 아이를 보며, 내가 했던 선행학습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유다.

아무튼, 그 시절 이후로 꽤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길을 밟고 어느덧 나는 공공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서 꺼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다.

결코 시설이 최첨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 나름의 문화와 분위기가 있다. 이곳에서 나는 어릴적 재활원의 아이들의 눈에서 보았던 두려움과 비슷한 것을 환자들의 눈에서도 발견한다.

재활원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일까. 아프거나 죽는 것일까. 아니다. 바로 남들로부터 버려지는 것이다.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아이들이었기에, 어린 나이었지만 버림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던듯 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병원의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서 버림받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 자체보다도 버림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환자들의 앞에 설 때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그런 두려움을 나는 읽는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사실에 잔인하리만치 무심하다. 심지어는 그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의사들도 그렇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병원이, 우리의 의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첫째로, 간접성이다.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꼼꼼하게 신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환자를 대하는 자세의 기본이다. 하지만 어떤 의사들은 직접 환자를 보고 아픈데를 만져보기 보다는, 기계에 그들의 일을 떠넘긴다. 기본을 소홀히 한 탓에 CT와 MRI 같은 비싼 검사를 하고서도 병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둘째로, 안전성이다.

검사와 수술을 받기 전에 서명해야 하는 동의서, 의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때때로 자기방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환자가 결정했으니 우리는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안전 장치들이다. 환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의사들의 방어심리를 읽을 수 있고, 환자로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셋째로, 효율성이다.

수익성이 좋지 않은 공공병원은 문을 닫아버린다. 마땅히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고, 정치인들은 지방 재정이 좋아졌다고 자랑한다. 그 와중에 갈곳을 잃은 이들은 드러나지 않게 버림받는다.

내과 의사이자 역사학자 빅토리아 스위트Victoria Sweet는 책 <신의 호텔 원제 : God’s hotel | 빅토리아 스위트 지음 |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03월 12일 출간>에서 이런 의료 현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 위치한 공공병원 라구나 혼다Laguna Honda Hospital and Rehabilitation Center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의료계에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신의 호텔’이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리는 라구나 혼다 병원은 노숙자, 극빈자 등 사회소외계층을 돌본다는 점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다. 저자는 이 병원이 의료민영화의 파도 앞에서 겪는 간접성, 안전성, 효율성의 도전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서 의료제도와 의학의 문제에서 가장 중심에 둬야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년에 걸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가 깨달은 것은 세 가지다.

신의_호텔첫째, 환자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도, 의사가 해줄 수 있는게 여전히 남아 있다. 하다못해 의사가 직접 베개를 바로 세워주거나 이불을 덮어주는 것도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의사들이 놓치고 있던 것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의사가 그렇게 하찮은 일을 하나’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일들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들이었다.

둘째, 환자들이 자신은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며, 실제로 돌봄을 받고 있다는 안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환자를 이끄는 게 환자 입장에서 편할까, 아니면 그냥 묵묵히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게 환자 입장에서 편할까.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셋째, 공공병원 폐쇄는 서류상으로만 보면 대단히 효율적이고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과 서류상의 숫자는 다름을 알게 되었다.

서류상에서는 낭비라고 여겨지던 예산들이 사라지면, 실제 세상의 병원과 환자들은 위기를 맞는다. 엑셀 스프레드시트에서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존재들이 실제 세상의 병원을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열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한다. 의사들도 요즘 같은 걱정이다. 그런데 환자들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걱정은 아닐까.

왜냐하면 환자들이 인공지능에게서 바라는 것과 의사에게서 바라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이것은 비단 의사와 환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당신도 누군가의 기대 덕분에 이 사회에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기대를, 사장은 직원의 기대를 받으며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기대의 뒷편에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교사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학생의 마음, 사장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직원의 마음, 의사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는 환자의 마음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다.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고 ‘같은 사람에게서 버림받지 않게 하는 것’이 당신의 책무이다. 이것은 그 어떤 인공지능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할이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환자들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를 의사인 내가 쥐고 있으니 말이다.


“신의 호텔”에 대한 14개의 생각

  1. 서로 기대고 사는것이 인간의 본질
    본질로 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갑질의세상
    본성을 회복하는 길이 없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행복해진다는걸
    회복할수 없을까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걸 회복할수 없을까요 ^^
    실천하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1. 결국은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 속에서 생존을 추구하도록 하는 교육은 배타적인 인간 군상만을 붕어빵처럼 찍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계속 높은 곳만 바라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니 불만만 쌓일 것입니다. 훗날 이들이 자라나서 이 사회는 물론 부모에게 조차 책임의식을 느낄지 의문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들이 자신보다 불우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게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이타적인 책임감도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외된 이들이 교육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그 나름대로의 존엄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이런글 쓰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양심적인 사람이 오히려 배척 당하는
    그리고
    돈이면 모든게 해결되는 사회가
    되어버려서 소외받는 사람은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하고
    흉악범들은 늘어만가고 있어요
    더구나 자식도 잘 키우기 보다는
    방치하던가 죽이는 경우도
    종종 뉴스로 접하게 되네요~

    저도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을
    줄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날이 오겠죠~~^^

    1. 우리들 각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알고 있는대로 실천하지 못할 뿐이지요.
      다 같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항상 좋은 생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3.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것… 항상 잃어버리면서 살게 되는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항상 잘 읽고 있어요!

    1.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을 뿐 그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란 점을 생각해봅니다.
      항상 귀한 시간 내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4. 글 잘읽었습니다.

    두려움 뒤편에는 또다른 하나의 희망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얼~씨구 좋~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5. 우리의 삶!
    우리들의 두려움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
    우리가 살펴봐야 할 내용들이라 생각해봅니다
    항상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1.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서로 살피고 기꺼이 나누어 지는 사회. 그게 바로 공존이 실현되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귀한 의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6. 어떻게 늙어가야할까를 고민하면서, 고등학생&초5학년 남자아들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합니다.
    따스한 글 고맙습니다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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