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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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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나라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요즘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어느 한 군데 머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것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나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오래 전 아이들 일상의 중심이었던 학교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많이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해 점수와 경력을 관리해야 하는 단체 시설로 변질되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잠을 자는 곳이기도 하다.

기나긴 고생 끝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젊은이들의 직업 안정성은 해가 갈수록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이전 세대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직장의 든든함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무너지는 공교육과 낮은 직업 안정성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누가 아이들을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비싼 사교육의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가. 누가 젊은이들을 안정적인 직장에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하는가. 왜 이전 세대는 당연하게 누린 것을 이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꿈으로 만들었는가. 무엇이 이들의 소박한 희망을 망가뜨리는가.

암기 위주의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교육이 문제일까. 낮은 급여와 고된 업무 강도가 진짜 이유일까. 오래도록 이 의문에 답하고 싶었다. 이 순간 어디선가 지쳐서 주저앉을 이들의 눈물을 멀리서나마 닦아주고 싶었다. 결국 내가 찾아낸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곳에 존경할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진정한 ‘어른’의 역할을 할 기성세대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 결과, 아이들은 대학이나 잘 가겠다는 생각에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 끝에 마침내 사회에 나오고 어렵사리 취업을 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를 남긴 채 또 다른 직장을 향해서 정처없이 떠난다.

최근의 한 다국적 컨설팅 회사가 시행한 ‘사회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89%가 한국의 시스템을 믿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정부, 기업, 언론, NGO 등 4개 사회주체에 대한 평균 신뢰도는 38%로 나타났다. 전 세계 평균은 47%였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28개국 중 23위로, 불신 국가로 분류되었다.

사회 불신이 학교, 학원, 집에 오가길 무한 반복하는 아이들 때문이겠는가. 아니면 학창시절 내내 스펙쌓기에 열중하다가 아르바이트와 불안정한 직장으로 내몰리는 젊은이들 때문이겠는가. 미리 이 사회에 자리를 잡고 있던 기성세대에게 사회 불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합리적인 결론이 아닐까.

오늘 신뢰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주제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바로 창의성이다. 언뜻 보면 서로 별 상관이 없을 듯한 신뢰와 창의성은, 사실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오늘 글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당신도 그게 무슨 말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곰곰이 생각해보자.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내는 능력이다. 기존에 없던 길을 새로 찾아내는 힘이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시행착오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으니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입시교육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 초중고 12년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내신을 관리하고 수상 실적도 쌓아야 한다. 수능날 한 문제를 더 맞고 틀리는 것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조금만 벗어나거나 실수해서는 안된다.

그 결과, 많은 독서를 하고 친구를 사귀어야 할 학창시절 동안, 아이들은 학원에서 문제 패턴을 반복하고 외우는 데 허비하고 있다. 한창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초등학생들마저 학원과 독서실에 갇혀 자정이 넘어서까지 중고생 수학 문제집을 풀고, 대학수업 내용에나 나올 법한 고급 단어까지 달달 외워 토플 점수를 따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엄마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다. 오로지 정해진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취업 경쟁에 이르면 또 어떠한가. 남들과 비교해서 뒤처짐이 없는 스펙을 쌓아야 그나마 원하는 일자리에 지원이라도 해볼 수 있다. 자기 소개서와 면접에서는 당신이 창의적인 인간이란 점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위선으로 채워진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살얼음판은 이어진다. 여기서도 실수하면 안된다. 윗사람 심기를 건드려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서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점으로 획기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기존 방식 만을 따르는 안정 지향형 인간이 넘쳐나게 된다.

요컨대,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창의성을 외치는 것은 단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우라는 것과 같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그저 공허한 망상일 뿐이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창의성’을 키우라고 하는 기성세대들의 말에 당신이 공감할 수 없는 이유다. 처음부터 줄곧 옳은 답만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창의성은 자라날 수 없다.

『인지니어스 원제 : inGenius: A Crash Course on Creativity | 티나 실리그 지음 | 김소희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01월 10일 출간』에서 티나 실리그Tina Seelig는 우리가 잃어버린 창의성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는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교수로, 흔히 디스쿨d.school: Institute of Design at Stanford이라고 불리는 창의성 교육과정을 이끌고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디스쿨 수료자라면 특별 채용해서라도 데려가려고 할 만큼, 디스쿨의 창의성 교육과정은 널리 정평이 나있다.

저자에 따르면 창의성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해있다. 다만 그것을 꺼내쓰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인지니어스』의 원제 inGenius는 우리들 안에 원래부터 있던 창의성 또는 천재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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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안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일까. 바로 ‘성공이 가져올 보상’이다.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시도하다가도 성공이 가져올 보상에 대한 기대가 그 발목을 잡는다.

우리 사회는 이제껏 성공하면 당근을 주고, 실패하면 채찍을 가했다. 실패를 낭비로만 바라보았다. 부모, 교사, 사장 등 누군가를 앞에서 이끌어야 할 사람들 모두가 그런 관점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로 전염되었다.

하지만, 정말 실패는 낭비일 뿐일까. 아니다. 실패는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패는 틀린 길을 찾아낸 소중한 발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를 기준으로 보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창의력을 해치는 주범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위해서라면 보상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인가.

여기에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있다. ‘도전’ 자체가 보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도전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것’이 ‘도전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성공보다 도전이 더 높이 평가받는 사회에서 비로소 창의성이 꽃필 수 있다. 진정한 배움과 혁신은 실패에서 비롯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해법이 등장한다. 그 결과 같은 방식만 고집하던 때보다 전체적으로 더 발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도전 자체에 보상’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타인을 도구로 보는 기성세대의 ‘이기심’,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낮춰보고 미심쩍어하는 ‘불신’이다. 그러므로 도전 자체에 보상하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리 기성세대에게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진다.

첫 번째, 사람을 도구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행동을 성공과 실패로 나눈 후 성공한 경우에만 보상을 하는 사고방식은, 사실 기성세대 본인들이 얻게 될 이익을 먼저 추구한 결과다.

아이가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부모들 사이에 자존심이 사는 것. 부하 직원이 사고치지 않고 고분고분 일한 결과, 책임자인 본인이 사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최저임금 혹은 그보다 모자라는 돈을 주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기성세대 본인이 이끌어야 할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성취나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기성세대의 가시 돋친 이기심에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멀지 않은 과거에 기성세대 스스로가 겪었고 느꼈던 기억을 되살리면 된다. 자신이 대우받고 싶었던 대로 대우해 주면 된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두 번째, 각자 나름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신뢰한다.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사회의 근간에는 신뢰가 있다. 무엇에 대한 신뢰인가. 도전하여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신뢰이다.

오늘 글을 시작하면서 던졌던 신뢰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앞에서 기성세대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기성세대 스스로가 조장한 불신 때문임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나는 반대로 기성세대의 신뢰가 창의성이 넘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다. ‘기성세대가 먼저 신뢰를 보여주느냐’ 아니면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먼저 기성세대를 믿느냐’의 문제다.

각자가 놓여있는 입장에 따라, 그리고 살아온 경험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다. 이제는 젊은이보다는 기성세대로 점점 더 자주 불리기 시작하는 내가 생각하는 답은 무엇일까. 기성세대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기성세대가 정말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도구로 여기는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공보다는 도전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마치 세발 자전거를 타던 어린 아이가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탈 때 넘어질까봐 뒤에서 손으로 잡아주는, 그러면서도 점차 손을 놓아서 혼자 탈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진짜 ‘어른’답게 말이다.

“인지니어스”의 6개의 댓글

  1. 기존에 가지고 있었고 생각하고 있었던 관점 이외에 ‘신뢰’와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현 사회의 문제이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이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네요…
    ‘도전’과 ‘신뢰’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적은 인원이 실천해 나간다면 온 사회가 변화할수 있을거라 희망합니다.

  2. 실패 할 기회, 경험을 주는 어른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어요~
    단 한번의 실패로 인생이 끝나지 않는데 말이죠

  3. 멋지네요!
    사회탓 제도탓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가정 직장에서 신뢰할 만한 어른이 되고 있나
    돌아봐야겠어요
    자주 들를게요!! 건강하세요!!

  4. 신뢰와 창의성! 성공보다는 도전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 시스템!
    성장보다는 성숙된 사회를 만들겠다는 어른들의 자세! 좋은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읽었습니다

  5. 감사합니다. 글을 보면서 새삼 인간의 존엄성만 지켜준다면 보다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축하합니다.사랑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축복평화가 함께 하는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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