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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기원 전 5세기 그리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시인 시모니데스Σιμωνίδης는 대연회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손수 지은 시를 읊고 휴식을 취하던 중,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연회장 밖으로 향했다.

시모니데스가 출구를 나선 그 때,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연회장이 폭삭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붕괴 사고로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시모니데스는 방금 자신이 빠져나온 곳을 돌아보며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뒤이어 구조대가 도착해서 건물 잔해를 걷어내고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몰된 이들 가운데는 사망자들도 많았고, 안타깝게도 시신 가운데 상당수가 건물 더미에 훼손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실종자의 가족들은 황망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시모니데스의 머릿속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모니데스는 우선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조금 전 자신이 서 있었던 대연회장를 머릿속으로 복구하기 시작했다. 마치 동영상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무너진 대리석 기둥이 다시 제자리로 세워지고 부서진 나무 의자도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시모니데스의 머릿속에서 대연회장이 멀쩡한 모습 그대로 재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곳곳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그대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시모니데스는 머릿속에서 복구된 대연회장을 바탕으로, 시신이라도 찾고 싶어하는 유족들을 생전에 희생자들이 있던 장소로 인도해 주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바로 이때가 고대의 기억술이 탄생한 순간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원제 : Moonwalking with Einstein | 조슈아 포어 지음 | 류현 옮김 | 갤리온 | 2016년 04월 21일 출간』에 소개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기억술, 즉 당신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본질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저자 조슈아 포어Joshua Foer는 원래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다. 이야기는 그가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이라고 하는 미국의 기억력 경연 대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수백 자리의 무작위 숫자를 순식간에 외워버리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참가자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참가자들도 자신들이 천재는 아니며, 기억 훈련을 통해서 그러한 기억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호기심이 생겨서 자신도 그런 훈련을 받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년 동안의 기억 훈련을 거쳐 결국 전미 메모리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된다.

저자가 기억 훈련을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재밌다. 저자가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앞서 소개한 시모니데스가 대연회장에서 사람들의 위치를 떠올린 방법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른바 ‘기억의 궁전Memory Palace‘이라고 불리는 기억술이다.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은 머릿속에서 어떤 장소를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름처럼 꼭 궁전이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익숙한 장소, 이를테면 예전에 살던 집이나 학교 아니면 집 주변의 산책로 같은 곳이 좋다.

머릿속에서 공간감이 있는 장소를 떠올렸으면, 그 장소를 거닐 때 지나는 위치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놓아두는 상상을 한다. 이때 요령은 단순히 그 물건이 놓여있는 것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의인화하거나 상징화하여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면 인상적일수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려운데, 예를 들면 한번에 와 닿을 것이다.

오늘 장을 보러 간다고 해보자. 당신이 꼭 사야 할 것은 ‘칫솔, 건전지, 우유, 휴지, 두부’이다. 자. 지금부터 이것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실제로 당신의 ‘기억의 궁전’을 만들어보자.

우선 활용할 머릿속의 공간 즉 ‘기억의 궁전’으로 삼을 곳을 정해야 한다. 당신에게 익숙한 집 하나를 떠올려보자.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고 예전에 살던 집도 괜찮다. 다만 그 집의 구조와 세부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머릿속에서 떠올린 집에 들어가면서 당신이 살 물건을 하나씩 원하는 위치에 놓아보자. 단, 이때 기발한 상상력을 더하는 것을 잊지 말자.

예를 들면 이런 것은 어떨까. 가장 먼저 현관에 들어서니 사람 크기의 칫솔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당신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를 받고 거실로 들어서니 건전지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섰더니 욕조에는 우유가 가득 차서 출렁이고 있다. 그 다음 당신은 침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침실 문에 휴지로 된 결승선 테이프가 있어서 이를 끊고 지나간다. 침실에 도착하니 두부 매트리스로 된 침대가 출렁이며 놓여있다.

한편으로는 어이없고 심지어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상상이다. 하지만 저런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면 사야 할 물건을 빠뜨릴래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궁전’으로 불리는 기억술의 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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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책에서는 몇 가지 방법을 더 소개하고 있지만, 당신이 기억술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볍게 읽고 넘어가도 좋다고 본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기억의 궁전’에서 파생된 응용법이다. 다만, ‘기억의 궁전’ 만큼은 잘 숙지해두면 두고두고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기억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단지 재미를 위한 것일까. 또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편리함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게가 있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술 또는 기억 훈련이 발달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지식의 보존을 오로지 기억에 의존했다. 글과 책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자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런 수단이 없던 오랜 세월 동안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기억력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차 기억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나타났다. 문자가 발명되어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외부의 수단에 정보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인쇄술의 발달은 문자로 표현된 지식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말하자면 ‘기억’을 넘어선 ‘기록’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기록의 도구는 의식적인 노력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발전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바로 SNS와 클라우드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기록 즉 ‘기억을 외부화’하는 가장 최신 형태의 기술이다.

기억을 외부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해진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기억력’은 양가감정兩價感情을 불러 일으킨다. 양가감정이란 한 대상에 대해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우선, 기억력을 재능으로 보는 긍정적 감정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갖게 되었지만, 일상생활에서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메모장, 스마트폰 등을 활용할수록 오히려 기억력이 퇴보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디지털 치매라는 말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년 365일 가운데 40일을 무언가 잊어버린 일을 만회하기 위해 사용한다. 반면에, 외워야 할 것을 빼 먹지 않고 기억하고, 한번 본 사람 이름을 잊지 않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이때 기억력은 일종의 재능이자 능력이다.

반면, 기억력을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보는 부정적 감정도 있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암기 위주의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있다. 기억력을 깎아내리고 창의력을 더 값지게 여긴다.

어차피 인간의 기억력은 오류도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잊어버리는 것들도 생기기 때문에, 차라리 기계의 정확하고 변치 않는 기록 능력에 더 큰 신뢰를 갖기도 한다.

종합하면, 기계가 우위를 가지는 기억력 대신 조금 더 인간적인 장점을 내세울 수 있는 창의력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자 한다.

당신은 기억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머릿속 말고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넘치는 오늘날에 기억력을 단련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무언가를 애써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창의력과 기억력을 상반된 것이라고 여긴다. 창의력은 인간적이고 격이 높은 것, 반면에 기억력은 기계로 대체할 수 있고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력과 창의력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기억력은 창의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창의적인 작업인 글쓰기를 두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시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글자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글자를 안다는 것도 결국은 글자를 기억한다는 말이다. 글자를 기억하지 못하면 창의적인 소설이나 시도 쓸 수 없다.

또 다른 예로 요리를 생각할 수 있다. 요리도 글쓰기 못지않게 창의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재료 각각의 맛과 특성을 확실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도 결국은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종이에 기록하고 클라우드에 업로드 하는 것은 기억을 보조하는 것일 뿐 그것 자체는 기억이 아니며 따라서 앎도 아니다. 기억의 형태로 우리 머릿속에 녹아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억력에 새삼 관심이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의 9개의 댓글

  1.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기억력과 창의력이 둘 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기억력과 창의력 모두 서로 상호 관계에 있으니까 둘 다 좋다면 하나만 좋은 것보다 훨씬 좋을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중국의예술은 처음에 훌륭한 작품을 모방하는것부터 배운다고 어느Tv 프로를 보고 깜짝노란적이 있다. 기억의 저편에 무의식이란 놈도 결국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걸 자기한것 아닐까요! 모방, 기억, 삶 배움도 다따지고들자면 결국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무의식의에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인걸 같아요 무의식을 깨우기 위해선 끊임없는 위인들의 행적과 작품들을 보고 배우고 행동하려는 우리의 건설적인 모방인거죠 그래서 한개인개인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때 자기화시킨거면서 또 다른 창조이고 개혁이되며 한사람의 역사가 모여 인류의 문화와 사회를 탈바꿈하는 거 아닐까요! 한세대를 이끈다는건 결국 과거 모방 학습된 기억이 없이는 현실도 미래도 없다는걸 또 한번느낍니다. ^^

  3.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데요
    “공부를 잘하는것은 기억력이 좋은것이다”
    라고요.
    사람의 머리가 기억한다는 것은 오류가
    있을수도 있고 한계가 있으니
    저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좋은글 잘 읽어었어요
    감사합니다…^^

  4. 스마트 시대
    폰을 옆에 두고 공부 책을 보질 않는다
    왜 검색하면 되니까
    사실 참 나쁜 생각이지

    사막에 그랜드피아노 나
    동전 없는 자판기를 두고 있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책을 봐야지 느껴야지
    그래야 오래 기억에 남는
    내것이 되지

  5.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자꾸만 떨어져 치매가 오면 어쩌나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리스의 실제로 있었던 시인 시모니데스 이야기에서부터 ‘1년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이 책을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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