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Sir Francis Galton은 진화론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한편 그는 우생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우생학이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를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활용한 근거가 바로 우생학이다. 이제는 그런 발상이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프랜시스 골턴은 그 점을 깨닫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우생학에 근거하여 대중이 우매하다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던 프랜시스 골턴이 어느날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황소 무게 맞추기 게임을 목격한다. 이 게임의 규칙은 살찐 황소 한 마리를 세워두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게 추정치를 적어내게 해서 맞춰보는 것이었다. 실제 무게에 가장 가까운 답을 낸 사람에게 상금이 돌아간다. 그날 참여한 사람들은 약 800명 정도였는데 황소에 대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프랜시스 골턴은 대중의 우매함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제출한 무게 추정치를 모아서 통계를 내었는데 그 평균값은 1197 파운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 황소의 무게는 1198 파운드였다. 만약 황소가 잠깐 화장실에라도 다녀온다면 정확히 맞을 수도 있는 값이다. 황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적어서 낸 것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다. 심지어 이 값은 소수의 도축 전문가들이 제시한 값보다도 정확했다. 대중이 우매하다는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프랜시스 골턴은 자신의 우매함을 확인하였다.

이 이야기는 ‘집단 지성’에 대해서 말할 때 곧잘 인용되는 고전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다. 예전에 미국에서 핵잠수함이 실종되었는데, 전문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명의 아마추어들이 추정한 위치를 모아서 평균 지점을 조사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실종된 핵잠수함을 발견했다는 것도 ‘집단 지성’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다.

집단 지성이란 소수의 우수한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집단 지성이란 말이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 이는 인터넷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집단 지성이 우리 실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접목된 것의 영향이다.

이 집단 지성의 대표적인 예가 온라인 백과사전이라고 불리우는 위키피디아Wikipedia다. 위키피디아는 기존의 백과사전이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누구나 잘못된 정보를 수정 및 삭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종합적 지식이 한데 모아진 결과, 위키피디아는 거의 정확한 정보로 채워진다.

위키피디아의 정확도에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에서는 2005년, 전통적인 백과사전의 표준으로 알려진 브리태니커Encyclopædia Britannica와 위키피디아의 정확도를 비교하였다. 과학 분야의 항목 50개를 무작위로 선정해서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그 결과 심각한 오류는 브리태니커에서 4개, 위키피디아에서도 4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브리태니커 123, 위키피디아 162개로 나타났다. 요컨대 위키피디아가 기존의 전통적인 백과사전의 표준으로 알려진 브리태니커 못지 않은 수준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발표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위키피디아 편집에 착수하여, 사실상 위키피디아에서 위의 오류들이 모두 수정되었다. 그 결과 좀 더 정확한 위키피디아로 거듭났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집단 지성’의 특징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이다.

오늘날 집단 지성은 위키피디아처럼 인터넷에서 구현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집단 지성은 온라인 세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집단 지성이란 개념 자체가 1910년대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교수이자 곤충학자인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gan Wheeler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면서 처음 제시한 것이다. 쉬운 예로, 회사 내에서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각종 회의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도 일종의 집단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사불란하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개미들과는 다르게 인간이 이루고 있는 다양한 조직에서는 집단 지성이 완벽하게 기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회의는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항상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시간만 잡아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일꾼’들은 또 어떤가. 분명 뽑기는 우리가 직접 뽑은 것이 맞는데 뭐하나 국민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Universität Bielefeld 수학과 교수와 IBM 최고기술경영자를 역임한 저자 군터 뒤크Gunter Dueck는 저서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원제 : Schwarm Dumm | 군터 뒤크 지음 | 김희상 옮김 | 비즈페이퍼 | 2016년 03월 05일 출간>에서 이런 부조리를 ‘집단 어리석음’이라고 말한다. ‘집단 지성’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집단 어리석음’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나친 최적화’와 ‘과도한 목표 설정’에 의해 발생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왜_우리는_집단에서_바보가_되었는가이를테면, 한 회사 안에서 오로지 비용 절감과 수익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경영진과, 해고를 피하기 위해서 성과를 달성한 것처럼 눈가림하는 직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영진은 비정규직 또는 시간제 근로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점점 더 비용 절감에 신경을 쓰고, 직원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회사에 대한 애정을 접는다.

사실, 시간제 근로자가 증가하는 현상의 이면엔 ‘지나친 최적화’와 ‘과도한 목표’를 향한 경영진의 비겁한 의도가 반영되어있다.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면 경영진은 시간제 근로자를 쉽게 해고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기업이 더 큰 수익을 내었을 때 경영진이 그 수익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경영상의 위험과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다. 위험이 따르는 ‘과도한 목표’ 아래에서도 경영진 스스로는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나치게 최적화’한 결과로 경영진이 찾은 해법이 시간제 근로자 고용인 것이다.

이런 위험 전가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통 기업이 납품 업체에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납품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그렇다. 경영진이 유통 기업으로, 시간제 근로자가 영세 납품 업체로 바뀌었을 뿐이다. 유통 기업이 세운 ‘과도한 목표’와 이를 위한 ‘지나친 최적화’ 때문에 힘없는 납품 업체가 대신 희생되는 구조이다.

‘집단 어리석음’의 다른 예로, 기업과 소비자의 파행적 관계도 들 수 있다. 기업은 수익 극대화라는 ‘과도한 목표’를 위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기 위해 각종 무리수를 둔다. 제조업체는 가까스로 기준에만 맞추어 낮은 품질로 물건을 제작해서 비싸게 판매하는 ‘지나친 최적화’를 감행한다.

소비자는 기업의 이런 행태에 속기만 할까.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소비자도 기업을 속인다.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만져보고 온라인에서 최저가로 주문하는 행위가 사실은 소비자가 기업을 속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이 다소 비싼 것은 그것을 실제로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장점을 누렸다면 마땅히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도 최저가 구입이라는 나름의 ‘과도한 목표’ 실현을 위해서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보고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지나친 최적화’를 선택한다.

자 이제 ‘집단 어리석음’이 일어난 내면을 들여다보자. 그 원인이 경영진, 직원, 기업, 소비자의 ‘탐욕’ 때문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집단 어리석음’의 원인이 탐욕이 아니라는 것은 중요한 발견인데, 왜냐하면 직원이나 소비자 모두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집단 어리석음’을 저지른다기 보다는 상황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다.

‘집단 어리석음’은 경쟁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 구조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경쟁의 기준으로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수익이나 지표 등의 ‘숫자’에 의존하는 습관에서 ‘집단 어리석음’은 뿌리를 내린다.

‘숫자’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주가, 수익률, 영화 평점, 페이스북 좋아요 갯수 등.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하지만 손쉽게 비교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숫자’들은 조작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숫자’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목표만 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차 기회주의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변해간다.

요약하자면, ‘과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지나친 최적화’를 감행한다. 그 결과 애초에 누구도 원치 않았던 과도한 경쟁이 유발된다. 일단 자기 목숨 하나 건지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 ‘내가 남에게 이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결국 ‘숫자’에 집착하지만 그 숫자는 조작될 수 있는 것으로 진실된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숫자’ 외에는 달리 ‘내가 남에게 이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계속 ‘숫자’에 매달린다. ‘숫자’를 쟁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점차 기회주의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변해간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문제의 원인이 체계에 있었으므로 체계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그 대안으로 ‘자원봉사단체’ 방식의 조직 운영을 제안한다. 쉽게 말하면 내적 동기를 북돋워주는 방식을 말한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근사한 말이지만 나는 ‘자원봉사단체’ 방식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분히 순진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내적 동기를 북돋워준다는 취지는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이 사회에서 신뢰의 회복이 우선 실현되어야 ‘집단 어리석음’이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속고 있지 않다’라는 믿음이 당신과 나 사이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것들이 있다. 직원을 쓰고 버리는 부품으로 생각하는 경영진의 사고방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으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위 ‘진상’ 고객의 사고방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외과 의사 입장에서 자성하는 의미로 하나 덧붙이면,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환자는 잘 모를 것이라고 믿는 의사들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회 각 구성원 사이의 신뢰 회복만이 ‘집단 어리석음’에 빠진 체계를 바꿀 수 있다. 그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집단 지성’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에 대한 18개의 생각

  1. 주신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사의 정신에 더해 신뢰 회복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계신데, 구성원들 간에 신뢰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에는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계신지 질문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귀한 시간 글을 읽고 의견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 회복에 대해서 저는 ‘표면적인 실적에 집착하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인 실적 즉 보여지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다보면 이를 악용하여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행태가 만연하게 될테니까요. 그런 일이 지속되면 구성원 간의 신뢰도 무너지게 되겠지요.

  2. 결국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요.
    보내주신 이메일을 통해 글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 ‘근시 사회’ 책과 문제 의식은 비슷하네요. 단기 성과만 치중하고 KPI라고 부르는 수치화 평가 목표 때문에 힘들어진 사회 모습.

    글 본문에도 쓰셨듯이 이런 책들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만, 해결 방안은 추상적이라 좀 답답합니다.

    1. 쉽지 않은 문제이니만큼 속시원한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긴 안목을 갖고 신뢰 회복에 힘쓰는 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귀한 시간 글을 읽고 생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4. 한 조직에서 원치않는 일들이 끼리끼리 벌어지는데 이것도 집단지성으로 봐 주어야 하아요.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1. 책에서는 조직의 공동 목표를 저해하는 분란행위를 ‘집단 어리석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다는 것의 주체가 누구인지, 끼리끼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집단 지성’보다는 ‘집단 어리석음’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안녕하세요.
    다음이야기를놓지고싶지않아 반강제적댓글을달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경청하겠습니다.

    1. 계속 지켜봐주시기로 결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글 마지막 문장의 ‘이메일 등록‘ 링크를 누르셔도 이메일 구독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블로그 우측 상단의 네모칸을 누르시면 이메일 외에도 다양한 구독방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귀한 의견과 조언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 아~
    그렇군요..
    집단지성,
    집단어리석음..
    결국은 신뢰회복이라는
    귀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참으로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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