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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자동차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할 때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먼저,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세부 디자인만 바꾸는 경우다. 이런 것을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껍데기만 바꾼 것인데 보통은 가격도 함께 올리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같은 모델이지만 완전히 다른 설계와 디자인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풀 모델 체인지full model change, 또는 줄여서 그냥 풀 체인지라고 한다. 이 때는 대체로 새로움에 대해서는 수긍한다. 반면, 이전 모델의 자동차의 가치가 하락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만약 소유한 자동차가 풀 체인지 대상인 경우, 차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갈아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두 가지는 각각 다른 경우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심리적 갈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그 갈증의 원인이 신제품이 출시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이처럼 신제품은 사람들에게 즐거움 만큼이나 피로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구입할 때 지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처음에 신중하게 선택해서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 원칙을 지키다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비싼 물건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틀에서 보면 대체로 이득이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한다.

예를 들자면 무척 많다. 내가 병원에 출근할 때 메고 다니는 배낭도 그렇다. 15년 전, 미국 시애틀Seattle에 놀러 갔을 때 등산용품 매장에서 튼튼해 보이는 것을 고른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집중하기 위해 곁에 두고 음악을 듣는 아이팟iPod은 벌써 10년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픽셀이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로 화질이 투박하여,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음악을 듣는 본연의 기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20년 된 책상 의자, 17년 된 전기 스탠드…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 가운데는 이처럼 오래된 물건이 많다. 내가 이렇게 물건을 오랫동안 쓰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초래하는 시간적, 정신적 낭비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는 무슨 물건을 살지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을 다듬고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도 바쁘다.

이를 위해서는 여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데, 물건 구입에 몰입하다 보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여유가 줄어든다. 그래서 물건 구입하는데 쓰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나는 물건을 구입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한 결과 책을 읽고 이 블로그를 만들고 있다.

두 번째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대체로 가격이 비싼 대신, 품질은 우수하다는 점이다. 싸구려 제품을 쓸 때 발생할 수 있는 자잘한 문제와 씨름하기 보다는 신중하게 선택한 고품질 제품을 만족스럽게 계속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같은 경우는 별종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음으로써 일시적인 쾌락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신제품이 나오면 아침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블로그마다 신제품 개봉기가 넘쳐 난다. 그들은 구입한 물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최신형 휴대폰이나 새로 출시된 자동차를 구입하고 보여주는 행동에 그들의 자부심이 배어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자. 돈만 내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이 어떻게 자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핵심은 이것이다. 소비에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행동의 밑바닥에는 불만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기 스스로에게 조차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싶어한다. 대신에 겉모습을 항상 새롭고 산뜻하게 꾸밈으로써 진실이 드러났을 때 초라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우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그들도 희생자이다. 광고와 미디어가 주입한 이미지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광고와 미디어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그들의 수익성 극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조작한다. 그 조작이 매우 체계적이고 정교하기 때문에 깨닫기 힘들 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광고 뒤에 서있는 이들에게 위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광고 뒤의 이들이 제시하는 환상을 소비하는데 나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도 싶지 않았다. 그 결과 마련한 자구책이 앞서 말한 ‘물건을 신중하게 구입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원제 : Beyond Consumer Capitalism | 저스틴 루이스 지음 | 엄창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02월 26일 출간』는 내가 평소 하고 싶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책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 저스틴 루이스Justin Lewis는 저널리즘과 미디어라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도 짚어준다.

루이스가 말하는 소비 자본주의란 무한 소비와 가속 성장이 삶의 질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다. 소비 자본주의는 ‘더 많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경제 성장’이 곧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주입한다.

사람들은 항상 최신의 것만 추구하며 아직 멀쩡한 물건도 싫증났다는 이유만으로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만 가는 반면에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루이스는 소비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3가지의 요소에 주목한다. 이 3가지는 저자가 책을 통해서 그 위험성을 드러내고자 한 핵심 주제이며, 우리가 이것들을 현명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 그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서 쉬지도 못하고 일하게 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첫 번째는 ‘광고’이다. 광고 자체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없이 경제적 목적 만을 지닌다. 쉽게 말하여 일개 회사가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마련한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광고들이 모여서 이룬 전체의 추세는 하나의 정치적 메세지를 표현한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소비가 더 큰 행복을 약속한다는 믿음’이다.

두 번째는 ‘뉴스’이다. 저널리즘의 뉴스는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고 현상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는 오로지 신속성, 최신성만 중요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난 뉴스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 루이스는 이것은 ‘계획적 노후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뉴스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뉴스가 필요한 사람들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붙잡을 수 있게 되니, 뉴스는 시청자를 상품 삼아 광고주들로부터 수익을 내기 좋은 사업이 되었다. 결국 오늘날의 뉴스는 언론의 본래 역할보다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아서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아낼 방법을 고민하는데 더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시견watch dog이 되어야 할 뉴스는 기업의 애완견lap dog이 되었다. 심지어 기업을 보호하는 경비견guard dog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인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 것에는 잠자는 개sleeping dog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세 번째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은 스스로를 일회용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을 울리는 카톡 메세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뉴스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상품이 되는 현상’이다.

그들이 당신을 고객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그들의 실제 고객은 광고주이고 당신은 상품일 뿐이다. 결국 카톡이나 페이스북 또는 여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은 광고주에게 사람들을 끌어다 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몰두한다.

소통과 공유의 신세계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은 어느새 ‘거대한 광고판’이 되어버렸다.

요컨대, 루이스는 계획적 노후화를 부추기는 광고와 일회용 상품으로 전락한 뉴스 그리고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으로 우리가 끊임없는 소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가능한 해답은 미디어가 주입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에 인생을 낭비하는 대신 여가 시간을 확보하여 의미 있는 경험으로 삶을 채워가는 것’이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도달할 목적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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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미디어에 시선을 빼앗기고, 이들이 유혹하는 것 가운데 무엇을 소비할지 고민하고, 그것을 소비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단 한 번 뿐인 우리의 귀중한 삶을 갉아먹는 것이다. 소비를 위한 시간을 줄이는 대신 여가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예컨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취미 활동을 하고,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TV 쇼 프로그램, SNS에 시간을 쓰지만 정작 세상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일터와 집을 오가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결국 허전함만 남는다. 그 사이에 당신의 월급 통장은 돈이 잠시 스쳐서 지나가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제껏 광고와 미디어가 주입한 환상에 빠져 지낸 이들이 숱하게 겪어온 일들이다. 이것을 바꾸어보고 싶은가. 당신을 소비 지향적 삶으로 내몬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마무리하며, 오늘날 뉴스와 미디어가 이미 하나의 일회용품이자 계획적 노후화가 일어나는 소비재가 된 마당에 나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매체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책이라는 느리고 딱딱한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나는 ‘신승건의 서재’가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돈에 초연한 매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는 꽤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변화가 정신없이 빨라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소비 자본주의 현상은 오늘날 당신이 책을 사기 위해 찾아가는 서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당신이 신중하게 책을 선택하고, 그 대신 실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의 6개의 댓글

  1. 애독자입니다. 항상 좋은 글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광고가 가득한 인터넷 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책읽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습니다.
    이 글도 허한 마음에 최근에 소비를 마구 하고 더더욱 허한 마음이 들던차에 읽으니
    너무나도 와닿네요 ^^;;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 삶에 지침이 될 귀한 가르침을 이런 방법으로 배우게 됨이 감사하네요~ 거대 자본 사회에서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살아 가는 게 옳은 가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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