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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의 탄생

상류의 탄생

상류층이란 과연 누구인가. 돈이 많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일까. 혹은 저명한 학자들일까. 이에 관한 한 내 생각은 명확하다. 적어도 나는 돈, 권력, 지식을 지녔다는 것이 곧 상류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당신도 상류층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서 정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돈이 많고 권력을 갖고 학문적 권위가 있다고 상류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나에게 동의하리라 믿는다.

오늘 글은 누가 진정한 상류층인지를 알기 위한 짧은 여정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돈과 권력 그리고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을 살펴보면서 시작하자.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나와 당신이 이들을 상류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주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는 피고용인이나 거래처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계약한 것 이상을 요구하는 일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은 얼마나 더할지 우려스럽다.

한편, 정치 권력자들은 어떤가. 가장 위에서는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서 호통한다. 그 아래에서는 서로가 반대편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유권자인 국민들을 위한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을 도와 공부하겠다고 들어온 대학원생을 학대하고 추행하는 교수들은 또 어떤가. 이런 이야기는 몇 주마다 한 번씩 뉴스에 올라올 정도로 흔한 것이 되어서, 이제는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다.

어찌 이런 이들을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들은 그저 ‘상류층인 척 하는 속물’ 줄여서 그냥 ‘속물’일 뿐이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놓고 흥정하는 장사꾼은 속물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남의 것을 훔치지는 않는다. 작은 흥정 하나에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오히려, 온갖 권리는 다 누리면서 정작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심한 일부 기업주들과 정치 권력자들 그리고 대학 교수들, 그들이 바로 속물이다. 그들은 돈과 권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의 품격은 동네 골목의 건달 수준이다.

양심이 있다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지탱하고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은 커녕, 자신들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무심하다. 간간히 언론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이들의 갑질은 우연이 아니다. 속물들이 갖고 있는 진심의 반영이다.

속물들이 이 사회의 최정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 편익과 우위를 독점한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독점한 돈, 권력 또는 지식을 내세우면서 오로지 대접받을 생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남에게 무엇을 해줄지보다 자신보다 힘없는 이들을 쥐어짜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경멸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반항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에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실망한 대다수 소시민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누구를 존경하고 존경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개개인의 양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은 빼앗길지 몰라도 양심 만큼은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상류의_탄생

그렇다면 진정한 상류층, 달리 말해서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평범한 소시민들로 하여금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 그대로 ‘사회 지도층’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한 책이 있어서 소개한다.

『상류의 탄생 김명훈 지음 | 비아북 | 2016년 06월 03일 출간』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진정한 상류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김명훈이 40년 가까이 뉴욕에서 살며 경험한 서구 사회의 상류층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면 다음과 같다.

‘1부, 누가 상류인가?’는 상류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다. 미국에서 상류층이란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승자’라기 보다는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이다. 반면에,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문화를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류층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배웠다.

‘2부, 책임을 다한다는 말’에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는 미국의 오래된 상류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위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기 대통령들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솔선수범하는 ‘책임 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우리 사회에서 실종된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3부, 다르게 사는 방법’에서는 ‘내면의 계급’을 소개한다. 저자가 말하는 ‘내면적 계급’이란 ‘품격’과 유사한 개념이다. 이는 부모의 재산과 학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삶을 바라보는 내면의 자세에 따라 형성되는 변화 가능한 것이다. 미국을 넘어서 스웨덴, 핀란드, 독일, 덴마크의 사례를 두루 살펴보며, 이들 서구 선진국은 고결한 책임 의식을 지닌 이들이 사회의 지도층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제 다시,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과연 누가 진정한 상류층인가. 다시 말해, 상류층의 조건은 무엇인가. 책 내용에 나의 생각을 더하여 3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해야 한다.

상대의 곤란함에 대해서 무심하지 않는 마음이 핵심이다. 상대에게 무심하지 않는 것은 선진 서구 사회의 상류층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반면에 속물들은 남에게 무심하다. 남이 고통받거나 말거나 관심없다. 정치 권력을 쥘 수 있고, 사업만 잘 굴러갈 수 있으며, 자기 이름이 실린 논문만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리면 된다. 이런 무심함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갑질’이다.

속물들에게 덴마크의 쓰레기통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덴마크는 최근 공공장소의 쓰레기통의 디자인을 바꾸었다고 한다. 쓰레기 투입구 앞에 선반을 설치하여 빈 병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올려둘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빈 병을 수집하여 생활비를 마련하는 저소득층이 허리를 굽혀서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빈 병을 모으며 다녀야 하는 이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쓰레기통을 누가 구상했는지 몰라도 진정한 상류층의 소양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의 척도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남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암울할 뿐이다. 고위 공직자의 군면제 비율이 높은 것을 비롯하여, 대기업의 탈세 등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런 이들을 진정한 상류층으로 바라볼 국민은 없을 것이다.

반면, 서구 사회에서 가진 이들이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사회 계약social contract‘이라는 불문율로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왕세자가 헬기를 몰고 전투에 참가하며, 실제로 왕족이 전장에서 죽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부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의 상당수를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

셋째, 이런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상류층의 조건 가운데 마지막은 과시하지 않는 자세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앞서 말한 두 가지는 결국 남을 위한 무언가로 정리할 수 있다.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남을 위한 ‘생각’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남을 위한 ‘행동’이다.

이 두 가지에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의와 선행을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는 진정성이 없다. 남을 위한 ‘생각’이고 ‘행동’이라고 하면서 결국은 나의 이익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내가 생각하는 상류층 또는 ‘어른다운 어른’의 조건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남을 위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진정성 있는 자세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타인에 대해서 무심하지 않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이다.

마무리하며, 우리 시대의 평범한 소시민들이 허울만 남은 우리나라 상류층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짜들을 모방하느라 허비하기에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또한 자신이 이 사회의 상류층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 글을 시작하며 던진 ‘상류층이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과연 ‘상류층’으로 불려도 창피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무쪼록 진정한 상류층이란 누구인지 관심을 일깨우는 데 오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상류의 탄생”의 9개의 댓글

  1. 아는 분이 요즘처럼 시끄러울 때 꼭 필요한 책이라며 두 권의 책을 소개하여 읽었습니다. 상류의 탄생과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입니다. 노블리쥬 오블리제를 주제로 한 것은 비슷하나 관점은 또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오늘 우연히 서재에 들러 소중한 체험을 하고 갑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감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갑니다.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돈에 의해 생겨난 계급이 부작용을 낳는 요즘 입니다
    자리에 걸맞는 도덕의식과 가치관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참 걱정입니다

  3. 성장의 사고틀에서 …성숙의 사고의 틀로 바꾸어지는 패러다임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항상 좋은글과 함께 나의 마음도 좋아집니다 …. 감사드립니다

    1.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성숙은 개인이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자가 성숙된 상류층이면
      우리 사회가 아름답겠죠~위에서 아래로
      부탄이라는 나라가 다른 어느 선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입니다

  4.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노블리스 유블리쥬정신을 우리 나라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걸까요?… 높아진 경제수준 만큼 의식수준도 함께 따라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요즘입니다.

  5. 자신을 드려내지 않는것, 소위 말해서 오른손이 하는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자신을 드려내기 위해 남을 돕는것 보다는 따뜻한 사회를 위해 묵묵히 남을 돕는 그런 좋은 사람들이 진정 대한민국이 상류층임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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