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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 –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온다

볼드

예전에는 사진을 찍어도 필름을 인화하기 전까지는 어떤 사진이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 생각보다 초췌하게 나오거나 물에 불린 듯 부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도 사진에 찍히는 순간 눈을 감고 있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나았다. 하지만 이미 찍은 곳에 가서 다시 찍을 수도 없을 뿐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라고 해도 인화에 따르는 비용은 모두 지불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그 사진 뒤에 신청자 이름을 적도록 해서 다시 사진관에 가서 인원수에 맞춰서 추가로 인화해오기도 했다. 말하자면 90년대의 인스타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지금 생각하기에는 여러가지가 불편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에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이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우리가 디지털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알고 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면을 보면서 원하는 장면만 골라서 찍을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사진 뿐만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이 편리함은 우리가 이전에 비해서 더 많은 자원과 기술을 더 빈번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불과 한 세대 전 미국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었던 정보량을 능가한다.

정보라는 것은 곧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이다. 과거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접할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을 이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자원과 기술’이 곧 ‘생산 도구’라는 점이다. 즉 누구나 공짜나 혹은 아주 저렴한 비용에 ‘자원과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번에 읽은 『볼드 원제 : Bold | 피터 디아만디스, 스티븐 코틀러 지음 | 이지연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02월 29일 출간』에서는 ‘자원과 기술’의 풍요로움과 그것이 마련한 기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개인도 생산 도구에 다가갈 수 있는 넓은 문이 열린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에서 우리가 이 풍요로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우선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 저자 피터 다이만디스Peter Diamandis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온 기업가이자 공학자이다. 인류가 마주한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금을 내거는 것으로 유명한 엑스프라이즈 재단X Prize foundation 회장이며,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과 함께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 을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이만디스는 『볼드』에서 ‘기하급수 기업Exponential Organ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업의 형태를 소개한다. ‘기하급수 기업’은 그 직원수나 회사의 크기에 비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이다. ‘기하급수’라는 말에는 그 기업의 성장 곡선이 2배, 4배, 8배, 16배와 같이 제곱의 공식에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에 그와 비교되는 개념인 ‘산술급수 기업Arithmetic Organization’은 크고 느린 전통적인 기업을 일컫는다.

‘기하급수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2010년에 설립된 인스타그램Instagram은 18개월 만에 페이스북Facebook에 10억 달러에 인수된다. 당시 인스타그램의 직원수는 13명이었다. 그런가 하면, 민박 소개 사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Airbnb는 2014년 기준으로 60만 개의 빈 방을 중개하는데, 말하자면 건물하나 올리지 않고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가 된 것이다. 실제로 기업 가치로 따졌을 때도 에어비앤비는 하얏트 호텔Hyatt Hotel을 능가한다. 인스타그램과 에어비앤비가 ‘기하급수 기업’의 좋은 예이다.

반면,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팔리기 직전 100년 역사의 코닥Eastman Kodak이 파산했는데, 코닥은 디지털 사진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음에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거대한 시설과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하얏트 호텔이나 코닥과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기업들을 ‘산술급수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이만디스는 ‘대담한’ 생각을 통해서 ‘기하급수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전에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대담한’ 시도에 도처에 널린 ‘자원과 기술’이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서다. 말하자면, 새로운 규칙을 통해서 기존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하급수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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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그 ‘대담함’이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다. ‘기하급수 기업’이 가능하게 된 것은 그 이전까지 귀하고 비쌌던 기술이 흔해지고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인스타그램이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아이디어가 실현될 토대가 마련되었다. 다이만디스는 ‘생산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워진 오늘날이야말로 ‘기하급수 기업’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말한다.

다이만디스는 『볼드』의 전반부에서는 ‘기하급수 기업’의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고, 이어서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한다.

이어서 다이만디스는 ‘기하급수 기업’을 만들고 키우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을 소개한다. 그것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연대회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본을, 크라우드 소싱은 인력을, 그리고 경연대회는 아이디어를 끌어오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내가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당신이 사무실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손에 쥔 볼펜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이었다. 머리 속에 전구가 켜지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레이저 프린터와 유사한 원리로, 볼펜심을 교체하거나 잉크를 채워넣지 않고도 언제까지나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다. 여기서는 그것을 ‘무한 볼펜’이라고 하자. 이제 ‘무한 볼펜’을 실제로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을 위의 3단계를 통해 풀어보겠다.

첫번째, ‘무한 볼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1억 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자금 여유가 없다. 이때 당신은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나중에 개발이 완료되어 생산이 개시되면, 1만 원에 ‘무한 볼펜’ 1개를 보내준다고 하며 사람들로부터 1억 원을 목표로 자금을 모은다. 1만 원에 ‘무한 볼펜’을 선구매하는 조건에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출시 후에는 ‘무한 볼펜’에 2만원의 정가가 책정된다고 덧붙인다.

아이디어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 사람들이 돈을 보낼 것이다. 이것은 당신 입장에서는 ‘무한 볼펜’을 생산하기 위한 자금이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갖고 싶은 물건을 미리 싸게 구입하는 효과가 있다.

만약 모금액을 1억 원을 넘어서면 예정대로 생산하면 된다. 당신과 수많은 투자자, 아니 선구매자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모금액이 1억 원에 못 미친다면, 당신은 ‘무한 볼펜’ 개발을 접고 받은 돈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면 된다. 그래도 너무 애석해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을 물건이니까 만들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대중에 공개하고 선구매방식 등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한다.

두번째, ‘무한 볼펜’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당신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에 대한 지식도 없고, 문구 디자인에 대한 지식도 없다. ‘무한 볼펜’의 핵심인 ‘잉크 없는 필기’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레이저 프린터 제작 경험도 없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을 모두 채용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된다. 사실 당신이 의욕적으로 전문가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경험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당신의 ‘무한 볼펜’ 프로젝트에 전문가들이 선뜻 지원할지도 만무하다.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당신은 인터넷을 통해서 소위 ‘재야의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은다. 이 전문가들은 기존 직장을 유지한 채로 프리랜서 형태로 ‘무한 볼펜’ 제작에 가담한다.

당신은 그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며, 그들 입장에서도 이제 막 시작한 불안정한 조직에 고용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바로 ‘크라우드 소싱’이다.

마지막으로, ‘무한 볼펜’이 생산에 성공하고 인기를 끌면서 당신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자. 당신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애초에 당신이 발명한 ‘무한 볼펜’은 검정색 밖에 나오지 않는 볼펜이었고, 결국 당신은 ‘컬러 무한 볼펜’을 만들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흑백과 컬러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설계해야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당신은 ‘컬러 무한 볼펜’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만 정확히 어떻게 그것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태다. 이때, 당신은 5천 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컬러 무한 볼펜’을 현실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그 공모작 가운데서 당신은 가장 우수한 것을 활용할 수 있다. 당신이 상금 등에 준비한 비용은 표준적인 개발 절차를 따르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지만, 그 결과물은 더 우수하다. 이것이 ‘경연대회’의 힘이다.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소싱, 경연대회는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자원과 기술’이라는 생산 도구가 흔해진 덕분이다. 이제 남은 관건은 ‘누가 대담한 생각을 갖고 실행에 옮기느냐’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생각할 것이 있다. 대담성을 갖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었을 때 그것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생소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대담성이 크면 클수록 보통 사람들은 어렵게 느끼기 마련이다. 내가 예를 든 ‘무한 볼펜’도 기존의 잉크 방식의 볼펜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작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볼펜과 사용 방식이 비슷하길 원할 것이다. 설사 새로운 사용 방식이라도 너무 어렵지는 않기를 바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다. 사물과 인간이 접하는 접점, 즉 인간의 입장에서 설계되고 준비된 사물의 구성 요소가 ‘사용자 인터페이스’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라는 말이 생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있는 것들이다. 스마트폰 화면에서부터 TV 리모콘 버튼 배열, 심지어는 문 손잡이도 어떻게 보면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예이다.

기존의 성장 곡선을 따르지 않는, 폭발적인 성장세가 특징인 ‘기하급수 기업’은 대담한 아이디어 위에 세워진다. 대담한 아이디어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다. 따라서 기하급수 기업은 ‘대담한 아이디어’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어줄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해서 고민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오늘날 정보와 기술이 흔해지면서 누구나 생산자로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 풍요로운 ‘생산 도구’들 덕분이다. 더 ‘대담하고’ 파격적인 생각을 구현하기에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시절이다. 그리고 그 ‘대담한’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서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소싱’, ‘경연대회’ 같은 다양한 수단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생각의 대담함 못지 않게, 그것을 사용하게 될 사람의 입장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일지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담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사용자에 대한 배려이다. 요컨대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혁신적 기업이나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대담함’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한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무리하며, 천재가 쓴 책을 천재와는 거리가 먼 내가 풀어내다 보니 오늘 이야기는 다소 두서없이 장황하게 정리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어떤 이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스타트업 Startup 기업을 시작하거나 투자하는 것에 관심이 있거나, 꼭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 만한 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보와 기술이 더욱 흔해지고 쉬워지는 미래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컨대 미래에 대한 감각이 필요한 이라면 시간을 내어 읽어봄직한 책이다.

“볼드 –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온다”의 8개의 댓글

  1. 신승건님 글 잘읽었습니다. 평소 내용이 궁금하던 책이었는데 정리가 잘 되어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용 중 오타를 발견해서 알려드립니다. 무한볼펜 이야기 첫번째인 크라우드펀딩이 크라우드소싱으로 잘못 적힌듯합니다.

  2. 너무 감사드리며 짧은시간에 한권의 책을 읽도록 해주심에 매우 감동입니다. 서평을 읽고 관심가는책은 다시구입하여 정독토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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