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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나는 술자리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술자리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친목 도모라는 이름으로 몽롱한 상태에 잠긴 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을 허공으로 날려서 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개개인의 귀한 시간을 희생하며,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주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내게도 똑같이 해주길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남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집에 가서 책을 읽거나 어디가서 뭐라도 하나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소 소원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도 있을 것이고, 동료의 모르던 면모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탁을 우회적으로 전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비공식적인 것들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대신에 잃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모두 원하는 것 만을 얻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다. 내가 보고 배운 것이 그런 것이라서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그런 신념이 더욱 확고하다. 퇴근 후에는 항상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은 집에서 먹으며,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병원에서 당직이라도 있는 날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아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우는 것을 달래주다가 가끔 웃음을 볼 수 있는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 후에 유일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한 일은 병원 당직 외에는 없다. 그만큼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런데 만약 18년 동안이나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면 어떨까. 이번에 읽은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정약용 지음 | 박지숙 엮음 | 보물창고 | 2015년 02월 25일 출간』는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자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를 떠나 홀로 살면서 두 아들과 형제,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서간집이다. 정약용은 40세에 당파 싸움에 밀려 홀로 유배지로 떠난다. 나는 하루라도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못내 마음이 아린데,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을 정약용은 그 마음이 얼마나 참담하고 괴로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매일처럼 만나다가 갑자기 떨어져 살게 된 아버지 정약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아들이었다. 18년 동안의 편지 가운데 두 아들과 나눈 것에는 특히 엄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이자 스승으로서의 가르침과 진실된 마음이 구절마다 배어있다. 한 인간으로서 포기할 수 없었던 삶에 대한 갈등과 가슴 저미는 정약용의 고백은 2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오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힘을 합쳐 가족을 지키며 공부에 정진할 것을 주문한다. 모든 삶의 기본에는 가족의 화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두 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바라는 정약용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편, 정약용은 폐족廢族이 된 당시의 상황이 오히려 두 아들에게는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역설한다. 폐족이라 함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서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두 아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관직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아무리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해도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것 정도로 보면 된다.

유배지에서_보낸_정약용의_편지

그렇다면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왜 이처럼 말한 것일까. 그것은 주위 환경이 열악할 때 오히려 공부 하나 만을 보고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보면 부유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족한 환경에서도 더 잘해내는 아이들이 있다. 부유한 환경에 있으면 공부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부족한 환경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택할 수 있는 길은 공부 외에는 마땅히 없다. 달리 말해 부족함은 선택지를 단순하게 만든다. 즉, 부족한 환경은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순한 환경이기도 하다. 공부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서 단순한 환경이 도움이 된다.

아울러 정약용은 편지글을 통해 ‘공부를 무엇인가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쉽게 말해 마음은 콩 밭에 가있는데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책을 읽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글을 써서 블로그에 정리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블로그에 소개할 책을 정해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독서 자체의 즐거움일 때는 집중할 수 있지만, 그 독서가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일 경우 독서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렵다. 독서할 때 마음이 산만해지고 책 내용 자체를 즐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보다 독서로 돌아갔다. 그 결과로 나타난 변화가 있다. 얼마 전까지는 글 마지막에 ‘다음 번에는 무슨 책을 소개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다음 번에 글이 올라온다’고만 안내한다. 미리 글에서 소개할 책을 정해두어 독서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져온 폐단을 나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글에 맞추어 독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은 독서에 저절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정약용이 말하고자 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폐족임에도 공부에 매진하라는 정약용의 주문에는 또 다른 교훈도 담겨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정약용의 믿음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1년 전에 지금 우리의 모습을 예상할 수 없었듯, 1년 후에 우리가 어떤 상황일지 결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계기로 기회는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다만 그 기회는 준비된 자만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정약용은 두 아들이 그 점을 이해하기 희망했다.

한편, 정약용은 두 아들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두 글자를 전해준다. 그것은 근과 검, 즉 근검勤儉이다. 근은 부지런함을 의미하고, 검은 검소한 것을 의미한다. 식상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약용이 강조한 이 두 글자를 두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다양한 생각의 각도에서 고민했다. 그 결과 이 두 글자는 200년 전에 어떤 학자가 자기 아들을 걱정하며 남긴 고리타분한 말 그 이상임을 깨달았다.

‘근검’은 오늘날 그 가치를 재평가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고 한 발 더 나아가 앞서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배우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그리고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대비가 필요한데, 그것은 평소에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약용이 가족과 제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저 흘려듣기에는 아까운 소중한 교훈들이 담겨있다. 나는 정약용이 자신의 편지글 한 장 한 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마음을 담고자 했는지 느낄 수 있다. 나 스스로도 이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내 아이들이 언젠가 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시각으로 보기에 정약용의 글에는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애민 정신, 개혁 정신과 더불어 평등 사상을 그 핵심으로 한다는 정약용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무색하게도, 정약용의 글에는 아직 신분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사고방식이 남아있다. 이를테면, 노비와 양반을 근본적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심지어 정약용 자신을 유배 보낸 왕에게 감사하는 부분은 공감하기 어렵다.

대학자인 정약용의 글조차 겨우 200년이란 시간이 흘러오는 동안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내려 앉았는데, 하물며 그에 비할 바 없이 미숙한 나의 생각이 글로 남겨졌을 때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까 두렵다. 머지않아 내 글이 낡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점을 항상 유념하며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글을 써야겠다.

정약용에게 18년 간 유배 생활이 학자로서는 사상을 집대성하고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위하는 편지를 쓴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도 마음으로나마 그러한 유배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공에 시간을 흩뿌리는 술자리가 아니라, 매일 부대끼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런 면에서 이 블로그는 내 마음의 유배지이고, 내 글은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아무쪼록 정약용의 글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나도 가치있는 글을 쓰기 위해 더욱 정진해야겠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의 7개의 댓글

  1. 감사 합니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이렇게라도 글을 접할 수 있게 해주셔 감사 합니다.
    지속해서 보며 마음의 양식과 차분함을 겸비할 수 있다면 제게는 커다란 행운 입니다.
    잘 보았으며 매일 생각케 해주시는 승건님께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2. “공감”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라라봅니다
    감사합니다.
    가족을 위하는맘은 저의
    그이랑 비슷하군요~^-^

  3. 감사드립니다.
    님의 글에서 제 자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서
    남을 배려하는 시간도 좋지만 가족을 위해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있음을 깨닫기도 했음은 고백합니다

    화이팅 하시고요,
    좋은글 부탁 드립니다

  4. 정말 현대인에게 필요한 글 후기이네요. 요즘 같이 바쁜세상에 “유배지” 라는 의미는 여러가지로 와 닿네요. 매일 일상이 정말 중요하면서도 유배지 같은 시간, 장소가 필요한 현대인이 아닌 가 싶습니다. 글을 읽고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 다산의 생각을 정리해주신 내용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메일 주소를 남깁니다.

    자식에게 유형의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하더라도 “근검”이라는 무형의 재산을 남기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리고 서두에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고 최우선으로 생가하고 삶을 살아가는 선생님의 글을 보고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전자료가 있으시면 메일로 보내주시면 마음의 양식으로 삼겠습니다

  6. 정약용의 유배생활 18년이 너무나 긴 기간 동안에 가족과 아들에 대한 애정을 글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든 상황에서 200년이 지난 오늘 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메세지?
    나 자신을 믿고. 가족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정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치있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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