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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에 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플라톤Πλάτων의 스승이기도 한 소크라테스는 서양 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철학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사실 글을 쓰거나 읽는 행위 자체를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가 글쓰기와 독서를 반대한 이유는 이러한 활동이 우리의 사고를 외부의 도구에 의존하게 하기 때문에 깊은 사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바람직한 지적 활동이란 말을 통해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Socratic method’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 같은 교육 방침 때문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대놓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글로 기록할 수 없었고, 스승이 보지 않는 곳에서 배운 것을 몰래 글로 남겼다고 한다. 그 결과 오늘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플라톤이 남긴 책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대상이 ‘종이책 대 전자책’으로 바뀌었다는 점 뿐이다. 종이책이 더 좋다는 사람은 그들대로, 전자책이 더 좋다는 사람도 또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자신들이 선택을 옹호한다.

나에게 견해를 묻는다면, 전자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쪽이다. 뒤에서 더 말하겠지만, 몇 가지 고려 사항만 더 보완한다면 앞으로 전자책은 틀림없이 독서 매체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만 추려보자. 우선 전자책은 기기 하나에 수많은 책을 넣어 다닐 수 있다. 그리고 굳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책을 보고 싶을 때 바로 구입하거나 대여해서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전자책은 종이책이 따라올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장점을 가진다.

사실 전자책과 관련해서, 나는 얼리어답터early adapter에 속한다. 얼리어답터란 새로운 기술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류의 사람을 일컫는다.

나의 이야기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우리나라에 전자책이 보편화되기 전이다. 어느날 나는 서재에 꼽힌 책과 아이패드iPad를 번갈아보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책들을 pdf 파일로 만들어서 내 아이패드에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한다면 저 책들을 다 갖고 다니다가 원하는 것을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을텐데.’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보내면 스캔하여 pdf 파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 무렵은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던 때라서, 그런 기기로 책을 읽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서비스는 저작권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었다. 스캔한 파일을 원본 책 주인만 본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원칙대로만 돌아가는가. 복제가 가능한 파일이 생성되기 시작하면 인터넷에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는 저작권자와 출판사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 있고, 방치할 경우 작가들의 창작 의지를 꺾는 등 심각한 문제로 불거질 소지가 있다. 그래서 책 스캔 서비스는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출판업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서비스 중지 압력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런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당시에 이런 책 스캔 업체들의 페이지 당 스캔 단가는 30원 정도였다. 몇권만 맛보기 정도로 스캔하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책들을 모두 스캔해서 아이패드로 가지고 다닐 작정이었다. 길게 보았을 때 장당 30원의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이참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후지쯔Fujitsu사에서 나온 Scansnap S1500이라는 양면 고속 스캐너를 구입하고, 책의 제본된 부분인 책등을 깔끔하게 자르는데 필요한 제단기도 구입했다. 나머지 필요한 것들은 가급적 집에 있던 물건들을 활용했다.

책표지를 다리미로 가열하면 제본풀이 녹아서 끈적한 상태가 된다. 그 상태에서 책표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책의 속지를 제단기로 옮긴다. 제단기로 책등 끝에서 5 mm 정도 안쪽으로 내리치면 책이 낱장으로 분리된다. 이것을 양면 고속 스캐너의 급지 장치에 가지런히 넣어두면 마치 프린터기에 종이가 들어가듯 한 장씩 빨려들어가면서 스캔이 진행된다. 잠시 후 스캐너와 연결된 컴퓨터에 pdf 파일로 변환된 책이 저장된다. 이렇게 해서 300 페이지 정도의 책 한 권을 pdf 파일로 만드는데 약 5분 정도가 소요된다.

책등이 잘려진 책을 버리지 않고 복구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제본풀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제본업체에서 주로 구입하기 때문에 대용량으로만 판매했다. 나는 그 정도로 많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대체재를 찾았다. 더 조사해본 결과 제본풀과 목공풀의 성분이 초산비닐PVA이라는 동일한 성분이었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소용량 목공풀을 구입하여 책표지의 책등이 닿는 부분에 바르고 분리된 책을 붙였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원래 책의 상태와 유사하게 복구됐다.

이런 식으로 내가 가진 책 가운데 수백 권을 pdf로 변환했다. 이 책들은 지금도 나의 구글 드라이브Google drive에 디지털 서재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원할 때에는 언제든 내려받아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자구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볼만한 책이 대부분 종이책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자책이라는 좋은 독서 매체가 이미 세상에 나왔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이를 아직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한다. 나는 이 점이 항상 안타까웠다. 언젠가 완벽한 전자책 환경이 구축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세계 최대의 서점인 아마존Amazon.com은 전자책 킨들Kindle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전자책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킨들 개발 프로젝트의 중심에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원제 : Burning the page | 제이슨 머코스키 지음 | 김유미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06월 20일 출간』의 저자 제이슨 머코스키Jason Merkoski가 있다. 전자책 시대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한 사람으로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썼을지 무척 궁금했다.

저자는 구텐베르크Gutenberg 혁명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컨텐츠 전달 매체로서의 종이책의 역할을 깊이있게 조명한다. 이어서 전자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소개한다. 전자책의 발명으로 촉발된 종이책과 전자책의 대립 구도가 미래에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살펴본다. 책 전체에 걸쳐 전자책 시대를 개척한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저자의 자부심이 짙게 느껴진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지식의 저장 형태가 디지털로 이동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이런 흐름이 독자와 저자, 출판사와 유통사 등 산업 주체에 끼칠 영향도 짚어본다. 이에 더불어 전자책이 독서, 글쓰기, 도서관, 교육 등 책과 관련된 각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도 살펴본다.

무엇으로_읽을_것인가

한편, 각 장마다 배치된 ‘북마크’라는 섹션에서는 전자책이 주류로 자라잡게 되면서 사라지게 될 종이책 시대의 유산을 살펴보는데, 이게 꽤 흥미롭다. 여기에서는 ‘책갈피에 끼워둔 연애편지’나 ‘저자의 사인’과 같은 감성적인 요소 뿐 아니라, ‘중고책’이나 ‘책장’과 같은 시스템적 요소도 다룬다.

앞으로 우리가 전자책을 생활 속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독서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려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책에서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의 개인적 견해를 더하여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도구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그릇보다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치가 있는 컨텐츠라면 그 매체가 종이책이건 전자책이건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반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아무리 첨단 매체를 활용하더라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는 그만한 비용이 들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의 전자책은 베스트셀러나 가벼운 소설, 그리고 성인물이라고 한다. 잘 팔리기 때문에 일단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전자책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교육 분야가 그러하다. 비록 지금 당장은 돈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영역도 충실히 포용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훗날 전자책 산업 전체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전자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클라우드를 통한 컨텐츠의 배포이다. 달리 표현하면 중앙집권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평상시에 효율적이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자책 원본이 한 회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모두 모여 있다고 해보자. 평상시에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 회사가 망하거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등, 어떠한 이유로든지 그 서버가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 전자책 원본이 소실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한편, 이전 기기에 맞춰 만들어진 전자책을 새로운 기기에서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단지 읽을 수 있는 기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자책이 사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하겠다.

셋째, 인간 중심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자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 도구에 적용할 원칙이다. 새로운 도구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기에 앞서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왜 사람들이 그것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왜’라는 질문은 그것을 쓰게 될 사람을 중심에 둔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가. 사람들에게 ‘왜’ 전자책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실현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무엇’과 ‘어떻게’는 도구와 관련된 질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인간 중심의 철학이 필요하긴 하다. 좋은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만큼,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글을 마무리하자. 사실 전자책은 내가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 만큼이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 두 분야는 공통점이 있다. 시공간의 제약을 허무는 기술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도 바로 그것이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것처럼, 훗날 종이책은 흘러간 시대의 유산이 되고 종이책에 담겨있던 내용은 전자책을 통해서만 접하게 될지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의 형태가 ‘종이책’인지 ‘전자책’인지가 아니다. 책에 담길 ‘지식’, 그리고 더 중요한 그것을 읽을 ‘사람’이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의 5개의 댓글

  1. 저는 책보다 음악을 듣는 사람입니다. mp3가 나왔을때 디지털음원판매량이 아날로그음반의 판매량보다 월등히 높다가 최근들어 아날로그 LP의 판매율이 디지털음원 판매량을 다시 역전했다고하네요. 전자책도 편리함이라는 장점때문에 수요가 높아지다가 역시 책을 손에잡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괸한 심술일지 모르겠지만 디지털에 의존하고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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