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지난 해 여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2박 3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남은 일정을 살펴보니 출발 전까지 서너 시간이 남게 되었다. 여행 일정을 딱 맞게 세웠다가 정작 여행 막바지에 약간의 시간이 남은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떠난 여행인 만큼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싶었다. 나와 아내는 여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용히 산책할 만한 곳을 스마트폰 지도로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곶자왈’이라는 제주도 특유의 원시림 지대를 ‘환상숲’이라는 이름의 체험 공간으로 개방한 곳이었다.

곶자왈은 제주도 사투리로 숲을 의미하는 ‘곶’과 자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말로, 원래는 가시덤불이 많아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피할 정도로 쓸모없는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생태계의 보고로 최근 이 땅의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숲 바깥은 햇볕이 내리꽂는 한여름 날씨였다. 하지만 곶자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서로 뿌리를 포개며 어울리고, 바닥에는 고사리같은 양치식물과 푸른 이끼들이 자기들 나름의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곳은 여름처럼 후덥지근해서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다가도, 조금만 자리를 이동하니 서늘한 가을 날씨로 바뀌어 반팔옷 밖으로 나온 맨살에 소름이 돋았다. 그 오묘한 분위기는 ‘환상숲’이라고 충분히 불릴 만 했다.

곶자왈이 이처럼 다채롭고 생명력 넘치는 특징을 가지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곳이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드물다고 한다. 이것을 이행지대라고 한다. 한 기후가 다른 기후로 이행하는 즉 옮겨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독일 신예 여성 철학자 나탈리 크납Natalie Knapp은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원제 : Der Unendliche Augenblick | 나탈리 크납 지음 |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03월 03일 출간>에서 이행지대의 숲으로 삶의 과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것은 아마도 독일의 숲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년에 갔던 곶자왈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행지대라는 점에서 두 숲이 지닌 의미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저자는 이행지대의 숲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우리 삶의 ‘과도기’로 주제를 옮겨간다. 다양한 생명력이 피어나는 이행지대의 숲을 통해, 과도기가 불안한 시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창의력과 도약이 일어나는 시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저자는 철학, 문학, 과학, 역사 등을 가로지르며 ‘우리가 과도기를 어떻게 잘 넘길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제주도의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이행지대의 숲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다. 밖에서 보는 이행지대의 숲은 다채롭고 역동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숨쉬고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급변하는 환경이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변화는 어느 한쪽이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과도기는 그것을 경험하는 당사자에게는 역동성 보다 불확실성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많은 직장인들의 삶이 이러한 불확실성 위에 놓여있다. 2015년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시직 직장인의 비율은 27.1%에 달해 조사 대상인 OECD 국가 가운데 높은 순서로 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근무하는 근속년수는 2014년 기준으로 평균 5.6년에 불과해 OECD 25개국 가운데 가장 짧았다.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고용환경이 악화일로에 있는 것이 전세계적인 현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유독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어디 이런 불확실성이 직장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인가. 이는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확실성의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불확실성이 우리 삶에는 훨씬 더 많다.

아이들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훗날 취업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취업하면 고민이 끝나는가. 아니다. 취업하고 나서는 은퇴 후를 걱정한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리지 않을까 늘 고민한다.

또 다른 면을 살펴보자. 미혼 남녀는 과연 언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결혼하면 걱정이 없을까. 첫 아이가 태어난 내 입장에서는 ‘과연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고민을 갖게 되었다.

불확실한_날들의_철학왜 우리는 이렇게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탈리 크납에 따르면, 우리들 삶의 대부분이 과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생토록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기에 놓여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기어가는 개미처럼 끝나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과도기를 끝내는 것은 삶이라는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지는 순간, 즉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나 현재보다는 미래를 고민한다. 그러면서 현재를 희생한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가 오길 바라며, 어떻게 하면 지금의 이 불확실하고 힘든 시기를 빨리 지나쳐갈 수 있을까 고심한다. 하지만 산 하나를 넘으면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보면 어떨까. 우리가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삶의 과도기마다 마주하는 불확실성을 긍정적인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제껏 힘든 시간으로 채워왔던 ‘현재’를 우리 삶의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여기에 나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세 가지를 소개한다. 말하자면 ‘삶의 과도기마다 마주하는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내가 이렇게 정리해서 수첩에 적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에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을 읽고 나탈리 크납의 세계관에 내가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투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첫째, 이제껏 지나온 길을 생각한다.

당신은 삶의 절망적인 순간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너무 힘든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결코 미래에 희망 따위는 기대할 수 없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음을 이해한다. 아니, 비교적 젊은 내가 겪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을 수 있기에 함부로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미래를 속단하는 것을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당신은 1년 전 지금의 모습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을 예상하고 있었는가. 지금의 인간관계, 지금의 경제상황… 뭐하나 정확히 예상하고 있던 것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예상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이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의 1년 뒤를 지금 예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신은 1년 전 오늘을 내다볼 수 없었듯이 1년 뒤도 결코 정확히 내다볼 수 없다. 그건 당신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 그렇다.

힘들 때에는 이제껏 지나온 길을 생각해보자. 당신의 절망이 근거 없는 속단, 더 깊이 파고들면 당신의 오만함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신은 결코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함을 절망으로 대체하여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다.

둘째, 완벽에 대해 마음을 비운다.

완벽에 대한 집착은 당신의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만약 당신이 완벽에 대해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왜 삶을 숙제로 보는가. 누구에게 평가 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다. 여기서 ‘누구’는 다른 이들 뿐 아니라 당신 자신도 포함한다. 당신의 삶은 남에게 평가 받을 대상이 아님은 물론이고, 당신 스스로가 평가하면서 자책할 대상도 아니다. 전자가 주관이 없는 것이라면, 후자는 조금 심하게 말해서 자기 학대다.

솔직히 나도 가끔은 이것을 잊는다. 오늘 글을 시작하면서 말한 제주도에서 남은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자 한 것도 결국은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으면 또 어떤가.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되는 것을.

종종 묵상을 하며 느끼는 것인데, 완벽히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것도 하나의 집착이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우리의 삶은 어떤 근사한 결과를 내야만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삶의 순간을 호흡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물질 보다는 시간을 추구한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한다. 심지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입하려다 보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 매어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시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IT 기기도 결국은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부족한 시간을 메꾸어 주는 도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IT 기기를 쓴다고 더 여유로워졌는가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그러한 기기에 매어있게 됨으로써, 삶은 더 팍팍해지고 단조로워진다.

이런 것들의 가장 큰 해악은, 우리의 삶에서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독서하고 여행하며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고갈해 버린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대화할 시간을 빼앗아간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들, 이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시간, 그리고 매일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이런 것들이 과연 우리의 하나 뿐인 삶을 희생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지금 돈을 열심히 벌어서 언젠가는 여유있게 삶을 즐겨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안 하는 것을 나중이라고 선뜻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소비를 줄이고 덜 일하고 스마트폰을 덜 들여다보고, 그 시간에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주제이다.

오늘은 삶의 불확실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요약하자면,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중심을 확실히 잡자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확실하게 지키면 과도기를 거치며 겪게 되는 불확실성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불확실성이라는 말 자체가 확실한 것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대로 찾은 ‘중요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며 발견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 ‘완벽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찾은 마음의 자유’ 그리고 ‘시간’이다. 이것은 내가 찾은 답이다. 당신은 또 당신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에 대한 8개의 생각

  1.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리구요 하신말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오늘 행복하지않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수없답니다. 행복음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생각때문입니다.

  2. ‘완벽히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것도 집착’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씀은 큰위로가 되구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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