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확장하다

생각을 확장하다아프리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사슴이 사자에 쫓겨서 사력을 다해 도망가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사슴이 긴 다리를 용수철처럼 튕기면서 이리저리 도망가면 사자도 이에 질세라 맹렬히 추격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바와는 다르게, 실제로 사슴이 사자를 만나면 곧바로 도망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사자를 발견한 사슴은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전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는 전략을 취한다. 이는 사슴 자신의 몸과 색깔이 거의 비슷한 수풀을 배경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서다.

이것은 사슴이 터득한 생존 방법이다. 그리고 그 생존 방법은 사슴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사자를 만났을 때 섣불리 도망치기보다 수풀을 배경 삼아 몸을 숨길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며 이 경험은 사슴의 유전자에 자리잡아 본능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번엔 사슴이 산비탈을 따라 난 도로를 건너가려고 한다. 길 한복판에 다 달았을 때 멀리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발견한다. 급히 몸을 피하지 않으면 사슴이 치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자를 만났을 때처럼, 사슴은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사슴 자신의 경험과 본능에 따른 자기 방어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와 사자에 대한 사슴의 대처법은 달라야 했다. 자동차를 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가만히 길 한가운데 서있던 사슴은 차에 치여서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다. 이른바 로드킬road kill이다.

우리는 흔히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한다. 이 말처럼 ‘경험’은 우리가 살아가며 활용할 지식의 뿌리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경험’이 우리를 오판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마치 사자를 피할 때 썼던 방법을 자동차에게 활용했다가 생명을 잃은 사슴처럼 말이다.

이는 ‘경험’이 지식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험’이 지식의 근간이 되는 이유는 이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전체 과정을 다시 밟기 보다, 그 과정을 뛰어넘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을 알고 보면 다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고 빠른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습성이 곧 ‘경험’이 만드는 위험의 원인이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가 내게 항상 강조했던 이야기가 있다.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성공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한 번 시도해서 어떤 문제가 잘 풀렸다고 해서 그 방법만 일관되게 고집했다가는 큰 곤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뜻대로 잘 풀린 경험이 있을 때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늘 강조하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쉬운 해결책에 대한 갈망이 ‘경험’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에 대한 의지는 새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저해하여 결과적으로 우리의 지적 능력을 떨어뜨린다.

한편, 또 다른 범주에서 지적 능력이 저하되는 예가 있다. 바로 치매이다. 치매를 앓는 사람은 이곳이 어디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심지어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다.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움을 벌이는 의사들도 치매에 대한 공포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 회진 중에 동료 의사가 치매에 걸린 환자를 보고 나오는 길에 “죽는 날까지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치매에 걸린 이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과 동시에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떻게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또렷한 의식을 갖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주변에서 치매 환자를 보살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본 적 있는 고민일 것이다.

치매는 아직 인간이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질병이다. 다만, 꾸준한 두뇌 활동과 신체적 운동 그리고 사회적 활동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달리 말해, 두뇌를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게으름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경험’에 의존하며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이 가져오는 폐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경험’에 대한 의존과 ‘치매’는 둘 다 사람의 지적 능력을 떨어뜨린다.

두 가지 ‘지적 능력의 저하’, 즉 ‘경험’에 사로잡힌 고정관념이 두뇌가 굳는 것이라면, 치매는 반대로 뇌가 녹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바탕은 힘든 것을 멀리하고 쉬운 길을 찾아가려는 습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인지심리학자 슐로모 브레즈니츠Shlomo Breznitz는 <생각을 확장하다 원제 : Maximum Brainpower | 슐로모 브레즈니츠 , 콜린스 헤밍웨이 지음 | 정홍섭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02월 22일 출간>를 통해서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러한 지적 능력의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적절하게 훈련한다면 두뇌의 잠재력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각을_확장하다저자는 지적 능력의 활용을 위해 뇌의 작동 원리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이를 통하여 뇌의 지적 능력을 구성하는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지적 능력 향상 방법을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더 복잡한 일에 끊임 없이 도전해야 한다. 특히 읽기와 쓰기를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로는 머리에 쥐가 날듯한 경험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지적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것은 마치 매일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다리 근육도 당기고 숨도 차지만,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과 같다.

아울러 더욱 복잡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뛰어넘는 능력이 필요하다. 창의력이 별게 아니다. 기존의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힘, 그것이 곧 창의력이다.

두 번째,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는 ‘경험의 틀’에 갇힌 기존의 지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생각과 문제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지적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

한편,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은 ‘평생 직업’에 대한 환상을 깰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배워왔다. 한 분야를 깊게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보는 사고방식일 뿐이다. 사람은 특정 용도에 맞추어진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분야에 갇혀있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더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다.

왜 ‘평생 직업’을 갖고자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하나의 지식, 하나의 기술, 하나의 전문 분야를 갖고 평생을 편하게 욹어먹으려는 생각이 ‘평생 직업’을 추구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일만 하면서 평생 살아가고자 하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거부하는 안이함과 그 맥이 닿아있다.

이제 ‘평생 직업’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끊임없이 흥미로운 일을 찾아서 나서는 용기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근면한 자세가 필요하다.

세 번째, 운동을 비롯한 신체적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운동은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입증된 몇 안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아울러 운동을 매개로 한 사교적 활동도 지적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사교적 활동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즉 ‘경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요컨대, 복잡한 과제에 대한 도전,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신체적 활동은 지적 능력 향상을 돕는다.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을 더 확장’하고 싶다. 그것은 오늘날 만연한 자동화에 대한 경계이다. 자동화란 개념을 파고 들어가보면 ‘경험’을 체계화하여 스스로 반복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자동화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하게 함으로써, 지금 당장은 편안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적 능력의 저하를 초래한다.

‘자동화와 기계에 의한 인간 대체’는 이제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해서 의식적으로 고된 과정을 택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끝가지 인간 고유의 것으로 지킬 수 있는 영역이다. 기계가 인간을 넘볼 수 없는 것이 ‘어려운 과제에 대한 도전 정신’, ‘경험을 뛰어넘는 창의성’, ‘활동 자체에서 느끼는 흥미’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요컨대, 우리는 지적 능력이라는 주제에서 더 큰 원칙으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더 나은 훗날을 위해 지금은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과제에 대한 도전,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신체적 활동, 이것들은 모두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삶이란 여러 종류의 쿠키가 담긴 통에 비유할 수 있다. 통에 담긴 쿠키들 가운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섞여있다. 만약 좋아하는 종류의 쿠키를 먼저 꺼내서 먹으면, 나중에는 좋아하지 않는 쿠키를 먹어야 한다. 지금 힘든 일들을 감수하면, 훗날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생각을 확장하다>를 읽고 ‘생각을 확장’하여 내린 결론이다.


“생각을 확장하다”에 대한 10개의 생각

    1.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경험으로 잠재력을 한계짓지 않는 것이 지적 능력 향상에 필요한 조건입니다. 귀한 의견 감사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