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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으로서의 글쓰기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바야흐로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서점에 가보면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넘쳐 난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에는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블로그도 부쩍 늘었다. 그 가운데에는 정말 좋은 내용을 선의를 갖고 공유하는 곳들도 많다.

나름 열정적으로 글쓰기를 즐기고 있는 입장에서 요즘의 글쓰기 열풍을 보고 있자면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우선 글쓰기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가 갑자기 유행처럼 떠오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로 세상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과 삭막한 세상에 대한 치유의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 아닐까 한다. 반면에 긍정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이 글쓰기에 마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기고 감정에 충실해진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같은 현상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보자.

이제 우리의 시선을 글쓰기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서점의 매대로 옮겨보자. 가만히 보면 요즘 글쓰기를 다루는 책들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법론을 다룬 것이 그 중 하나고, 좋은 글들의 사례를 모아서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 내용이 섞여서 하나의 책을 이룰 때도 있고, 또 어떤 책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이런 책들을 읽어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글쓰기 책들은 읽은 후 뭔지 모를 갈증을 남긴다. 왜 그럴까. 뭔가 배운 것은 같은데 이 허전함은 도대체 뭘까.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는 이 책들이 글쓰기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을 ‘어떻게’와 ‘무엇’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우리가 글을 쓰기에 앞서 마주하는 고민의 핵심은 글을 ‘어떻게 쓰는가’나 ‘무엇을 쓰는가’가 아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왜 글을 써야 하는가’이다. 그렇다. ‘왜’가 중요한 것이다.

‘왜’에 대한 명확한 방향 제시 없이 글을 쓰는 요령과 사례만 잔뜩 늘어놓는 책은 그래서 뭔가 허전함을 남긴다. 사람들이 글쓰기 책을 아무리 읽어도, 뭔가 방법을 알 것은 같지만 정작 글쓰기를 시작할 동기는 갖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30년 넘게 선불교 수행과 글쓰기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온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는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원제 : The True Secret of Writing |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 한진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02월 26일 출간』를 통해 글쓰기에 있어서 ‘왜’라는 화두를 던진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의 이유, 즉 ‘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달리 말하면 수행의 한 형태로써의 글쓰기이다. 저자는 누구나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글이란 평소에는 나와 남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수단으로 쓰이지만, 때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아를 인도해주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를 수행의 한 방법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 적극 공감한다. 나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글쓰기로부터 그런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한 가지 오래된 의문이 있다. 학창 시절부터 현재 직장인 병원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든지 나와 갈등을 빚는 사람이 꼭 한 명은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랬다. 얼굴을 마주하기도 껄끄럽고 신경쓰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 쉽게 말해서, 사이가 나쁜 사람이 어디를 가나 꼭 한 명은 눈엣가시처럼 있었다는 말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은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그 갈등의 원인이 상대방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어디를 가든지 꼭 충돌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미워하는 그 누군가도 다른 곳에 가면 귀중한 자식이고 가족이며 동료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글쓰기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차분히 글을 쓰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찰의 시작으로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훈련을 했다. 고백컨대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은 내게 있어서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성찰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내려 가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바로 이 블로그에는 그 성찰의 결과물들이 담겨있다. 그러자 비로소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원인이 결국은 나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글쓰기가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먼저 지나온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보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냥 두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릴 과거의 시간을 글로 붙들어 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글쓰기는 ‘현재의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기도 하다. 소파에서 뒹굴거나 낮잠을 잘 시간에 차라리 글이라도 쓰면, 적어도 나중에 되새겨볼 수 있는 결과물이 남게 된다. 허공으로 시간을 흩뿌리는 것보다는 삶과 경험을 통해서 의미 있는 생산물을 만든다는 이유로도 글쓰기는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자는 수행으로서의 글쓰기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 세 가지를 나름대로 추리면 다음과 같다. 다만, 이 세 가지는 내 경험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른 것이다. 따라서 책 내용 전체를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첫째, 저자는 시간을 정해두고 글을 쓸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하루 중에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7시’나 ‘매일 저녁 8시’ 같은 식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이를테면 10분이나 30분을 정해두고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상의 업무로부터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다음으로 저자는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소재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다가가 보라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사랑, 그리움과 같은 추상적 개념 뿐 아니라 책상, 휴대폰, 컴퓨터와 같은 손에 잡히는 실제 물건들도 포함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떠오르는 심상이나 생각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내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느낌을 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저자는 ‘말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조언한다. ‘말하지 말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묵언 수행을 하라는 의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가운데에는 꼭 필요도 없으면서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묵언 수행은 그런 말들을 삼가라는 것이다. 또한 ‘그냥 쓰라’는 말은 무슨 내용을 쓸지 망설일 시간에 펜을 집던지 아니면 키보드에 손을 올리던지 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라는 의미다. 먼저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이다.

요컨대,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고, 다양한 소재에 거리낌 없이 다가가며, 무엇보다도 말을 삼가고 일단 쓰는 실행력, 이것들이 자신을 성찰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으로서의_글쓰기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더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다. 나는 이번에 ‘글을 쓸 때는 자기를 잊어야 함’을 배웠다. 겉으로는 밝고 말끔한 사람일지라도 남에게 밝히기 부끄러운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얼음판을 위에서 보면 매끄럽지만 수면 아래에서 바라보면 울퉁불퉁 불규칙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울퉁불퉁한 얼음 아래 공간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작은 생물들이 겨울을 날 수 있다. 이처럼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내면에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이런 내면의 힘을 살피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잊고 남의 시선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성 있는 글이 완성될 수 있다.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는가. 그렇다면 일단 어깨에 힘을 빼고 아무것이나 쓰기 시작해보자. 처음부터 훌륭한 것은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점점 나아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구원으로서의 글쓰기”의 6개의 댓글

  1. 글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20대인데, 요즘 마침 브런치등의 글 기반 SNS를 접하며 언젠가 나도 글을 써서 타인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티스트웨이, 서민적글쓰기 등 읽어 볼 책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서평해주신 위의 책도 꼭 읽어봐야겠어요.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좋은글이란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만
    되는줄 알고있었는데 이글보니
    작은 댓글 한줄이라도
    자기의 의지대로 쓸수있는것도
    감사한 일이네요~

    귀하의 글은 읽을수록 진정성이
    느껴져서 감사합니다…^^

  3. 저도 살아 오면서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도구였으며 즐거움 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지 않는 글쓰기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이전에 사두었던 글쓰기 책들을 다시 한번 읽고 무엇이 문제인지 가늠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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