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세상

식탁 위의 세상오늘날 우리가 정보를 얻는 출처로 블로그가 널리 활용된다. 알고 싶은 정보를 진정성 있고 시의적절하게 얻기에는 블로그만한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 꾸준히 인기를 얻는 주제가 바로 ‘맛집’이다. 우리는 저녁 모임이나 데이트 아니면 그저 혼자 식사를 하기 위해서도 주변에 맛집이 어딘지를 찾기 위해서 블로그를 검색한다. 그곳에 실제로 방문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통해서 직접 가보지 않고도 그 음식점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블로그에 실린 식당의 정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역시 맛과 재료이다. 식당의 분위기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무엇보다도 음식의 맛과 재료가 우선이다. 맛과 재료가 뛰어지만 ‘식당의 분위기가 다소 떨어진다면’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이라는 본질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맛과 재료. 이 두 가지 중에서 맛은 대체로 요리사의 능력으로 판가름나는 부분이고 사람들의 주관이 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재료의 건전성은 맛보다는 객관적이고 음식점 주인의 양심도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질 낮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식당’과 ‘맛은 없지만 건전한 재료를 쓰는 식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택한다.

하지만 우리가 맛집 블로그를 여행하면서 재료의 건전성을 따지고 식탐을 충족하는 사이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당신 앞에 놓이기까지 기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좋게 말해서 기여이지 사실상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점철된 희생’이 더 정직한 표현이다. EBS나 KBS1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종종 다루는 제3세계의 열악한 농부들의 환경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안목과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즐기는 맛집과 음식들을 위해서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는 이들에 대한 불편한 진실의 이야기가 있다.

<식탁 위의 세상 원제 : Where Am I Eating? | 켈시 티머먼 지음 | 문희경 옮김 | 부키 | 2016년 01월 22일 출간>은 음식 재료의 건전성과 그 뒤에 남겨진 생산자들의 노동 환경을 아우르는 탐사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저자는 콜롬비아산 커피, 서아프리카산 초콜릿, 코스타리카산 바나나, 니카라과산 바닷가재, 중국산 사과라는 네 대륙에 걸친 5개 지역의 생산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실제로 그 지역을 방문하여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며 얻은 경험을 생생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산인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만나온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위한 개선책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저자가 네 대륙에서 만난 잠수부, 농부, 노동자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국적 기업은 이들이 생산한 것을 헐값에 사들이고, 비정규직으로 쓰다가 몸이 다치면 쓰레기처럼 버린다. 이들 머리 위로 농약을 살포하고, 테러 집단에 자금을 지원해서 지도자들을 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급여를 현금으로 달라는 이들을 향해 발포를 하게 압박한다. <식탁 위의 세상>은 우리의 식탁 위의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면서도 정작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책의 내용을 꿰뚫고 있는 중심 주제는 열악한 제3세계의 노동 환경에 대한 관심 촉구이다. 음식은 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기 위한 소재이다. 책 뒷표지에도 적힌 것처럼 ‘음식이라는 렌즈로 세상의 이면을 보는 것’이다. 저자는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 원제 : Where am I Wearing? | 켈시 팀머맨 지음 | 김지애 옮김 | 소울메이트 | 2010년 01월 05일 출간>를 통해서 제3세계 의류 생산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조명한 바 있다. 그때도 의류는 하나의 이야기 소재였을 뿐 저자의 관심은 열악한 노동자들의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무겁게 한 의문이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이러한 거대한 담론에 대한 시원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현 시점에서 내가 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문제를 인식하고 새롭게 알게 된 바를 나누는 것 뿐이다.

우리가 이 책의 저자처럼 생업을 접고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로 떠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많다. 그 가운데 오늘부터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를 정리하였다. 이것들은 내가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감정노동자들에게 친절하자.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들은 먹을거리와 관련된 감정노동자들이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커피점 아르바이트, 대형마트 점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음식의 연결고리의 가장 마지막에 선 이들이다.

우리가 매장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함부로 대할 때,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 상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이 커피를 재배하고 바나나를 따기 위해서 겪게 되는 육체적 고통과 기본적으로 성격이 같다. 물론 생명의 위험이 산재한 열대 지역의 노동자들이 놓인 환경이 더 열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더 작은 고통에도 무심한데 어떻게 더 큰 고통에 대해서 마음을 쓸 수 있겠는가.

지구 반대편의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다면, 우선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아르바이트생과 아주머니들에게 친절하자. 물론 이것은 꼭 먹을거리를 파는 곳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둘째, 작은 상점을 통해 먹을거리를 구입하자. 나는 요즘 대형마트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서 볼 수 있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농민들의 사진을 커다랗게 걸어놓는 행태’를 좋게 보지 않는다. 그 상품들의 질이 좋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진에는 진실성이 없다고 본다. 그 거래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대형마트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이지 결코 그 사진에 걸려있는 농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은 것은 그 사진 가운데 하나에서 환하게 웃으며 농작물을 들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을 때다. 사진 속의 농부의 치아가 어색할 정도로 희고 밝았다. 그래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포토샵 처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포토샵을 왠만한 전문 디자이너 이상으로 다룬다. 말할 것도 없이 포토샵으로 처리한 사진은 진실성이 없다. 즉, 대형마트와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을 위해 농민들은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농민들 즉 생산자들을 위한다면, 차라리 동네의 작은 식료품점을 이용하자. 약간 더 비싸더라도 대형마트보다는 그 주인이 직접 판매하는 상점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하기를 권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상점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식탁_위의_세상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점을 갖고 있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각각의 생산자들 즉 실제로 밭에서 작물을 길러내는 농부들 같은 이들이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들이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생산자들이 물건을 팔 수 있는 경로가 대형마트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 밖에 없다면, 그들은 자신이 길러낸 것들을 헐값에 넘길 수 밖에 없게 된다.

단, 노상에서 판매하는 이들의 물품을 구입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마땅히 부담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 즉 세금을 외면하고 있다. 물론 그들보다 더 통크게 세금을 회피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노상에서 판매하는 이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들 대신 정식으로 세금을 내는 작은 상점을 이용하도록 하자.

셋째, 각 분야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자. 당신은 법으로 정해진 시간 당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아는가. 6천 원 정도라는 것은 알지만 나도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른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서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쓸 수 있지만 양심상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차라리 나의 이런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앞으로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당신은 시간 당 6천 원 정도, 즉 하루 8시간을 꼬박 일해도 5만 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조금 곤란할 것 같다. 우리가 살 수 없다면, 그들도 살 수 없다.

관심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미흡한 현재의 기준이라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 현재의 기준은 점진적으로 개선해 가면 된다. 우리의 관심은 절대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관심이 세상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정리하면, ‘감정노동자들에게 친절하고, 작은 상점을 이용하고, 타인의 고용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자신의 입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 아는 것만큼 기본적인 문제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를 넘어서 그것을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해 준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인해 누군가 불구가 되고 목숨을 잃고 다국적 기업의 노예가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언젠가는 해결해야만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우리가 겪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겪게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는 우리가 맛집을 찾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잔의 향을 음미할 때, 그것들이 마련되기까지 고생했을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자.


“식탁 위의 세상”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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